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여학교 학생들 “우리 모두가 주동자”
일신여학교 학생들 “우리 모두가 주동자”
  • 권은주 기자
  • 승인 2019.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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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여학교에서 시작된 부산의 3.1운동
혼수 옷감 뜯어 태극기 만들어
여학생들, 갖은 수모에도 독립의지 굽히지 않아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 건축학적 가치와 3.1운동 진흥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부산시로부터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받았다. 권은주 기자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 건축학적 가치와 3.1운동 진흥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부산시로부터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받았다. 권은주 기자

1919년 3월 1일 거국적 항일운동이 서울에서 시작하여 각 지방으로 번졌다. 부산에도 서울의 학생 대표를 통해 독립선언서가 전달됐다. 이 소식을 들은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만세운동을 기획했다. 주경애, 박신연 교사를 필두로 고등과 학생 11명이 참여해 11일로 예정된 만세운동을 위해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불로 창문을 가린 후 벽장에 숨어 혼수로 쓸 천을 잘라 밤새 태극기 100여 개를 준비했다. 거사 당일 저녁식사를 마친 학생들과 교사들은 저녁 8시,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좌천동 거리를 누볐다.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거리의 군중들에게 나눠줬다. 학생들과 군중 수백 명은 감격에 넘쳐 힘껏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때 일본 경찰들이 출동해 저지함으로 시위를 계속할 수 없었다. 출동한 경찰들은 학생 전원과 두 교사를 체포하여 격리 수용한 후 취조를 하기 시작했다. 16, 17세 여학생들의 뺨을 치고 구둣발로 짓밟았다. 그들은 주동자가 누구냐고 윽박질렀고 그 질문에 모든 학생들은 “우리가 다 주동자”라고 외쳤다.

3.1 독립운동의 주역들(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 권은주 기자
3.1 독립운동의 주역들(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 권은주 기자

취조를 받던 한 학생은 “세살 먹은 아이도 제 밥을 뺏으면 달라고 우는데 우리나라를 달라고 운동하는 것이 뭐가 나쁜가”라고 항의했다. 취조 다음 날 그들은 모두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어 학생들은 징역 6개월, 교사들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때 구속된 여학생들은 감옥에서 모시실을 무릎에 비벼 뽑는 강제노동으로 무릎이 벗겨져 피가 났고, 매일 나체 검사를 당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분노는 더욱 높아져갔고, 항일 학생운동은 점차 세력을 더해갔다. 4월 3일에는 부산진 거리에서 대대적인 학생ˑ군중들의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또 4월 8일에는 다시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보다 큰 만세 시위가 전개됐다. 일신여학교 학생 50여 명과 더불어 수백 명의 군중들이 참여해 좌천동 거리를 가득 채웠고 이후 경남지역에 만세 시위와 항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일신여학교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김반수 동문의 편지. 권은주 기자
일신여학교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김반수 동문의 편지. 권은주 기자

당시 옥고를 치렀던 일신여학교 김반수 동문은 당시의 상황을 편지로 남겼다. “3월 1일에 독립만세를 전국에서 부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여 때는 이때다 싶어 동지 일신여학교 몇 명이 모여 태극기를 만들어 나눠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어머님께서 출가시킬 때 쓰려고 장만해 둔 혼수 옥양목을 몰래 끄집어내어 기숙사로 가지고 가서 초저녁에는 기숙사 벽장 속에 숨어 있다가 밤 10시가 넘어 창문에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이불로 가리고 옥양목에다 대접을 엎어 동그라미를 그리고 붉은 물 검은 물로 칠하여 겨우 마련한 태극기를 들고 3월 11일 밤 8시경 거리로 가지고 나가 가는 사람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줘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답니다. 부르다가 지쳐 쓰러지면 또 용기를 내어 불러답니다. 결국은 일본 경찰에게 잡히고 말았지요. 그때는 여자로서 부끄럽다거나 무섭다기보다는 우리나라를 되찾아야지 하는 일념 때문에 일본 경찰에게 수모를 당해가면서도 항의를 했답니다. 결과는 옥살이였지요. 지금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지만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것이 너무 대견스럽고 가슴 뿌듯합니다.”

일신여고의 3.1 독립만세운동 뒤에는 부산진교회와 세 명의 호주 여선교사들이 있다. 호주 선교사들은 부산에 정착해 교회와 학교, 병원 등을 지으며 복음뿐 아니라 부산 지역민의 삶과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사회정의를 가르친 그들의 정신이 일신여학교의 3.1운동과 이후 경남지역 항일운동의 근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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