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
  • 황교진 객원기자
  • 승인 2018.03.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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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음식으로 사람다워지는 회복 탄력의 미학

몇 해 전부터 출판 기획의 키워드 중에 레질리언스(Resilience)가 등장했다. 회복력 혹은 회복 탄력성이란 말로 번역돼 사용되는 이 용어의 심리학적 풀이는 '심각한 삶의 도전에 직면하고서도 다시 일어설 뿐 아니라 심지어 더욱 풍부해지는 인간의 능력'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괴롭고 아픈 일들이 많은데다 한 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는 데 많은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단어다. 회복하고 싶어서 여행을 하고 맛집을 찾고 친구를 찾고 여가를 즐기지만 그마저도 돈과 시간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상의 소소한 공간에서 회복력을 얻고 싶어도 삶의 모든 의욕을 잃었을 때 생기를 얻을 곳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고향, 음식, 친구, 자기 자신과의 대면으로 회복을 권한다. 잔잔한 자연 속에서 음식을 해 먹고 풀 뜯고 농사일 하는 것에 무슨 영화적 재미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때리고 부수고 위기로 몰아넣는 영화들과 질감이 다른 액션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기도해도 답답하고, 답이 없는 삶 속에서 나를 가장 인격적으로 대해 준 엄마의 품, 어린 시절 정서를 채워 준 장소,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편안한 오랜 친구, 인스턴트적인 도시가 아닌 제철 음식의 자연에서 맛보는 싱그러움은 히어로 영화가 채워주지 못한 공간으로 파고든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원작은 고단샤에서 연재한 만화이며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 두 편의 영화로 제작된 일본판이 꽤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다. 이런 얘기하면 아재 인증이겠지만 난 1994년작 <포레스트검프>가 떠올랐다. 순수한 외톨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라는 연결점이 있겠지만, 전혀 다른 영화다. 극의 흐름과 분위기에서 일본 작품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얼마나 그립던 드라마인가. 지친 도시인이라면 일본보다 더할지 모를 한국에서 진작에 나왔어야 할 싱그러운 힐링 드라마다.

 

<아가씨>와 <1987>에서 연기 잘하는 유망주 정도로 생각한 김태리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 역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혼자서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간다. 내레이션과 요리하는 모습,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농사일을 하는 장면 모두 잘 소화해냈다.

임순례 감독은 남녀 애정 요소를 잔잔하게 처리하고 사계절과 음식, 고향의 봄과 같은 추억의 정서를 아름답게 소환했다. 혜원 엄마 역의 문소리는 두말할 것 없는 대배우다. 그녀가 대사를 칠 때마다 묘한 에너지가 전달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혜원 가족은 아버지의 병환으로 요양 차 시골로 내려온다. 병수발하다가 남편을 떠나보낸 뒤 엄마는 결핍을 감추고 어린 혜원에게 다양한 요리로 사랑한다. 혜원이 수능을 마친 어느 날, 편지 한 통 남기고 가출한다. 엄마는 왜 딸을 버렸을까에 대한 의문을 쫓지 않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시골을 떠날 꿈을 꾼 혜원보다 먼저 떠난 엄마에게 조금 상심하나 상처받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을 사랑해 준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평범한 모녀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혜원을 향한 엄마의 사랑법이란 것이 영화가 끝날 즈음 떠오른다.

 

대학생이 된 혜원은 편의점 알바를 하며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자신이 정성껏 도시락을 만들어 만나던 남자 친구는 임용고시에 붙지만 자신은 떨어진다. 시험, 연애, 취업 모두 뜻대로 되지 않은 혜원은 도피하듯 시골집에 내려온다. 도시에서 지친 마음은 옛 추억의 집에서 오랜 친구들과 해후하고 직접 요리를 해 먹으며 달랜다.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 한다. 이 불편한 시골집은 겨울에만 잠깐 머무르기로 했지만, 혜원은 엄마가 요리해 주던 기억과 함께 사계절을 보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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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별다른 특색이 없다. 그런데 난 이 영화의 화면에서 단 한순간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선명한 사계절과 각양각색의 제철 요리에서 어떤 액션보다 다채롭고 화려한 에너지를 받았다. 생각하며 들어야 하는 대사들도 화면이 주는 휴식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조금 비현실적이라면 한국의 시골집인데 예쁜 일본 주방처럼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그릇과 요리 기구들, 환한 자연빛(건축 설계 각론에서는 음식의 상함을 막기 위해 부엌에 과도한 태양광은 들어오지 않게 한다) 정도가 판타지스럽다. 하지만 그 판타지에서 하늘 한 번 제대로 쳐다볼 여유 없는 고단하고 삭막한 도시인은 치유를 얻는다.

