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회기 총회 이슈 진단 Ⅲ] 예수병원, 하나님의 것이다 ②역사
[제102회기 총회 이슈 진단 Ⅲ] 예수병원, 하나님의 것이다 ②역사
  • 가스펠투데이
  • 승인 2018.08.0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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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예수병원 설립자인 여의사 마티 잉골드(오른쪽)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마티 잉골드는 30세의 여자의 몸으로 당시 동학혁명의 상흔으로 어수선한 이 땅에서 의료선교를 시작했다. 예수병원 제공
1898년 예수병원 설립자인 여의사 마티 잉골드(오른쪽)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마티 잉골드는 30세의 여자의 몸으로 당시 동학혁명의 상흔으로 어수선한 이 땅에서 의료선교를 시작했다. 예수병원 제공

선교사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선교병원

한 손에는 복음, 한 손에는 의술

지역의료 선교의 거점으로

신사참배 거부로 폐원되기도  

예수병원은 1898년 미국 남장로교의 후원으로 마티 잉골드(Mattie B. Ingold)가 세운 외래진료소에서 비롯되었다. 마티 잉골드는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5년 동안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준비하여 30세 여자의 몸으로 당시 동학혁명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어수선한 시대적 상황 속에 있는 한국으로 향했다.

1898년, 마티 잉골드 선교사가 4개월에 걸친 길고 험난한 항해 끝에 전주에 도착하여 성문 밖 은송리(현 완산초등학교 근방)에 조그만 집 한 채를 구입, 1898년 11월 3일 어린이와 여자들을 위한 진료를 시작한 것이 예수병원의 전신이 되었다.

1897년에는 선교사들의 사택과 선교부 복합 건물이 들어설 기지를 은송리 옆 완산(完山) 지맥(支脈)자락의 언덕에 두었는데, 완상이 전주의 주산(主山)일뿐 아니라 이씨 왕조(李王朝) 전주 이씨의 시조 신라(新羅)사공(司空) 한(翰)의 발상지요 중시조 목조(穆祖)안사(安史)의 본향으로서 유서 깊은 곳이라는 이유로 건축이 금지되었다. 이에 조성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선교부 기지의 위치를 완산에서 서북편인 화산(華山)으로 옮겨 선교사들의 집단 거주 지역으로 임의 사용하도록 하며 완산에 건축했던 건물 대신 세 채를 이전해 지을 수 있는 보상금을 조선 정부에서 지급하기로 했다. 이로써 완산에 자리 잡으려고 하던 선교부는 현재 엠마오 사랑 병원이 있는 곳(구 예수병원 자리)의 등성에서부터 서북편 일대로 뻗은 야산을 지나 현재 신흥학교와 기전 학교 등이 있는 곳까지 광범위한 지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선교부가 자리를 옮김에 따라 전주의 초기 교회 자리도 은송리의 선교부에서 바로 보이는 전주성 서문 옆에 터를 잡게 된 것이다. 이것이 전주 서문 예배당 터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2년 서양식 건물로 증축되었고, 1912년 30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확장되었다. 하위렴(W. B. Harrison) 선교사에 의해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 지어졌다.

1904년에는 병든 자, 노약자, 버림 받은 자, 나환자 같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정성을 기울인 보위렴(Wily H. Firsythe) 원장이 봉사하였고, 1912년에는 3대 원장 단의열(Thomas H. Daniel)에 의해 30병상 규모의 병원이 다가동 기슭에 아담하게 건축되었다. 30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확장되면서 전주 지역 의료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1935년 화재로 이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그해 말 재건되었고, 해방 후에는 ‘야소병원’으로 불리던 명칭이 ‘예수병원’으로 개칭되었다.

1940년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병원이 임시 폐원되기도 했으며 1947년 병원이 재개원되어 구바울 병원장이 취임했다. 구바울(Paul Crane) 원장이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전주지역을 택해 종합적인 의료사업계획을 수립하면서 1954년 병원과 부속간호학교를 설립했다. 1969년 중화산동에 현대식 건물을 세운 후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여 1971년 재단법인 예수병원이 발족되었으며, 독일과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의 원조와 지역 주민의 지원으로 운영되어 왔다. 2000년 이후 첨단의료장비를 도입하고 규모를 확장하면서 우수한 의료수준을 인정받아 지역 거점 병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예수병원에서는 의료순교자도 배출했다. 랭킨(David C. Rankin)은 미국 남장로회 선교본부 협동총무로 1902년 12월 초 아시아 선교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거쳐 내한해, 먼저 평양에 갔다가 폐렴에 걸려 12월 28일 별세했다.

해리슨(Linnie D. Harrison)은 1892년 남장로회 개척 선교단원으로 내한하여 전주에 환자심방을 갔다가 열병에 전염되어 1903년 6월 19일 별세했다.

전킨(W. M. Junkin)은 군산에서 일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1904년 전주로 옮긴 후, “전주 6마일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선교부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지방 순회를 감행하다가 결국 장티푸스에 폐렴이 겹쳐 1908년 1월 2일 별세했다. 전킨 묘비 앞에는 벽돌같이 생긴 조그만 돌 세 개가 나란히 박혀 있는데 시드니(Sidney), 프랜시스(Francis), 조지(George)의 묘비석이다. 어려서 군산에서 죽은 전킨의 세 아들이다. 전킨 가문의 ‘4부자’가 함께 묻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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