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무속정치와 한국교회
[특별 기고] 무속정치와 한국교회
  • 송평인 논설위원
  • 승인 2022.02.09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_송평인 논설위원(동아일보)
지난 7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전주 치명자산 평화의전당에서 제20대 대선에 즈음하여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또한 편향된 검찰, 법원, 언론이 정치를 훼손시키고 있으며 이들이 주술 권력을 세우려 한다며 주술 권력에게 칼을 줄 수는 없다고 서명한 1만 5천여명의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작가 조용희 목사 제공.
지난 7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전주 치명자산 평화의전당에서 제20대 대선에 즈음하여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또한 편향된 검찰, 법원, 언론이 정치를 훼손시키고 있으며 이들이 주술 권력을 세우려 한다며 주술 권력에게 칼을 줄 수는 없다고 서명한 1만 5천여명의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작가 조용희 목사 제공.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부는 무속 논란이 있을 때마다 교회나 목사를 찾아간다.

윤 후보는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기고 토론에 나와 무속 논란이 빚어지자 성경책을 끼고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 예배를 봤다.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는 유튜브채널 서울의소리 직원과 한 전화 통화 내용으로 다시 무속 논란이 빚어지자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를 찾았다.

무속 논란에 기독교인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보고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교회와 목사를 찾아 무마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 후보 부부의 무속성은 그런 식으로 무마할 수 있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듯 하다. 김 씨는 스스로를 단순한 무속의 소비자가 아니라 무속인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내가 신(내림)을 받거나 한 건 아닌데 웬만한 사람보다 (점을) 더 잘 본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당을 많이 만난다는 세간의 소문을 부정하지 않은 채 “무당이 저를 잘 못 보고 제가 무당을 더 잘 본다”는 말도 했다. “나는 굿도 안 하고 점도 안 본다”고 했는데 그 말의 진의는 종합해보면 내가 무당보다 나은데 뭣 때문에 무당의 굿을 하고 무당의 점을 보느냐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 씨는 “남편도 약간 영적인 끼가 있거든. 그래서 나랑 연결된 거야”라고 말했다. 김 씨가 남편의 어떤 점에서 영적인 끼를 느꼈는데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손바닥에 ‘왕’자를 그리고 토론에 나오는 건 영적인 끼가 없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은 든다. 김 씨가 윤 후보를 만나기 전에 알고 지낸 다른 검사가 있다.

그 검사의 어머니는 암자 비슷한 걸 차려놓고 점 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까지 고려해야 김 씨가 자신과 연결되려면 영적인 끼가 있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픽사베이 이미지.

윤 후보 주변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도사만 벌써 3명이다. 유튜브를 통해 정법(正法)이라는 강의를 하는 이천공이란 도사에 대해 말하자면 윤 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유승민 전 의원과 충돌했을 때 “정법을 미신이라 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며 “정법 유튜브를 보라. 정법은 따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천공은 윤 후보와의 관계가 노출될 때까지는 ‘열흘에 한번씩 만난다(이천공 자신의 말이므로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 수 있음)’고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듯하다.

이천공은 스스로의 고백에 따르면 여러 세상일을 도모하다 배신을 당해 죽으려 할 때 울산 신불산에서 한 보살을 만났는데 그녀가 자신이 태어난 곳부터 고아가 된 과정, 죽으러 온 것까지 다 아기동자의 말로 하는 것을 듣고 지금까지 모르던 세계가 있다고 느끼고 17년간 머리를 들지 않고 땅만 보면서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줍는 수행을 한 끝에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는 정법을 깨달았다는 사람이다.

그 다음에 등장한 도사는 심무정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윤 후보는 사법시험을 9수만에 합격했다. 김 씨는 “(남편이) 계속 사법고시에 떨어져 한국은행 취직하려고 하니까 ‘너는 3년 더 해야 한다’고 해서 붙었다”고 말했는데 ‘너는 3년 더 해야 한다’고 말해준 사람이 무정이라고 김 씨 스스로 밝히고 있다. 윤 후보가 김 씨 소개로 안 도사가 아니라 윤 후보가 전부터 알고 있던 도사다.