 

혜원은 요리를 시도할 때 엄마가 한 요리 잔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만큼 엄마가 해준 요리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 자신은 조금 다르게 변형시켜 맛보면서 그리움과 자기만족을 채운다. 도시에서 살면서 우리는 삶을 선택할 자유를 잃는다. 어쩌면 인간 존재의 근원인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박탈 당하여서 불안과 불행을 앓는 게 아닐까. <리틀 포레스트>는 그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누군가에게 바보 취급당하며 루저로 살아온 중병의 자신을 보여준다. 그 중병의 자각에서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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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설렘이 있다는 것 아닐까. 도대체 우리는 복잡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도시에서 설렘을 가진 적이 언제였던가. 혜원은 봄이 오기 전에 돌아가려는 마음을 잊고 쌔싹으로 요리하고, 아카시아 꽃으로 튀김을 만들어 먹는다. 직접 해먹는 음식으로 다음 계절을 설레며 맞는다. 친구 재하(류준열은 말단 회사원의 구차함을 버리고 귀농한 재하를 잘 소화했다. 혜원에게 마음이 있지만 털털한 그의 몸짓이 여러 번 웃음을 줬다)와 은숙(막말도 친근하게 하는 은숙 역의 진기주라는 신인 배우를 발견했다)을 불러 요리를 해준다. <리틀 포레스트>의 삼분의 이는 요리 장면이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혜원의 다양한 요리, 과거 엄마가 해준 요리가 아픔을 잊게 하고 기쁨을 자라게 한다. 같이 먹는 장면에서 웃고, 혼자 먹는 장면에서 아프니까 청춘을 극복해 낸다.

 

개봉 후 이 영화의 짧은 평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힐링이다. 다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의 사회에서 지치고 상처입은 채로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교과서적인 말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말이다. 왜 우리는 소중한 나, 조심히 다루어야 할 나와 다투고 이겨야만 하는 걸까.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꼭 자신에게 가학적인 시간을 마라톤 도전하듯 일부러 가져야 존재가 발견되는 걸까? <리틀 포레스트>는 조금 다르게 살아 보기, 내가 몰입하고 있는 곳이 불행하다면 일단 떠나 보기, 나를 깎아서 쟁취하는 성공 담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곳에 있어 보기를 제안한다. 남과도 나와도 다투지 않는 곳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순수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로 직접 해 먹는 맛있는 요리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뿌리내려야 할 곳을 알고 그것을 알려준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이 견딤의 근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곳을 만나는 것이다. 자연과 음식의 아름다움으로 회복시켜 준 인간미, 기억 속의 친정과 고향에서 뿌리내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모든 상황을 견디게 한다. 결국 회복은 인공 조미료, 비인격적 대우, 결과 중심의 성장에서 벗어나 자연과 나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인심, 기다림, 성숙에서 얻게 된다.

 

이런 아기자기하면서 에너지가 넘치는 감성 영화를 왜 우리 원작에서 찾지 못할까. 남녀 간의 이야기, 때리고 부수는 이야기 말고 음식과 자연만으로 완성되는 치유와 감성 드라마가 나와 주어 고마웠다. 한국 로컬화로 잘 각색했다. 스크린 속의 그 시골집과 마을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영화 촬영지가 경북 의성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화제를 일으킨 여자 컬링 시스터즈의 고장, 의성이 때마침 영화에서도 빛이 난다.  

 

"당신의 리틀 포레스트는 무엇인가?" 나를 품어주고 반겨주고 상처 입은 곳을 어루만져 주는 작은 숲을 생각해 봤다. 내일을 기대하기 어렵고 어깨의 무거운 짐은 날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내리누른다. 쉴 수 없고 숨 쉬기 어려운 삶이다. 모든 세대가 회복력이 필요하고 힐링을 갈구한다. 정서적으로 화학 조미료 없는 맛있는 음식을 채워주던 곳은 교회 공동체였다.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잠시 누린 수련회에서 만나는 기쁨과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터치가 우리에게 리틀 포레스트였다. 제자들이 예수께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물었을 때 어린 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크기 위해 경쟁하지만, 예수님은 어린 아이처럼 되라고 말씀하신다. 유치했지만 성장하고 말씀에 잘 변하는 자에서, 우리는 세련되고 자라지 않고 말씀에 둔한 자로 변해갔다. 우리의 공동체는 혜원이 돌아간 어린아이의 기억처럼 건강한 영양분과 쉼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왜 내려왔냐는 질문에 혜원은 배고파서 왔다고 한다. 도시에서 우리는 혜원처럼 허기를 느끼며 산다. 늘 분주하고 인스턴트 음식에 익숙하고 몸이 상해 가는 줄 모른다. 이 배고픔을 채워 줄 진정한 양식이 필요하다. 혜원은 곶감이 맛있어지는 건 겨울이 왔다는 증거라고 나레이션한다. 곶감을 만져주듯이 삶의 겨울을 맛있게 견딜 수 있게 나를 만져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 마음이 배부르다. 단, 식사는 충분히 하고 감상하는 것이 좋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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