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30대 초반은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비교적 이른 나이이다. 그리고 30대 초반에 갑자기 죽음을 맞은 청년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불과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음악가 슈베르트는 참으로 예외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수많은 가곡, 기악곡, 교향곡, 실내악곡을 작곡했다. 그가 남긴 작품의 수는 1,200곡이 넘는다고 한다. 도대체 그는 하루하루 어떻게 살았길래 이토록 많은 곡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독일 출신의 음악학자 한스 요하힘 힌리히센은 유럽에서 손에 꼽히는 슈베르트 전문가로 알려졌다. 그는 슈베르트의 생애와 음악에 관해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집필한 『프란츠 슈베르트』라는 책이 지난 2019년에 한글로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그래서 슈베르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한 번 읽으면 슈베르트의 생애와 음악을 조망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슈베르트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작곡에 재능을 보였고, 작곡에 헌신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슈베르트는 여러 차례 이런 말을 했다. ‘국가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 나는 오로지 작곡을 위해 태어났다.’ 슈베르트는 프리랜서 작곡가라는 모델을 조금씩 성공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었던 최초의 작곡가에 해당한다. 그가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한 이후로 작곡이 아닌 다른 수입원에 의존한 적은 없었다.” (28쪽)
슈베르트는 본인이 ‘국보급 작곡가’이기에, 국가가 자신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에 슈베르트가 그의 신념에 합당한 작곡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방대한 작품의 양을 생각하면, 그가 스스로 ‘국보급 작곡가’로 여긴 게 절대 허황하지만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실상 그 누구도 그에게 작곡을 기대하지 않고, 작곡을 통한 수입이 변변치 않을 때도 그는 쉴 틈 없이 무언가를 작곡했다. 비록 그의 작품이 가곡을 제외하고 실제로 연주되거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그에게 작곡은 일종의 호흡과 같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호흡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작곡해야 살 수 있었다. 그는 숨 쉬듯이 작곡했고, 작곡하듯이 숨 쉬었다.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은 그가 온몸으로 호흡한 삶의 자취였다.
때때로 우리는 간절히 원하는 걸 오늘이 아닌 내일로 미룬다. 그런데 오늘 할 수 있는 걸 내일로 미루다 보면 반드시 오리라 기대했던 내일이 우리를 배신할 수 있다. 슈베르트는 오늘 해야 하는 작곡을 내일로 미루지 않았다. 그가 만약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먼저 확보한 다음에 작곡에 집중하고자 생각했다면 그는 작곡가가 되기 전에 죽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이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에게 남은 건 오늘뿐이다. 슈베르트의 밀도 있는 삶은 우리에게 불확실한 내일에 기대지 말고 확실한 오늘에 기대어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