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대담] 말씀을 말씀으로 읽는 예수살기 (1)
[특별 대담] 말씀을 말씀으로 읽는 예수살기 (1)
  • 최상현 기자
  • 승인 2022.04.14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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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 기독교와 ‘한글 성경’
복음과 민주주의 발전
한국 교회가 위기에 봉착한 이유
지형은 목사. 최상현 기자.

진행: 박진석 목사(본보 편집인)

대담: 지형은 목사(기성 총회장, 한목협 대표회장, 성락성결교회 담임), 임희국 교수(장신대 명예교수)


박진석(이하 박): 가스펠투데이는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개혁신학과 근본 신학의 충돌 속에서 나아갈 길의 해답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있을 것이다. 성경이란 무엇인지,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그 의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임희국(이하 임): 한국 개신교는 초창기부터 ‘성경 기독교’로 그 성격(특성)이 형성되었다. 외국(미국) 선교사가 한국에 정식으로 첫 발을 들여놓기(1885) 이전에, 이미 신약성경이 중국의 만주와 일본에서 한글로 번역되었다. 만주에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년)와 신약 『예수셩교젼셔』(1887)를 발간했다. 일본에서도 이수정이 한문문리 성경에다 이두식으로 토(吐)를 붙이는 『懸吐漢韓(현토한한) 신약성경』을 완성해 나갔다.

19세기 말 한국 대중의 일상 생활문화를 경험한 선교사들은 ‘불편함’, ‘불결하고 비위생적’, 그리고 ‘가난함’을 토로했다. 이 문화는 이들에게 투쟁의 대상이었다. 즉, 선교현장의 문화와 충돌을 빚으며 이 문화와 투쟁해야 했고 또 그러면서 이 문화를 이해해야 했다. 이들은 한국 대중의 일상과 동떨어져 살면서 서양(미국)식 일상을 그대로 유지했다. 캐나다 출신 선교사 게일(James S. Gale)이 한국의 정신문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나라의 일상이 그에게도 역시 불편하고 불결하여 비위생적이었지만, 그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준이 아주 높다는 점을 알아챘다. 겉으로 보이는 한국 대중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가난하여 아주 초라해 보이지만, 그 내면의 정신문화는 수준이 아주 높다는 점을 알아챘다. 그는 이 나라 사람들이 본래 “책읽기를 좋아하는 민족”이고 “학문을 좋아하는 심성”을 가져서 매우 “높은 교육열”을 가졌다는 점을 파악했다. 게일이 한국 정신문화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이 나라의 토착 언어인 한글의 가치도 발견했다.

게일은 ‘한글이야말로 한국의 선교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두셨던 특별한 섭리’하고 다시 한 번 감탄했다. 한글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점은 선교사에게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토착 언어로 복음을 증언하여 토착인의 문화 속으로 복음이 성육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형은(이하 지): ‘말씀으로 돌아가자!’ 기독교 이천 년 역사에서 교회가 약해지고 병들고 타락하면서 미래가 암담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외쳤던 말이다. 기독교 신앙의 근원과 완성과 본질이 66권 성경에 있으며 교회와 세계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식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성경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서 서고 넘어진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유일하고 완결된 계시입니다.

계시(啓示)의 뜻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는 것 또는 당신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을 말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사건 곧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과 성령의 강림이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계시의 중심이다. 특별계시를 근거로 하여 일반계시 또한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사람다움의 덕목들 곧 사랑, 평화, 나눔, 섬김, 공감, 연대, 희망 등이 일반계시의 내용이다. 이런 가치들은 언제나 성경의 특별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덕목으로써 교회와 세상 전체를 섭리하며 이끄신다. 교회는 거룩한 성서의 말씀을 땅 끝까지 전하여 이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명을 받았다.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말세의 비밀 병기가 교회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배태(胚胎)되었고 성령의 강림으로써 역사 속에서 사회적 집단으로 탄생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뗄 수 없이 이어져 있다. 제아무리 교회의 규모가 크고 아무리 사역이 많아도 말씀의 사역이 약해지면 교회다움을 잃어버린다. 교회가 커지고 사역이 다양해지면 교계와 사회적인 관계 영역에서 영향력도 커진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말씀 사역이 옆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악한 영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교묘한 공격이다. 세속주의적인 힘을 가지게 하면서 성경적인 능력을 무력화하는 아주 오래된 유혹이며 지금도 여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도행전 1장부터 6장 7절까지에 기록된 예루살렘 교회 이야기에서 이 점이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유혹과 공격을 물리쳤다. 사도행전 6장 4절에 보면 사도들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영적인 분별력으로 다시금 말씀 사역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임희국 교수.

박: 우리나라에 성경말씀이 들어오고 복음이 뿌리를 내리면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발전되었나?

임: 국민이 주인이라는 의식이 발전했다. 그 씨앗이 된 것은 바로 ‘여성’이었다. 구체적 사례를 들자면 1902년 1월, 대구 팔공산에서 부해인(브루엔) 선교사가 부회인 선교사가 2인에게 베풀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여성은 자기 이름이 없었고 호적에 오르지 않는 존재였다. 그래서 부해인 선교사는 세례를 주며 여성에게 이름을 주었고 이름을 받으며 여성의 존재 또한 달라졌다. 한명의 존엄한 인간이 된 것이다.

