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최승원 교수가 꿈꾸고 있는 한국판 통곡의 벽 ‘아리랑 로드’
테너 최승원 교수가 꿈꾸고 있는 한국판 통곡의 벽 ‘아리랑 로드’
  • 엄무환 국장
  • 승인 2022.04.22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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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장애인들이 울분을 토하며 힐링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빌어먹을 세상아! 절름발이 나를 버리면 곧바로 벌 받을거야)

네 살 때 소아마비 장애인이 된 테너 성악가 최승원 교수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장애인들이 가슴에 쌓인 울분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한국판 통곡의 벽 ‘아리랑 로드(ARIRANG ROAD)’를 꿈꾸고 있다.

최 교수가 구상하고 있는 ‘아리랑 로드’는 강원도 고성군의 동해(東海)에 위치한 섬과 섬 사이의 바다 위에 왕복 4km로 부산의 광안대교처럼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을 서로 다르게 하기 위해 아래위 두 개로 세워질 다리이다.

어떤 사유로 최 교수가 ‘아리랑 로드’를 구상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강원도 고성 바다 위에 4km의 다리를 세우겠다는 것인가. 고성 바닷가에서 최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아리랑 로드가 세워질 장소인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서 기도하는 최승원 교수
아리랑 로드가 세워질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서 기도하는 최승원 교수 / 엄무환 국장
아리랑 로드가 세워질 강원도 고성 바닷가를 바라보는 최승원 교수 멀리보이는 섬이 아리랑 로드의 출발점이 될 예정이다 / 엄무환 국장
아리랑 로드가 세워질 바닷가를 바라보는 최승원 교수.  멀리보이는 섬이 아리랑 로드의 출발점이 될 예정이다 

‘아리랑 로드’, 최 교수의 삶과 무관치 않다

최 교수가 ‘아리랑 로드’를 구상하게 된 것은 그가 살아온 장애인으로서의 삶과 무관치 않다. 그래선가 “어떻게 ‘아리랑 로드’를 구상하게 되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기저귀를 찼었던 제 모습이 어렴픗이 기억 저편에 남아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소아마비에 걸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웃게 하려고 팔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작은 구루마에 눕히고 신나게 달리시던 학철 아저씨의 신나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디귿자 모양의 세 가구가 살았던 집 구조도 생각난다. 잘살았다고 하는데...”라며 자신의 지나온 삶의 애환을 먼저 끄집어냈다.

이는 그가 온몸으로 경험해야만 했던 장애인으로서의 삶의 애환이 ‘아리랑 로드’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낳는 산실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더 이상의 질문을 멈춘 채 그가 얘기하려는 지나온 삶에 대한 인생 스토리를 조용히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그의 입이 열리면서 60년 가까이 잠가둔 그의 인생 문빗장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1964년 이른 봄쯤이라고 들었다. 1961년 9월 강릉에서 태어난 나는 두 살 때 버스 사업을 하시려는 아버지를 따라 당시 탄광으로 유명했던 (태백시) 황지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워낙 개망나니라 조그만 동네에서 알아주는 깡패 주니어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단다. 네살박이 치고는 키도 크고 덩치(?)가 우람하여 눈에 쉽게 뜨였다고 한다. 집집마다 어느 장독이 새로운 것인지 귀신같이 알고는 기어코 깨뜨려야 하는 그래서 그 피해보상 비용을 모았더라면 당시의 집 한 채는 살 수 있었다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고모들로부터 증거물(사진이나 영수증)은 없지만 입으로 전해 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똥개처럼 영역표시를 굳건하게 활보하던 말썽꾸러기가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무너져 팔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기저귀를 다시 차야만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은 엄마의 등에 업혀서 학교를 다녔다. 조금만 걸으면 갈비뼈 주변이 땡기고 숨이 차서 걷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이를 악물고 걸음을 내딛다가 현기증에 땅바닥에 주저앉곤 했다. 어머니의 소원은 대학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문맹을 깨우쳐서 글이라도 익히게 되면 동사무소에 앉아서 서류정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단다.

