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날개로 날아보려 합니다”
“부러진 날개로 날아보려 합니다”
  • 최상현 기자
  • 승인 2021.04.13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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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세상이지만, ‘절망적인 인간’은 없다!
20년 간 소외된 이들과 함께한 남금란 목사
남금란 목사는 "상처입은 여성들이 행복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용서, 회복, 자립

A씨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센터를 찾아왔다.

“애들은요?”

“집에 있어요. 아이들은 괜찮아요.”

남금란 목사는 A씨에게 돌아가서 빨리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A씨는 허름한 판잣집에 살고 있었다. 치안을 기대할 수 없는 동네였다. 남편은 상습적으로 A씨를 구타했다. 그는 약을 가져와 A씨에게 동반자살을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었다. 남 목사는 우선 아이들이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아이들은 재능이 많았다. 노래, 연기, 악기를 다루는 법도 빨리 배웠다. 그런 자녀들의 모습을 본 A씨는 열심히 제빵 기술을 배웠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다. 그녀는 매니저가 되었고, 기술을 더욱 업그레이드하면서 자기 개발에 힘썼다. “내 속에 이런 강함이 있는지 몰랐어요!”

A씨는 사실 부모에게 버려진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 없었기에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 안에 내재된 어머니의 힘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가버린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혼자였다. A씨는 엄마를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 도 없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 열악한 환경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A씨는 엄마가 정신병을 가진 아빠와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아팠으면 도망갔을지 이해하고 용서했다. 이제 그녀는 같은 아픔을 가진 여성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 나눈다. 희망을, 내일을 이야기한다.

남 목사는 A씨와 같은 수많은 여성을 만나고 재활시켰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남 목사의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제가 누군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녀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게 됐어요. 그 고통의 현장 속에서 제가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남 목사는 상처 입은 이들이 행복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급한 문제는 재정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이었다. 남 목사가 만나고 돌본 이들은 행복한 기억이 없었다. 온통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뿐이었다. 그래서 증오, 분노가 가득했다.

“상처 입은 여성들과 함께 다니며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보고, 따듯한 환대를 받는 경험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행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끼며 아픔으로 점철된 과거의 기억을 기쁨으로 덮어씌우는 것이죠. 살만한 세상, 내편이 있는 세상, 이런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해요.”

센터 여성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고통을 공감하고 마음이 순화되기 시작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자 살아갈 힘과 에너지가 회복됐다.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관대한 마음이 생겼고 용서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사회에 재기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을 이룰 수 있었다.

가정폭력 생존여성들의 "고통이 힘이 된 이야기" 남금란 외 35명의 글들.

변할 수 있음을 믿는 것

남 목사는 1990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등포 지역에서 빈민선교에 헌신했다. 당시 영등포, 구로, 양천구는 대표적인 빈민 밀집 지역이었다. 그녀는 목회자, 장로들과 함께 사회 선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난한 교회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마침 민중신학이 이슈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이론적 기반이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1997년부터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정부에서 필요한 제정과 제도를 마련하고 현장에서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민간 기관과의 파트너십이 이루어졌다. 그 파트너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국 교회가 감당했다. 남 목사는 이후 여교역자협의회, 총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섬기는 사역을 이어가며 다양한 분야에서 노하우를 쌓아갔다.

“안양에서 3년 간 비행청소년들을 섬겼는데 그때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 아픈 일이 많은지 몰랐어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성들을 위핸 법과 제도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새로운 여성법안들이 제정되고 가정 폭력을 피해 보호받을 수 있는 쉼터도 만들어졌다. 2006년, 전국여교역자연합회복지재단은 여성부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보호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5년 간 수많은 여성들이 시설을 오고 갔다.

“쉼터에 오면 먼저 의사소통 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또한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법, 공동체 회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훈련해요.”

그러자 여성들은 “내가 이런 교육을 미리 받았다며 더 행복했을 텐데,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내가 교양과 품위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 목사는 ‘배려하는 법, 의사소통 하는 법, 폭력에 대응하는 법’등 부모가 되기 위해 익혀야 할 것들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자녀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남편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교회가 앞장서서 교육할 수 있어요.”

남 목사는 이를 위해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픔을 가진 여성이 교회에 왔을 때 ‘한 부모 가정, 이혼한 가정’을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남 목사는 “이혼한 사람들이 교회에 부끄러워서 오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면서 “교회가 벽을 허물고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떳떳하게 오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통찰할 수 있는 것, 공동체와 협력하며 살아가는 법, 이러한 지혜를 얻기 위한 교육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변하기가 참 어렵지만 그래도 ‘가능’합니다. 내가 변할 수 있다는 걸 믿는 것이 중요해요. 절망적인 세상이지만, ‘절망스런 인간’은 없습니다.”

입소인의 수기 (‘가난한 너희, 행복하다’에서 발췌)

1) 검푸른 얼굴이 하얗게 드러나며

온 몸이 상처투성이에다 보기도 어려울 만큼 멍든 시커먼 얼굴 상태여서 큰 마스크를 끼고 이곳에 입소했다. 우울증과 불면증이 있는데다 온 몸의 통증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신경정신과, 정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치과...병원 치료를 받고 돌아오면 하루 해가 넘어간다.

한 달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이제 얼굴이 아물어서 하얗게 드러나고, 편히 잠을 잘 수 있어서 감사하다.

지금은 쉼터 식구들이 좋아하는 언니로 지내고 있다. 식사 당번이 되면 모두 내 음식이 맛있다고 즐거워한다.

잃었던 신앙도 되찾고, 고생만 하던 고단한 몸을 쉬고, 오늘은 열차를 타고 모처럼 화려한 여행을 떠난다.

2) 내 마음의 감옥

지금 내 마음은 감옥입니다. 훨훨 날아가고 싶은데 날개가 부러졌습니다.

오늘은 그 부러진 날개로 멀리 날아보려 몸부림칩니다.

내 마음은 오늘도 부러진 날개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멀리서 희망의 불빛이 이리 오라고 손짓합니다.

내 마음은 오늘도 부러진 날개로 날아보려 몸부림칩니다.

3)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호랑나비야, 너는 높은 하늘을 날고 있음 행복하니?

나는 너처럼 훨훨 날고 싶다. 내가 보지 못한 행복한 세상,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단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바람 따라 훨훨 둥실둥실 날고 싶다.

나에게 단 하루만 날개를 준다면 나비가 되어서 엄마, 아빠 얼굴 한번 보고 왔으면 참 좋겠다.

나비야, 나비야, 나 이 세상에서는 인간으로 살고 있지만

먼 훗날에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때 나비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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