윤 후보와 김 씨가 결혼에 이른 인연을 맺게 해준 사람도 무정이다. 윤 후보와 김 씨는 삼부토건 조남욱 전 회장을 통해 알게 됐는데 조 전 회장이 본래 무정과 친했다. 김 씨는 “무정이 (우리를) 처음 소개할 때 김건희는 완전 남자고 석열이는 완전 여자다고 했다. 결혼해서 살아보니 그렇더라. 그래서 진짜 도사는 도사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 등장한 도사는 건진이다. 건진은 일광조계종이라는 불교 종파의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일광조계종의 본사인 충북 충주 일광사에서 2018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이 벗겨진 소 사체를 제물로 올리는 식을 하다 시민들의 항의를 받아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무속과 관계가 깊은 이단적인 불교 종파로 보인다. 건진의 속명은 전성배다. 전성배는 김 씨 회사인 코바나콘텐츠 고문이라고 밝힌 명함을 들고 다니고 코바나콘텐츠 주관 전시회 행사에도 실제 참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만 김 씨 쪽에서는 ‘직함만 빌려줬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건진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천공이나 무정과의 관계와 다른 점이다.

한국 정치인들이 무속과 관련이 깊다고 해도 윤 후보 부부처럼 그 관계가 입증 가능하게 드러난 경우는 드물다. 1987년 한 점술가가 집집마다 불상을 모시면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노 후보 측에서 10원짜리 동전 속 다보탑에 불상을 표시하도록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과거 10원짜리 동전을 자세히 보면 다보탑 안에 불상 비슷한 것이 있기 하다. 그러나 불상이 아니고 사자상이다. 게다가 사자상이 들어간 10원짜리 동전도 이미 당시 대선보다 4년 전인 1983년에 나왔다. 허무맹랑한 얘기였다. 다만 입증하기 힘든 얘기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건 정치인들이 그만큼 무속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이 땅에 전파된 이후 무속을 없애야 할 악습이라며 무속과 대립해왔다. 그러나 무속은 없애야 할 악습이란 생각은 개화기 때 처음 나타난 것이라며 개신교가 그 혐의를 주장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속을 없애야 할 악습으로 본 것은 조선 중종 때 조광조를 넘어 고려 말기 안향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안향은 유교의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한 학자다. 중국 송나라에서 성리학의 성행이 이민족의 침입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불교의 부패와 무속의 성행에 대한 반발이었다. 안향이 성리학을 도입할 때 몽골의 침입을 받은 불교 국가의 고려의 사정도 비슷했다, 안량은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마다 미신을 없애겠다는 목표로 무당들을 잡아 가뒀다.

조선이 성리학을 표방하고 개국을 했지만 개국공신들이 성리학의 이념에 투철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조광조의 개혁 정치가 시작된다. 조광조는 도교의 제사를 맡았던 소격서를 폐지하면서 관청에서부터 미신 타파에 앞장섰다. 그의 지지자들은 사림파로 불리며 선조 이후 조선의 영구적 집권 세력이 됐다.

사림파의 집권 이후 공적인 영역에서 무속은 현저히 힘을 잃었다. 그럼에도 숙종 때 장희빈이 자신의 거처에 몰래 신당을 차려두고 연일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굿을 하고 인현왕후의 거처 주변에 꼭두각시, 죽은 쥐와 새 등을 묻어 두는 등 무속은 간헐적으로 공적인 영역까지 침입해 들어와 파란을 일으켰다.

감리교 목사 아펜젤러와 장로교 목사 언더우드는 1885년 함께 한국에 왔다. 그때는 고종 뒤에서 민비와 그 척족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민비는 세자의 건강을 기원하며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각각 쌀 한섬, 비단 한필, 돈 천량을 바치고 백미 500석으로 쌀밥을 지어 한강에 뿌리는가 하면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 굿판을 벌였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쫓겨났다가 환궁하면서 박창렬이라는 무녀를 데리고 들어와 국(國)무당으로 세우고 대소사(大小事)를 의논했다. 민비는 그의 거할 북관왕묘를 지어주고 언니라고까지 부르며 가까이 했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김 씨는 최고권력자 주변에서 민비 이래 가장 무속을 가까이 한 여인이 된다. 이런 지경인데도 개신교, 특히 보수쪽 개신교의 반응은 놀랍게도 조용한 편이다.

오늘날의 개신교 목사와 신자들이 아펜젤러나 언드우드 같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최초의 한국 교회가 무속에 집착하는 민비에 얼마나 비판적이었는지 모르고 있다면 그 역사적 무지가 통탄스러울 뿐이다.

손바닥에 왕자를 새기고 토론에 나온 윤 후보가 예배하러 간 곳은 여의도순복음교회다. 단순히 무속의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무속인으로 자리매김한 김 씨를 받아준 목사는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다.