서울 보광동에 있는 보광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집 뒤에 있는 오산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뺑뺑이 추첨이 잘못되어 집 뒤에 있는 오산고등학교를 두고 버스를 2번 타야하는, 적어도 1시간 족히 걸리는 후암동 용산고등학교를 다녔다. 내 삶에 가장 빡쌨던,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암흑기였다. 살을 꽁꽁 얼려버리는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가방은 띵띵 무겁고 곱은 손은 가방을 쥘 수가 없고 결국 한쪽 가방끈을 잡고 질질 끌며 넘어지며 자빠지고를 반복하며 등교했다. 학교 앞에 수도여고가 있었는데 그녀들한테 부끄러워야할 여유도 없었다. 훗날 운전해서 용산고 앞을 지날 때면 씁쓸한 미소 맛이 묘하다. 공부가 지지리도 되지 않았다. 등교하고 나면 체력이 고갈되어 비몽사몽, 몽롱한 상태가 마지막 수업이 돼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어쩌다가 한양대학교 음대 성악과에 다니게 되었는데 체력단련의 연장이었다. 온통 계단투성이고 음대는 산 넘어서 저 끝에 박혀있었다. 손으로 108계단을 더듬으며 등하교했지만 그나마 지옥 같았던 가방에서 해방된 것이 큰 위안이었다.

2014년 겨울 반월제일교회(남능현 목사님) 새성전 건축을 위해 교회건축 전문가 조경수 박사님을 소개하던 날 교회 앞마당에 살짝 내린 눈에 미끄러져 그나마 조금 힘을 쓰던 오른쪽 발목 복숭아뼈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세상에 오한이 부러진 뼈틈새로 마구 쳐들어와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했고 나의 고통스런 비명은 반월에 가득 찼었다. 진짜 무지 아팠다.

어쩔 수 없이 전동휠체어를 타기 시작했다. 나는 왼손도 심한 장애가 있어 일반 휠체어를 굴릴 수가 없기에 전동휠체어를 운전시험 거치지 않고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동휠체어를 타면 눈높이가 대부분 앞에 걸어가는 사람의 엉덩이 맞닿게 된다. 그 엉덩이에 대고 비켜달라고 큰 소리치면 잘 들리지 않은 지 뒤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고 돌아봐도 엉덩이 아래쪽으로 시선이나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매우 희박하다는 사실에 새삼 휠체어 삶이 생각보다 불편함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잘 가다가 길이 막혀 뒤돌아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어디에도 휠체어를 위한 생활가이드 앱은 찾아볼 수 없었기에 성격파탄의 휠체어 장애인으로 변모해갔다.

주로 노란색의 카니발 장애인 택시를 이용했는데 가수 강원래 아우의 추천으로 지하철을 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휠체어 장애인의 삶의 고충을 깨닫기 시작했다. 요양생활을 체험하다가 노느니 요양원을 운영 할 수 있다는 사회복지학 박사학위 공부를 시작했다.

2016년 가을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의사선생님께서 되도록이면 지팡이를 필수로 가지고 다니라 하셨다. 그동안 오랜 시간 걷지 못했기 때문에 척추 중심축이 어색해서 자주 넘어짐을 방지함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걸을수록 자꾸 왼쪽으로 방향이 쏠려짐을 파악한 후 진지하게 재활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2017년 같이 살던 식구들이 막내아들의 미국대학교 입학 시기에 맞춰 나만 한국에 남겨두고 미국으로 들어갔다. 기러기아빠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난 식상한 표현이 싫어서 독수리 아빠라고 우겼다. 약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달청과 나라장터에 입찰과 공공구매 사업으로 바쁘게 지내던 중 대전의 원자력연구소에 낙찰이 되어 신나서 기계 설치와 검수 준비를 하다가 그만 또다시 오른쪽 정강이뼈 두 쪽이 부러지는 사고를 입었다. 16개의 핀이 부러진 뼈를 지탱하는 수술을 받았다.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해서 전원을 꺼버리고 병원과 요양병원으로 잠수를 타버렸다. 우울한 시간과 환경에 적응되어 갔다. 온통 무기력 투성이었다. 저번에 일어서는 기념으로 나의 애마 전동휠체어는 대학로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 기증해버렸기에 다시금 전동휠체어를 구입했다. 다시는 안타길 원했었기에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짜증과 부끄러움이 내 머리 속에서 서로 경주하는 듯했다. 저번보다 더 진하게 요양원 생활을 하면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에 전념했다. 그리고 뼈를 두 번씩이나 부러뜨리면서까지 마침내 2019년 드디어 철학박사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최승원 교수
전동 휠체어를 타고 열차에서 내리는 최승원 교수

