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독립운동가 김춘배
크리스천 독립운동가 김춘배
  • 박세홍 지역기자
  • 승인 2018.08.15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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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을 팔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가문
형 김성배 목사 등 5형제가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

독립운동가 김춘배 보다 그의 할아버지였던 김헌식 영수를 먼저 소개해야겠다. 김헌식 영수는 1902년 한국에 온 맥쿠첸(McCutchen; 한국명:마로덕)선교사에게 이듬해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그는 삼례제일교회 초대 영수가 되었고, 1907년 봄에는 교인이 100여 명가량 늘어 김헌식의 사랑채에서 예배드렸다. 김헌식의 아들인 김창언은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인의 갖은 행패를 참지 못하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1918년 토지를 처분하여 머슴들에게 나누어주고 53명의 가족이 만주 용정 천보산으로 떠났다. 만주에서 나라 잃은 설움이 짙어졌고, 슬하의 5형제는 이후 독립군 홍범도이 이끄는 부대 등 여러 부대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1934. 5. 15 김춘배가 8년 형기를 마치고 만주에서 가족사진 윗줄 왼쪽부터 김성배 목사, 김춘배, 앞줄 오른쪽이 외아들 김종수 장로(당시 8세)

먼저 독립군 활동을 했던 이가 김창헌의 큰아들 김성배다. 김성배는 독립군의 무기를 구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오면서 일본군과 교전 중에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의약품이 변변치 못할 때라 민간요법으로 치료하여 많은 고생을 했다. 김성배는 이후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상해에서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서울에서 잠시 의원을 운영했지만 삼례제일교회 장로들의 간청으로 1948년 삼례제일교회에 부임하게 되어 목회했다. 이후 목포양동교회, 광주서석교회, 전주중부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자녀들을 따라 미국에서 소천했다.

김헌식의 둘째 아들이 바로 김춘배다. 김춘배는 1905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태어났다. 삼례제일교회에서 세운 영신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 갔다. 만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김춘배는 관통상을 입고 공부하러 떠난 형님을 보며, 형님 대신 독립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청천 장군이 조직한 정의부대에 가담했다. 아버지의 포목상에서 광목을 팔러 나가겠다고 하고, 수십 필의 말 달구지에 싣고 그대로 독립군에 가입했다. 가져온 광목으로 독립군 군복을 공급했고, 그때가 1925년, 그의 나이가 20세에 불과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호외기사 사본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호외기사 사본

 

이듬해 1926년, 김춘배는 만주 용정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했다. 김춘배를 잡지 못한 일본군은 집안 친척을 고문하고 협박하여 결국 김춘배의 자수를 받아낸다. 김춘배는 6년형을 받고 청진 형무소에 갇혔고, 탈옥의 죄가 더해져, 만 8년만인 1936년에 형기를 마치고 출옥했다. 당시 형 김성배는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읍교회 목사로 시무하고 있었고, 김춘배의 아내 전명숙과 외아들도 그곳에 함께 있었다. 아내는 명태 내장을 제거하는 일을 하면서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형무소에서 양복 만드는 기술을 배워, 신창읍교회 교인의 주선으로 양복점에서 잠시 일했다.

김춘배의 독립심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출옥한지 얼마 되지 않아, 1936년 10월 2일 거사를 치렀다. 신창주재소(치안센터) 무기고를 털어 장총 6정, 권총 2정, 실탄 800발을 탈취했고, 무기들을 신창읍교회 강대상 아래에 숨겼다. 그곳은 평소 성탄절 기물을 넣어두는 장소로 일 년에 한 번밖에 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김춘배는 이후 북청어업조합을 습격해 군자금을 마련해 만주 독립군과 합류하려고 했다. 약 19일간의 도망다니면서 김춘배를 잡으려고 일본 경찰 병력 2만 명이 동원되었으며 2만 원(당시 쌀 한 가마 : 8원)의 비용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19일 가량을 도망 다닌 후, 한국 청년의 밀고로 신창역 부근에서 잡히게 되었다. 이 일이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단독 호외로 소개될 만큼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조선일보는 삼례에서 김춘배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김춘배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이 사건에 얽혀 지목되고 조사된 사람이 많았다. 대다수가 신창읍교회 교인이었다. 김태선 집사, 이명하 교회간부, 김윤식 집사(양복동업자), 손시라 전도부인, 장인실 유치원 교사들이 조사를 받았다. 이 일을 김춘배 혼자 계획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고문하고 회유해도 공범자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예수님처럼 홀로 짐을 짊어지겠다는 각오로 입을 다물었다. 그 해 11월 무기징역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해방과 함께 석방되었지만, 아내는 죽었고, 아들은 어려 그를 반겨줄 사람은 없었다. 해방 이듬해 12월 1일 고문의 후유증으로 길거리에서 숨을 거뒀다. 망우리 공동묘지 한구석에 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광복 73주년을 맞이하여 도서출판 흔적에서 ‘독립운동가 김춘배(이승철, 김경근 엮음)’라는 단행본을 냈다. 잊혀진 크리스찬 독립운동가 김춘배를 다시 조명하며 선진들의 믿음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발행인 정복량 목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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