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소란스러운 때에 부는 바람
[예술과 목회] 소란스러운 때에 부는 바람
  • 백우인 목사
  • 승인 2022.02.25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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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백우인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박사과정,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하루하루 말들이 많은 소란한 시국이다.

말들은 백만 볼트에 해당하는 높은 고압전류가 흐른다. 게다가 제각각 색깔 옷을 입고 강한 에너지를 방사한다. 감전되고 타서 죽을 만큼 위험한 말들이다. 사방에서 진실의 분출물이라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어떤 것들이 진실의 분화구에서 뚫고 나온 마그마인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물자체를 두고 칸트는 인간의 감성과 지성으로 외부의 사태를 걸러 인식한다고 하지만 그리하여 진실의 언저리에서 늘 미끄러질 뿐이라고 라캉은 말하지만, 우리의 여과 공간인 감성과 지성은 지금 작동할 수도 없을 만큼 불온하고 자욱한 억견들로 범람한다.

우린 다시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퓌론주의(Pyrrhonism)의 망령이 도래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퓌론의 뒤를 이어 마르틴 루터도, 데카르트도 니체도 라깡도 까뮈도 들뢰즈도 카를로 로밸리도 매트릭스 속의 네오도 계속해서 의심의 코드로 우리의 고정된 관점을 흔든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또박또박 우리의 뇌리에 새겨주고 싶은 것은 “속지말라, 의심하라, 방황하라, 픽션이 아닌 너를 찾아라”는 경고다. 들려지는 것과 보여지는 것들을 액면 그대로 곧이곧대로 사실이라고 진실이라고 믿는 순진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누군가는 하고 있고 누군가는 듣고 있다. 생산되고 구성되는 억견과 담론과 진실들. 나는 갑자기 그리스와 로마의 지적 성과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어떤 말을 믿어야 하는지 당황하던 중세의 혼란함을 체험하는 것 같다.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 “누가 말하는가, 무엇을 말하는가?” 그들의 기호는 어떤 의미를 발생시키면서 대기를 물들이고 있는가? 발화된 말은 어떤 주체가 사용하든 중립적인 언어가 아니다. 사소한 것과 지극히 개인적인 것조차도 이미 누군가를 향해 있고 내재된 운동에너지가 있어서 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정치적이다.

때로는 말하는 이의 얼굴성이 그가 하려는 말의 내용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의도와 주장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기도 전에 이미 그것은 전적으로 옳고 타당하며 합당한 것이 되어져 있다. 대중들 앞에 드러낸 얼굴만으로도 그는 진리의 화신인 것이다.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시효를 상실한 질문이며 오직 “누가”만 중요하다. “누가”는 그의 사회적 배치를 여실히 드러내며 그의 영토에 경계선을 긋는다. 홉스의 말처럼 법은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만드는 것이다. 진위는 영토화와 탈영토화의 경계선의 교차점에서 혜성처럼 드러난다.

선과 악은 절대적이지 않고 다만 관계성 안에서 드러난다. 내게 좋으면 선이고 내가 싫으면 악이 되듯 사회 속에서 우리의 배치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가 선과 악을 만들어 낸다. 무엇을 말하든 진실은 말해지지 않고 구성되어지며 해석되어질 뿐이다. 사회적 감수성과 민감성을 더욱 예리하게 단련하는 길만이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지키는 때인 것 같다.

허황되고 휘황찬란한 빛을 쫓으며 공중에 사는 듯한 삶과 그것들을 빨아먹고 사는 균류들의 소음을 식힐 바람이 필요하다. 우린 이 지상에 두발을 딛고 성실하게 노동을 하며 그 수고로 일용할 양식을 얻고 안식을 얻는 지극히 평균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 귀한 하루하루 삶의 길에서 무성한 진실 밖의 언어들에 더욱 속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가 바람이어야 하고 바람의 씨앗이어야 한다. 바람은 공기들의 움직임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던 미약한 공기들이라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지만 이 공기들의 분포에 균열이 생기고 기울어짐이 생기면 공기들은 결집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제각각의 힘이면서 내부의 힘에 기여함으로써 막강한 태풍이 되기도 한다. 진리의 심장은 결집하는 힘이 있어 몸 밖에서도 진동하며 공명함으로써 온 천지를 뒤엎는다. 성령이 일하시는 진리의 심장을 가진 우리가 곧 바람이고 우리가 태풍의 씨앗이다.

백우인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박사과정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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