아리랑 로드, 최 교수의 가슴에 잉태되다

“2007년 태국 방콕에서 세계장애인 배드민턴 챔피언십 대회에 국제심판으로 또 장애인 배드민턴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많은 장애인 플레이어들과 만나고 친해지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는 심판으로 또 최약체 등급의 선수로 다른 나라 선수들과 친목을 쌓았다. 하루 경기 일과를 마치고 두루 둘러앉아 도시락 식사를 하던 중 여러 번 반복되어 입에 오르내리던 이야기가 우리 장애인들이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디즈니 같은 테마파크가 있으면 그곳에서 시합없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TV를 보다가 우연히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간절한 기도제목을 쪽지에 써서 통곡의 벽에다 꽂고 큰 소리로 울면서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기도하는 성지테마 장소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불현듯 내 머리속을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의 가슴속 응어리나 울화를 토해내는 테마파크 플레이스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장애인 전용 전동휠체어의 평균 최고 시속 속도는 대략 9km 정도이다. 이 속도로 멈춤 없이, 막힘없이 그리고 보는 시선 없이 또 그 어떤 방해 없이 달리면서 기도하는 곳, 설움을 터트리고 덜어내는 곳, 더러는 응어리진 한을, 소크라테스도 있는데 하필이면 왜 내가 장애인이냐는 등 온갖 육두문자와 거친 말까지 토해내고 울화를 씻어 내는 우리 장애인만의 테마파크 장소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통곡의 벽1 - 통곡의 벽 공식사이트 갈무리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 - 통곡의 벽 공식사이트 갈무리
통곡의 벽2 - 통곡의 벽 공식사이트 갈무리
통곡의 벽에서 울부짖는 유대인 - 통곡의 벽 공식사이트 갈무리

어떤 이들은 바닷가보다는 한적한 호수 주변이나 내륙의 경치 좋은 곳이 어떠냐고 하지만 내가 굳이 바닷가, 그것도 동해 바닷가를 주장하는 것은 동해의 파도가 서쪽이나 남해에 비해 거칠고 소리가 요란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 거침이 세상 풍파를 의미함이요 요란함이 세상살이라는 의미를 두고자 4km의 아리랑 로드 아래에 부딪히는 파도와 달리는 장애인의 응어리가 섞여져야 더 깊은 한을 토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구 조건이 합일치되는 서해나 남해에도 있겠지만 남북이 절단(소통불가라는 의미)되어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이고 또 강원도가 절반 나눠져 있으며 강원도 고성이 절반으로 나눠져 있어 기차가 끊어져 절단되어 있다 해서 장애인 시각의 의미로 고성의 바닷가를 택한 종합적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최 교수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4km)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아리랑 노래 가사처럼 ‘장애인을 아프게 하면 얼마 되지 않아 망하게 된다’고 고함치는 아리랑 로드를 세우고 싶다“며 “그러나 휠체어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신체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도 함께 공유하며 힐링할 수 있고 젊은이들의 장애체험 장소와 삶의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암말기 가족과 이별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장소로도 활용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꾸역꾸역 장애인들이 자주 찾다보면 다양한 이벤트, 세계장애인 스포츠 챔피언십과 문화 페스티벌, 인권포럼 등이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어 지역발전 활성화에도 충분히 기여할 것이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러면서 “12억의 세계장애인의 아픔이 치유되어 건강한 지구환경을 만들기 위해 또 비장애인의 눈치를 안보며 마음 놓고 달리며 치유할 수 있는 장애인 테마파크 ‘아리랑 로드’를 가까운 시기에 보기를 희망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최 교수의 마음에 잉태된 ‘아리랑 로드’가 실현될 그 날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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