두 번째 크게 다가온 사건은 상동감리교회 정재면 선생이 팀을 이뤄 북간도에서 신식 교육, 기독교 교육을 펼친 것인데, 신식교육과 함께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자 여성도 교육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당시 간도에는 교육을 받을 여성 16명이 있었으나 출석부에 올릴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정식 이름을 주기 위해 믿을 신(信)자 돌림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문익환 목사의 어머니 김신묵 권사다. 이후 기록들을 보면 1920년대에 서서평 선교사가 호남, 광주 중심으로 여성 선교를 활발하게 펼쳤는데 그때도 호남 여성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이일학교를 세워 교육을 받도록 했다. 여성들은 학문을 배울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술 교육도 받을 수 있었고, 그 중심에는 항상 ‘성경’이 있었다.

지: 한 가지 특별한 점은 한국에 초기 기독교가 들어올 때, 선교사가 이 땅에 발을 딛기 이전에 이미 성경이 번역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보면 복음이 전파될 때 어느 선교 현장에서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피선교지의 문화와의 접촉점’을 갖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의 식자층이 갖고 있었던 지식 체계, 한학이나 유학적 가치관에 성경이 접목되면서 말씀이 가진 진리가 사람들을 변화시켜나갔다. 서구기독교 역사에서는 종교개혁이 성경을 재발견했다고 한다.

종교개혁 당시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보다 교리 문답서를 자주 접했다. 루터가 말년에 부인 카타리나 폰 보라에게 쓴 편지를 보면 “당신의 신앙을 늘 충만하게 유지하기 위해 교리 문답서를 매일 읽어라”고 쓰여 있다. 이처럼 교리문답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성경 중심으로 옮겨간 것이 경건주의 운동이었다.

기독교의 중심인 경전, 진리를 담고 있는 66권의 성경을 이해하고 인식하면 삶이 변한다. 이것은 2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가장 정통적인 모습인데 한국 초기 역사에 복음이 전파된 모습을 보면 정말로 획기적이다. 특히 사경회의 모습을 보면 성경 본문을 읽고 깨닫는 것, 기도하며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 말씀에서 삶으로, 텍스트에서 컨텍스트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사경회의 기본구조였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는 큰 복을 받은 나라다.

박: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된 후 말씀과 함께 걸어온 역사를 가졌음에도, 오늘날 기독교가 어려움에 봉착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임: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두 번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생존의 위기가 있었다. 외세의 침략과 러일 전쟁, 청나라와 일본은 전쟁을 벌였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를 버리지 않으면서 성경을 받아들였고, 경전을 귀히 여기는 문화 속에서 말씀이 읽히기 시작했다. 반면, 1960년대에는 산업화를 거치며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송두리째 뽑아 던져버렸다. 경북 안동에 가면 지역 곳곳에 서원이 있고 학파의 가문과 그 흔적들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도 버텨온 역사적이 곳이었다. 그런데 1972년, 안동에 댐을 건설되면서 53개의 마을과 함께 그 모든 전통과 문화유산, 독립운동의 성지들이 수장되어 버렸다.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것을 송두리째 없애버린 것이다. 이어서 산업화와 함께 따라온 것이 ‘경제 제일주의’였다. 다시 말해서 천박한 논리의 자본주의다. 자본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해나가면서 교회도 그 울타리 속에 갇히기 시작했다. 기복 신앙, 번영 신학 또한 천민자본주의에 놀아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한국 교회는 경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고 있다.

박진석 목사.

지: 교회성장주의, 번영 신학, 교회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 교회가 매몰되어 버렸다. 한 선배 목회자도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 세대는 다 비슷했어. 교회를 크게, 사람도 많이 모으고 싶었어.” 과연 초교파적으로 문어발식 확장과 대형 교회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나타났다. 선배 목사님은 “지 목사 때에는 새로운 구상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희망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실 나도 늦었다. 30-40대에서 새로운 구상,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번영 신학과 교회성장 지상주의에 매몰된 영향을 단면은 매우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 세계 교회 중에서 한국만큼 성경 읽기와 암송에 열정을 가진 교회는 드물다. 그런데 성경을 대할 때 보면 업적, 성과, 횟수를 경쟁적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매우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면 1년에 성경 1독을 하자고 하면 경쟁적으로 통독하고 10독을 하는 이들도 있다. 성경 필사 또한 교회별로 경쟁하는 필사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말씀을 업적이나 경쟁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루터는 “내 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되기를 원하지만 만약 성경을 읽는데 방해가 된다면 먼지 속에서 잊히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은 겸양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읽고 묵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귀는 다른 모든 것은 격려하지만 딱 한 가지 핵심 기둥만 무너뜨린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다. 그 수법은 태곳적부터 사용해온 대단한 노하우이며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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