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호용 교수 "침몰한 개신교회, 부활 신학으로 나아가야"
[인터뷰] 박호용 교수 "침몰한 개신교회, 부활 신학으로 나아가야"
  • 권은주 기자
  • 승인 2019.11.06 14:0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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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회, 500년마다 패러다임 시프트 현상
십자가에 머문 종교개혁, 이제 부활신학으로
천국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는 것
예수를 왕으로 삼는 제3의 종교개혁 이뤄야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일이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됐다. 2017년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각종 행사와 예배를 드리고 성지를 방문했지만 교회가 새로워지기보다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대전신학대학교 박호용 교수는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교회가 ‘십자가 신학’에서 ‘부활 신학’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AD 1세기 탄생한 초대교회 때부터 500년 마다 신학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말한 그는 한국교회부터 제3의 종교개혁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신학의 패러다임 전환, 교회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을 박호용 교수에게 물었다. 권은주 기자

박호용 교수는 한국교회가 살아나려면 제3회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십자가 신학에서 부활 신학으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호용 교수는 한국교회가 살아나려면 제3회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십자가 신학에서 부활 신학으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00년마다 신학적 패러다임이 변했다고 했는데 자세히 설명해 달라
지난 2천년 동안의 기독교회 역사는 약 500년 단위로 분열과 개혁의 길을 걸어왔다. 초대교회는 샘계, 헬라계, 라틴계가 기독교인을 형성했다. 그러다가 500년 후에 샘계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한 단성론을 주장하여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후 약 500년 후인 1054년에는 동서방교회가 분열됐다. 이때 헬라계인 동방교회가 떨어져 나갔고 이후 1517년 종교개혁을 통해 서방교회에서 카톨릭이 남고 개신교가 분열되어 나가게 됐다. 이렇듯 기독교회사를 보면 약 500년마다 패러다임 시프트가 나타났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넘은 지금이 바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한 시기다.

한국교회가 세속화 위기 속에 본질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어떤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하는가       
바울신학에서 예수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방교회 개신교는 바울에 기초를 뒀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기독교회는 도덕적 타락뿐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요소들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만연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빗나간 중세교회적 상황에서 루터는 바울 신학의 이신칭의 즉 돈으로 면죄부를 사는 것과 같은 인간적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말했다.
루터는 로마서 1장 16-17절 말씀을 붙들고 제2의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었다. 루터의 제2의 종교개혁은 바울의 복음, 즉 ‘십자가 신학’과 ‘하나님의 의의 복음’에 기초한 개혁이었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500년이 지난 21세기 제3의 종교개혁은 바울에서 예수로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 즉 ‘십자가 신학’에서 ‘부활의 신학’으로 ‘하나님의 의의 복음’에서 ‘하나님 나라(천국)의 복음’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다.

십자가 신학과 부활 신학의 차이점을 설명해 달라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두 축이다. 그런데 지난 500년 동안 개신교는 십자가복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또 한 축인 부활 복음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하다시피 했다. 배가 양쪽이 균형을 이루어야 항해를 제대로 할 텐데 십자가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나머지 개신교회라는 배는 침몰하고 말았다. 십자가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사랑의 십자가이고, 다른 하나는 고난의 십자가다. 개신교회는 십자가를 강조하면서도 십자가가 갖는 두 가지 의미 중 한 가지 즉 전자에는 Yes하지만, 후자에는 No했다. 즉 제자도로서의 십자가는 지기 싫은 것이다. 이는 비단 지금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싫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고난과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신앙이 필요하다.

부활신앙이란 무엇인가
부활신앙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생과 세상 나라를 능히 이기고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를 담지하고 있다. 십자가 앞에서 다 넘어진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나서 죽음과 세상을 모두 이기고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도 부활신앙 때문이었다. 오늘 세상사에 초연할 수 있는 비결, 세상적인 것들로 인해 넘어지고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강력한 힘은 부활신앙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변화가 없고 세상에 져서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면서 변질과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부활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부활의 복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십자가의 능력이란 부활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다(고전 1:18 이하). 부활체험이 있어야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제자도인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다. 예수님은 부활을 믿었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고, 제자들은 부활을 체험했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한국교회가 구원파 신앙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는 하지만 삶에서 신앙의 열매가 나오지 않는 까닭에서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것이 바로 십자가 신학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천국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말은 단 한 구절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어 통치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는 나라지 어딘가에 있을 장소를 향해 우리가 가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시는 주님을 왕으로 모실 것인가 아닌가를 결단해야 한다. 왕으로 행차하시는 그분을 왕으로 모시는 것(시 68:24), 즉 ‘왕의 교체’를 가리켜 믿음 즉 회개, 거듭남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회개, 거듭남이란 단지 회심과 같은 추상적인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내가 마음으로 왕 삼는 것을 내려놓고 예수를 왕 삼는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분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분을 왕 삼지 않고 다른 그 무엇을 왕 삼는다면 그것은 믿음 즉 회개, 거듭남이 아니다.

입술로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내가 왕이 되어 살 때가 많다. 이 모습이 보통의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모습 아닌가
맞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현실을 보면 천국의 본래 개념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도 즐겨 천국을 말하면서도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기복신앙, 즉 예수가 왕이 아니라 내가 왕이고 예수는 내 문제의 해결사가 되어, 내 소원과 욕심을 만족시켜주시는 분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왕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속사람이 변하지 않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무늬만 그리스도인’, 즉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왕의 교체에 의한 속사람의 변화가 없이는 세상 사람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지난 500년 동안 개신교회는 칭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화의 중요성을 간과하였다. 즉 삶의 변화가 없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한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했고,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세상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어떤 믿음으로 나가야 할까
마음 중심에는 예수 아닌 자기만의 또 다른 왕을 꼭꼭 숨겨놓고, 입으로만 “예수 우리 왕이여”를 소리 높이 외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왕의 교체를 이루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삶의 변화’를 일컫는다. 내가 왕 삼고 있는 모든 것, 돈, 명예, 건강, 가족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죽는 날까지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 목사들의 가장 큰 왕은 교회가 될 수 있다. 교회도 도구지 왕이 아니다. 나는 구약학 교수이기도 루터를 연구하고 공부했다. 루터나 칼빈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 둘을 넘어가야 한다. 초대교회 예수신학으로 넘어가야 한다. 로마서가 아니라 복음서로 넘어가야 한다. 바울이 근원이 아니라 예수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십지가 신학에서 부활의 신학으로 넘어가 진정한 제3의 종교개혁을 이루기를 원한다. 한국교회가 예수를 왕으로 삼는 진정한 교회로 거듭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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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2019-11-06 18:48:11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나라는 우상을 깨트리고 참주인으로 모시고 변화되었습니다.
제자들처럼 부활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예수님이 나에게 누구신지가 실제가 됩니다.

난소리 2019-11-06 18:04:46
부활신앙이 제3의 개혁운동임이 확신됩니다.

십자가인생 2019-11-06 16:46:55
내 인생에 부활이 빠졌어군

그레이스킴 2019-11-06 16:38:38
부활과 십자가!! 아멘!!

지무시 2019-11-06 14:31:04
부활신앙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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