순교자 김영학 목사 : 한국개신교 최초로 해외에서 순교한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영학 목사. 1877년 2월 10일 황해도 금천군 금천읍 조포리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양반가문에 부자였다. 청소년기 천자문에서 사서삼경까지 읽고 청년기에 신학문을 접했지만 암울한 시대에 방황하며 방탕한 삶을 살았다.
그가 29세 되던 해, 술 취한 그에게 전해진 “예수 믿으세요”는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놨다. 1907년 4월 세례를 받고 1918년 11월에 간성구역장으로 양양교회에 부임한다. 양양지역 최초 교회였던 양양교회에서 1919년 4월초 열린 양양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옥고를 치른 지 수개월 만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청하여 러시아 시베리아 선교사로 간다.
소비에트의 핍박으로 목회자들의 신변이 위협받자 감리교 총리원에서 김 목사에게 귀국을 여러 번 권고했으나 “여기에 단 한 사람의 성도라도 남아있다면 어떤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떠날 수 없습니다”라며 그곳의 교인들, 애국동지들과 함께 공산당과 맞서가며 헌신했다. 1930년 러시아 관헌들은 김 목사를 ‘악질적인 반동분자’로 체포해 배교를 강요하고 1931년 3월 10년의 강제 중노동형을 선고했다. 1931년 김 목사의 아내인 안원정은 모친 홍다비다와 자녀들 사남매를 이끌고 시베리아를 탈출해 귀국했지만, 김 목사는 1933년 1월 영하40-50의 혹한 속에서 강제노동 중 순교했다. 순교 사실은 그 해 10월에서야 한국에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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