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모국어와 와인
[전문가 칼럼] 모국어와 와인
  • 박여라
  • 승인 2021.12.26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 바르바레스코. 배경 저 멀리 하얀 줄 구름 아래 페닌 알프스는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나눈다. 통속 라틴어를 쓰던 5세기 로마제국 사람들도 저 알프스를 보았을 테다. ©여라

이번 시리즈를 통해 내어놓고 싶은 문제는 우리말로 와인 이야기를 할 때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불만에서 출발했다. 그 문제가 우리말로 와인에 관해 이야기한 지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그러한 것인지, 우리말은 와인언어가 되기 어려운 말과 글인지, 그게 아니라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무슨 작업이 필요한 것인지 살펴보고 싶었다.

하나의 언어로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와인 하나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각자 문화와 맥락과 상황과 별개일 수는 없다. 무엇이 수많은 와인 지역과 포도품종 이름과 여러 언어가 만들어내는 굳건한 장벽 그 너머를 바라보게 할까. 와인 자체다. 말보다 와인이다. 그 와인이 드러내는 빛깔 향 맛 여운을 나의 말로 나답게 표현하면 언어가 달라도 서로 같은 와인에 관해 말하고 있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을 수 있다.

누구와 소통하냐가 중요하다. 누구에게 하는 와인 이야기인가. 듣는 사람이 누구인가.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말 쓰는 사람에게 하는 와인 이야기니까 한국의 문화 맥락 상황 이해를 전제하고 와인 이야기를 해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우리스럽게’ 와인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말이란 우리의 모국어다. 세계인으로서 우리말을 지칭하는 모국어는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있을 때는 호흡처럼 자연스럽다. 그런데 우리말로 와인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큰맘 먹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나서 해야 할 만큼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해도 잘되지 않기 일쑤다.

남들의 모국어, 특히 전통적인 와인 생산국들의 언어인 주요 서양 언어들을 여러가지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와인이 쉬우냐. 시작은 그렇다. 나의 모국어로 내가 다 아는 와인 지역 이름들이어도 남의 모국어인 것처럼 소음으로 들리거나 까막눈이 보는 책처럼 아무런 의미를 알 수 없다 느껴지는 경우가 허다하게 쏟아진다. 적어도 영어라도 하지 않으면 와인을 즐길 수 없는 거냐. 그건 아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 재배와 와인 만드는 기술과 장치 등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와인 문화를 전해 받은 로마제국이 자기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문헌으로 존재한 고전 라틴어와 상반되게 일반 민중들이 일상에서 구어로 사용한 이른바 통속 라틴어에서 파생된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를 쓰는 지역에서 특히 그 영향이 크게 남아있다. 와인이 영어권까지 널리 퍼진 지금도 이 언어들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계 와인생산과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언어가 모국어가 아닌 우리에게 의미 있는 와인언어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와인이 나와 상관있어야 한다. 책도 영화도 내가 연관 지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감정이입이 되고 재미있다. 첫 해외여행으로 갔던 나라에서 온 와인, 와인 좋아하는 친구 J가 말한 와인, 별생각 없이 뒤적이다 보게 되었는데 뜻밖에 빠져든 영화에 나온 와인, 떫은 와인도 달달한 와인도 좋아하지 않는 나랑 같은 취향을 가진 K와 느낌을 나누고 싶은 와인,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이 지나가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에서 만드는 와인…

고린도전서 13장 8절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에서 ‘사랑’을 와인에 관한 사랑 또는 와인으로 바꿔서 읽어봤다.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