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임종각 장로(영동교회 원로), “항상 겸손하고, 행복하고, 감사해야”
[믿음의 사람] 임종각 장로(영동교회 원로), “항상 겸손하고, 행복하고, 감사해야”
  • 김유수 기자
  • 승인 2020.12.2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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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자리에서 충실하게
희극인 아들의 사춘기 방황에도
하나님이 연단하실 것이라 믿어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믿음생활”
“항상 겸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아들 윤택 씨와 찍은 한국장로교복지재단 홍보대사 위촉식 단체사진. 본인 제공

“나는 가훈을 ‘겸손, 감사, 적선’으로 정하고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이 말과 행동에 항상 겸손하길 매일 기도하고 있다.”

“내 평생은 적게 심고 많이 거둔 삶”이라고 고백하는 임종각 장로(영동교회 원로, 전 관악노회 장로부노회장)는 32년간 성남중·고등학교에서 학교의 행정, 사무 일을 책임졌다. 또한 교회, 총회에서도 행정적으로 미흡한 부분을 돌보는 일에 헌신해 총회 양화진대책위원회에서 특별위원으로, 총회 공주원로원을 총무로 섬기기도 했다. 그는 성실한 삶으로 씨 뿌리는 일을 수고로 여기지 않았다.

충남 당진군 석문면에서 임 장로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동내 석문감리교회에 출석하며 교회학교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했고 친척의 소개로 서울로 올라와 성남중·고등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 영동장로교회에 등록해 그곳에서 장로 장립을 받고 원로장로로 추대됐다.

 

가훈을 겸손, 감사, 적선으로 세운 그는 삶에서 신앙인의 모범이 되기 위해 겸손하고 성실하게 노력해왔다. 그는 남선교회 활동에 참여하며 노회 남선교연합회 회장과 장로부노회장을 역임했고 체육대회 개최 등으로 지교회들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일에 힘썼다. 그러한 다양한 활동이 모범이 되어 남선교전국연합회 봉사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한국장로성가단에 입단해 새벽 연습도 마다치 않고 13년간 국가조찬기도회 등 다양한 곳에서 테너로 활동했다.

임 장로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은퇴할 때가 되자 당시 운영이 어려웠던 총회 공주원로원에선 오랜 행정경력이 있었던 그에게 총무부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예장통합 총회는 다양한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공주원로원은 그중에서도 행정적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교단에서 세운 공주원로원에는 대부분 은퇴한 목회자나 신앙인들이 입소해 신앙가족들이 원내에서 함께 예배드리며 신앙생활을 한다. 이러한 원로원은 교단 복지정책은 물론 교계 전체의 은퇴목회자 복지정책에도 좋은 모범이 됐다. 그러나 임 장로가 공주원로원으로 갈 당시엔 행정 및 운영에 미흡한 부분이 많아 운영 상황이 어려웠다. 총회에선 원로원을 매각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러나 공주원로원대책위원회가 구성돼 모금운동 및 운영체제 개선 노력을 펼쳤고 우여곡절 끝에 운영 정상화를 이뤄냈다. 당시 임 장로는 총무부장으로서 공주원로원이 행정적으로 미비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질서를 수립했다. 그에겐 평생을 행정 일에 몸담은 경력이 준 사명감과 자부심이 있었다.

그가 공주원로원에서 일할 당시 이사한 마을에 통장 볼 사람이 없다고 그에게 마을을 위해 봉사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타향이었고 이웃에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진실한 모습으로 교제하면 선교의 기회가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지역에서 7년간 통장으로 봉사했다. 이러한 노력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화성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편 임 장로에게는 세 아들이 있는데 그의 막내아들이 바로 개그맨 윤택(본명 임윤택)이다. 유명 희극인인 윤택 씨는 신앙 안에서 안구기증운동협회, 한국장로교복지재단 홍보대사 등으로 봉사와 나눔에 헌신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방황했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농구선수로 뛰며 전국소년체전에서 대표로 나가 우승했다. 중·고등학교에서 그의 재능을 보고 학생 선수로 스카우트했지만, 진학 후엔 슬럼프가 찾아왔다. 아들이 농구를 그만두고 학교마저 자퇴한 방황 가운데서도 임 장로는 “기도밖에는 답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아들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윤택이는 모태신앙이었고 방황할 때도 교회에 다니면서 중·고등부 회장도 맡으며 신앙생활을 했다. 신앙만 비뚤어지지 않는다면 삶의 어떤 자리에서도 반드시 하나님이 연단하셔서 쓰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임 장로의 믿음과 인내심에 아들은 제 발로 걸어와 뉘우쳤고, 검정고시에 합격해 친구들과 함게 대학에 입학했다. 중·고등부 행사 때 내레이션 역할 등을 맡으며 교회에서 끼를 나타냈던 윤택 씨는 이후 연극무대에 데뷔했고, SBS 공채 개그맨으로 TV 무대에도 올랐다.

평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는 임 장로는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믿음생활이고 그것이 진리다. 그래서 항상 겸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남을 돕는 일을 찾아 돕고 있다”며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나는 적게 심었는데 많은 것을 거둔 복을 받았다. 평소에 겸손하려고 노력하며 모든 삶의 밑바탕에 신앙을 두려한 덕인이지 않다 싶다”고 고백했다.

남선교회전국연합회에서 모범 연합회상을 받는 임종각 장로.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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