무속논란이 제기되기 전이긴 하지만 지난해 9월 조용기 목사의 빈소를 찾은 윤 후보를 둘러싸고 안수 기도를 해준 목사들 가운데는 김장환 목사를 비롯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측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예장 합동측인 사랑의교회과 새로남교회의 오정현 오정호 형제 목사가 있었다.

신학자 28명이 지난달 30일 ‘사이비 주술 정치 노름에 나라가 위태롭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신대 감신대 연세대에는 여러 신학자가 눈에 띄었으나 예장 합동측 신학교인 총신대 교수는 한명도 없었고 예장 통합측 신학교인 장신대 교수는 한명이 있었을 뿐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자부하는 보수 교단의 신학교가 오히려 무속 비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안타깝다.

무속을 없애야 할 폐습이 아니라 지켜야 할 전통으로 오도(誤導)하는 학문적 시도들이 있다. 신학에서는 유동식 교수가 기독교에서 우상숭배로 단죄됐던 샤머니즘을 무교(巫敎)라고 해서 기독교 불교 등과 나란히 종교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신학 바깥의 세속 학문에서는 인류학자 조흥윤 교수가 무속을 무(巫)로 칭하며 한국의 개성적 전통으로 해석하려 했다. 무속을 무속 자체로 이해해보려는 학문적 태도는 의미가 없지 않다. 무속이 민중의 삶을 위로한 것 이상으로 민중의 삶의 피폐하게 했다는 점이 강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개신교가 서양에서 전래된 종교여서 토속적인 무속에 비판적이었던 것이 아니다. 조선의 성리학은 개신교 이상으로 무속에 비판적이었다. 미신 타파라는 점에서 개신교는 민족의 합리적 전통의 계승자였다. 무속 논란에 둔감한 오늘날의 개신교는 구한말 개화에 앞장서고 일제 강점에 저항한 개신교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 이전의 성리학보다 퇴보하고 있다.

무속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우리나라 불교 조계종은 간화선(看話禪)을 최고로 치는 합리적인 형태의 불교다. 그럼에도 조계종 불교 사찰에조차 무속적인 산식(山神)각, 삼성(三聖)각, 칠성(七星)각 등이 남아있다. 한 종정(宗正)이 이런 것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개신교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고난과 희생을 강조하는 종교다. 학업 결혼 사업의 성공을 비는 데 치중하면 무속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개신교는 서양의 개신교에 비해 기복(祈福) 신앙적인 측면이 강하다. 무속의 대체재 역할에 치중하면서 개신교를 발전시킨 결과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심진송이라는 무속인이 김일성의 사망과 김대중의 당선을 알아 맞췄다고 해서 한때 화제였으나 2002년 대선에서 손학규의 당선을,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의 당선을 점쳤다가 망신을 당했다. 한 무속인은 이 사람이 당선된다고 하고 또 한 무속인은 저 사람이 당선된다고 하면 선거가 끝난 뒤 반드시 용하다는 점쟁이가 나오게 돼 있다.

신문에는 용하다는 점쟁이만 보도되지만 실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용하지 않은 점쟁이들이 있다. 심진송처럼 용하다고 해서 유명해진 점쟁이도 계속 주목을 받고 있으면 결국 용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2002년 노무현 당선을 알아맞췄다는 풍수가 누구, 2013년에 이미 2017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것을 예언했다는 무슨 스님 등이 있으나 그 이후에는 소식도 없다.

점은 비(非)과학적이지만 점을 보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lfilling prophecy)이란 말이 있다. 어떤 예측을 해놓고 그 예측이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노력했는데 기대한 바가 현실화되는 것을 말한다. 자기암시적 예언이라고도 한다.

민심이라는 게 구름과 같아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자기실현적 예언에 매달리고 여의도 주변에는 점쟁이들이 많다.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보면서 하루 생활에 기대를 걸거나 조심하는 것을 뭐라 하기 어렵다. 사업을 하거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는 무속인들은 비판할 수 있어도 사업에서의 성공과 선거에서의 당선을 위해 자기실현적 예언을 마음에 품고 노력하는 사람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선 시대는 신하가 왕과 독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독대를 하면 반드시 사관이 기록에 남겼다. 그러나 부부의 배갯머리 송사는 막기 어렵다. 윤 후보 부부의 무속 관련이 우려를 낳은 것은 단지 선거의 당락을 알아보거나 주요한 행사의 길일(吉日)를 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대소사 결정에 무속들이 미칠 영향력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