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가난한 너희, 행복하다
[전문가 칼럼] 가난한 너희, 행복하다
  • 남금란 목사
  • 승인 2024.02.15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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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어린 딸을 데리고 이곳 보호시설에 오신 분이 있다. 이분은 생계로 인한 빚으로 살길이 막막했다. 이런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가정폭력의 고통이 가중되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불안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많이 힘드셨지요?”라는 말 한마디에 커다란 눈에서 주르르 떨어지던 눈물이 몹시도 안타깝던 40대 이 여성은 어렸을 때 질병으로 학교생활 적응이 어려웠고, 그로 인해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이분은 말도 재치 있게 잘하고 시설 생활이 원만하였다. 쉼터(보호시설을 이렇게도 부른다) 집단 상담에 참여할 때마다 눈에 띄게 성장하며 밝고 착한 심성이 드러났다. “이런 좋은 학교도 다 있네요.” 이분이 ‘시설’에 대해 ‘인생을 배우는 학교’라고 표현하여서 나는 “이 학교에서 라벤더(우리는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님은 우등생이십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라벤더 씨는 요리 솜씨가 좋아서 늘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고, 곧 식당에 취업했다. 중학생 딸을 잘 키워 내겠다는 강인한 의지로 우여곡절 중에도 빚을 갚아가며 자립에 다가섰다.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시설 식구들도 응원을 보내며 지켜보는 우리도 힘이 났다.

어느 날 라벤더 씨가 이런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제 소원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통장에 내 돈 딱 백만 원 있는 거고, 둘째는 딸 무탈하게 크는 거고요, 셋째는 조그만 제 (음식)가게 내는 거예요” 하셨다. 이것이 가난하여 소박한 사람의 행복이 아닌가! 나는 부질없는 욕심이 일어날 때마다 이분의 세 가지 꿈을 떠올리며 마치 내 의식을 깨우는 종소리처럼 듣곤 한다.

퇴소할 때가 되어,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집을 얻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꿈을 열 배나 이룬 셈이다. 이분에게 천만 원은 아마 천하만큼 큰 것이리라 생각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자립지원금이나 민간기금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자립 의지에 따라 빚의 족쇄에서 벗어날 길이 생긴다. 아무리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이라도 반드시 살길이 주어진다. 이분이 바로 그런 분이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어떤 일에도 감사하는 긍정적이고 건강한 정신력이었다. 어려움을 직면할 때마다 자신 내면에 있던 창조적인 힘이 발현된 것이라 믿는다. 코하며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켰고,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이분의 감사가 커질수록 정말로 현실에서 좋은 일이 계속 생겨났다.

어제 이분이 열무김치와 파김치를 담아서 갖다주었다. 그 김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열무김치, 파김치가 내게 하나의 즐거운 숙제를 준다. 나는 이 선한 이웃, 이 소중한 가족에게 또 어떤 선물로 보답할까?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동조합도 형성하고 싶고, 퇴소 후에도 어르신들의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한 모임도 이어가고 싶다.

시설에서 퇴소하신 분들이 민들레 홀씨 같은 가난한 마음으로 이 동네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고난 속에서도 스스로를 깨우치며 조금씩 진정한 행복에 눈을 뜨신 분들이다. 한 분 한 분 비슷하게 인생의 가장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온 사연의 주인공들로 참된 자신 안에서 다시 피어나 세상에 향기를 내놓으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다.

 

* 가정폭력긴급전화 010-5346-6933

남금란 목사
남금란 목사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원장
예목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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