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오재임 권사(목양교회), “나를 부르신 하나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믿음의 사람] 오재임 권사(목양교회), “나를 부르신 하나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 정성경 기자
  • 승인 2020.05.29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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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을 전하는 오재임 권사. 정성경 기자

 

교회 종소리에 손 모으던 소녀

부르심에 응답한 신앙인으로

그 안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

“영혼 구원이 가장 큰 기쁨”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목양교회에 처음 가면 환하게 맞아주는 이가 있다. 오재임 권사다. 오 권사는 “내가 처음 교회 왔을 때 나를 친절하게 반겨주는 이가 없어 나는 앞으로 새 신자가 오면 무조건 환하게 웃으며 친절하게 반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교회를 섬기는 날까지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교회에 한번 오면 못 빠져나가도록 촘촘한 그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고백했다.

오 권사가 교회에 나오게 된 사연은 특별하다. “성령님이 나를 이끄셨다”고 말하는 오 권사가 살았던 전남 목포시 동네에는 당시 교회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침 새벽 4시 반이면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기도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

오 권사의 외갓집에는 교회가 있었다. 오 권사가 1년 내 겨울 방학을 기다린 이유는 그곳에 있던 교회에 가기 위해서였다. 12월 24일에 방학하자마자 외갓집에 간 그는 성탄절 전야제와 성탄행사를 참여하며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러다 버스를 타고 세정거장 먼 곳에 있는 교회를 다니게 됐는데, 당시 불교 집안이었던 그의 가족들의 반대로 “공부하러 간다”며 거짓말을 하곤 했다.

어렸을 적부터 도화지에 집을 그리면 꼭 그 뒤에 교회를 그려넣었다는 오 권사의 기도대로 그가 스무살 되던 해, 그의 집 뒤에 교회 건축이 시작됐다. 교회를 건축하는 동안 기쁜 마음으로 설거지도 하는 등 사람들을 도왔다. 그런데 막상 교회를 짓고 나서 오 권사를 교회로 초청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끄럼이 많던 그는 수요 예배드리는 교회 앞을 서성이다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회 사모가 오 권사를 불러 세웠다. 알고 보니 예배 때 창가로 검은 그림자가 비치곤 해서 궁금하던 차에, 교회 밖에 서있던 오 권사를 사모가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 교회는 매일 밤 나이 많은 권사들이 밤 12시까지 기도를 하고 새벽예배를 드리곤 했다. 젊은 오 권사도 그들과 같이 밤에는 교회에서 기도하고, 새벽예배까지 드리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성령 충만한 체험을 하고 “내가 죄인이구나”라는 고백을 하게 됐다. 오 권사는 “첫사랑을 회복하기 쉽지 않다고 하는데 그때가 가장 뜨거웠다”고 회상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복음을 전하는 이들마다 교회에 나왔다.

“지금까지도 전도가 어려운지 모른다.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신 것 같다.”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에게 ‘교역자 사모’가 되라고 했지만 오 권사는 그 의미를 몰랐다. 믿지 않는 집안에 시집을 간 오 권사는 “그때는 몰랐지만 믿지 않는 시댁 식구들을 구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 같다”고 말했다.

오 권사의 시댁은 장손으로 절을 짓는데 일조할 정도로 뿌리 깊은 불교 집안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그 댁 어른이 교회에 나가면 천지가 개벽한다”라고 할 정도였다.

가까운 남편부터 주위 사람들도 오 권사에게 시댁 전도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한 오 권사는 시댁을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다.

오 권사의 시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주위에서 “절대 못 모신다”는 시아버지를 모셨다. 하지만 평소에 할머니를 지극히 모셨던 오 권사의 남다른 공경을 봐왔던 것 고향의 어르신들은 “너라면 시아버지를 모실 수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1남1녀의 자녀들과 시동생, 그리고 시아버지까지 함께 사는 생활이 시작됐다.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여러 지역에서 살아야했지만 시아버지를 모시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면도를 해드리는 등 16년의 시간을 보냈다. 장손인 시아버지를 모시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1년에 15번 이상은 30여명의 손님들이 오 권사의 집을 방문했다. 그들에게 늘 음식을 차려주고 대접하는 일에서부터 가사일과 육아까지, 이런 생활을 하는 그를 보고 고향 어르신들은 또다시 “오 선생이 복 안 받으면 누가 복 받겠냐”며 그를 북돋았다.

“하나님께서 시아버지의 육신이 아니라 영혼을 불쌍하게 보게 하셨다. ‘내가 저들의 구원을 위해 누구를 보낼꼬’ 하시던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이다. 몸은 고단했지만 영혼 구원하는데 사용된다는 기쁨에 모셨던 것 같다.”

어느날 시아버지가 오 권사에게 “왜 나한테 잘 해주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 권사는 “성경책에 그렇게 쓰여 있다”고 답했다. 그의 시아버지는 70세에 그의 집에 와서 73세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해 소천하기 전 교회에 감나무를 심고, 가지고 있는 금은도 다 교회에 헌납하고, 한주도 빠지지 않고 주일성수를 지켰다. 병상에서 사흘 동안 누워 있으면서 “우리 며느리가 최고다”라는 칭찬도 남겼다. 임종을 지킨 모든 이들이 천국으로 떠나는 시아버지를 지켜봤다. 조문객이 1천 7백 명이 될 정도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전하는 오재임 권사. 정성경 기자 

전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던 오 권사는 주위에 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다 서울에서 개척교회를 섬기게 됐는데, 그곳에서 교역자 한명을 배출하는 등 사람을 세우는 일에도 동역하게 됐다. 하지만 개척교회를 위해서나 오 권사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새로운 교회를 찾아야 되는 상황이 왔다. 그리고 만난 이가 목양교회 임준식 목사다.

목양교회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를 통해 임 목사를 만난 오 권사는 “심령의 갈급함이 이곳에서 풀렸다”고 고백했다. 교회 등록도 하기 전, 콜롬비아로 떠나는 임 목사에게 “가시다 간식 사드시라”고 3만원을 건넸었다. 콜롬비아에서 돌아온 임 목사는 어느 교회에 다닐까 고민하고 있던 오 권사를 심방해 그의 마음을 꿰뚫는 기도로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같이 사는 시동생이 “꿈에서 목양교회 임준0 목사라는 분이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걸고 있었다”며 또 다시 오 권사의 걸음을 목양교회로 재촉했다. 오직 아내 사랑하는 마음으로 1년에 교회에 3~4번씩 교회에 함께 가주던 오 권사의 남편도 목양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목사님의 말씀이 좋다”며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목양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오 권사는 현재 목회자를 돕는 동역자, 교회를 함께 세우는 성도로 사역 중이다.

“사람인지라 모든 것이 맞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고집이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달라고 한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무엇이든 참을 수 있고, 무엇이든 견딜 수 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하셨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셨다.”

오 권사는 “나를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새벽 종소리에 손을 모아 기도하던 소녀가 이제는 권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할머니가 되어 손주를 축복한다.

“기도 제목은 다음 세대가 든든히 세워지는 것이다. 영혼 하나 천국에 보내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그 사명을 감당하고 싶다.”

목양교회 30주년을 맞아 임준식 목사와 함께 한 오재임 권사. 본인 제공

 

사진설명: 목양교회 30주년을 맞아 임준식 목사와 함께 한 오재임 권사.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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