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 대란에 교계 지도자가 나서야
[사설] 의료 대란에 교계 지도자가 나서야
  • 편집부
  • 승인 2024.03.11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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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실명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의사들.<br>
국제실명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의사들. 가스펠투데이 DB.

2월 6일 발표한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방안은 ‘의료대란’이라는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고 있다. 검찰의 정부로 대변되는 윤석열 정부의 자칭 ‘반카르텔 정책’의 메스는 의대 정원에 손을 댔다. 이에 대해 전공의들은 줄지어 사직했고 상당수의 전임의들도 재계약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끝내 의대 교수들까지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공의와 전임의를 지지하는 움직임 속에 현 정부는 검사의 신들린 칼을 대한의사협회와 그에 속한 전현직 관계자들을 향해 휘두르며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롯이 이 모든 피해는 국민이 짊어지고 있다.

의사들의 집단 반발은 과거 2020년에도 경험했기에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왜 이 시점이냐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지방 각 도시를 돌며 ‘민생토론회’를 통해 선심성 공약을 퍼붓고 있다. 그의 결에 맞춰,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의 발표는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의사 그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이용한 선거용 정책으로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은 부정적인 여론이 연일 60%가 넘는 수치로 총선의 표심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 그리고 여당은 이런 오비이락(烏飛梨落)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진행시켜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항하는 의사들은 병원을 떠났고 의사직을 사직하거나 가르치기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 각 의대와 병원은 거의 마비 상태이며 환자 피해와 수술지연, 진료거절, 입원지연 등을 통해 국민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어 가고 있다. 각 지자체는 나가지 않아도 될 국민 혈세를 의료마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지만,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깨진 독에 물을 붓듯 국민의 세금은 낭비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이냐는 책임 소재를 따진다면 양비론적인 비판을 할 수밖에는 없지만, 단순히 의사와 정부에게만 그 탓을 돌리기에는 공공적 역할을 해야 하는 종교계, 특별히 화해적 역할을 보여주어야 하는 기독교계는 의료대란의 문제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NNCK, 회장 윤창섭 목사, 총무 김종생 목사)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UCCK, 대표회장 장종현 목사)의 무능은 현재의 한국 교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 교계는 있을 수도 없는 기계적 중립을 선언하며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지나치는 대제사장과 레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말투 하나하나에 좌파와 빨갱이, 우파 친일, 꼴통 보수로 서로 낙인을 찍고, 찍히는 교회 안에 정죄의 문화는 화해와 중재의 공공적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사교적 종교집단으로 기독교를 전락시키고 있다. 그 가운데 교회는 할 수 있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사와 정부의 갈등을 보고만 있는 실정이다.

이제라도 나서야 한다. 별 반응이 없을 수 있다. 여전히 코로나 기간 동안 사회적 신뢰와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교회의 대사회적 기능이 크게 발휘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해야 한다. 아마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교계가 의사와 정부의 협상과 대화의 테이블을 만든다고 해도 비웃음만 받을 것이다. 교회가 진영의 갈라치기와 편가르기를 해왔으면서, 이제야 무슨 화해와 대화의 역할을 하냐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교회라면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겸손하게 모든 비판을 끌어안고 공공의 위치를 다시 지켜내야 한다.

아무도 의사와 정부를 협상의 테이블로 앉게 하지 못하고 있다. 양쪽이 스스로 그 자리에 앉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 갈등을 풀어야 할 공적인 사명이 있는 곳이다. 그래도 과거 국가적 재난이 있고 정치적 정쟁이 심화될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재와 화합의 역할을 한 것이 기독교였다. 이제라도 화해의 사도적 역할을 회복하여 지금의 첨예한 갈등과 반목을 풀어내는 교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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