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앎이 삶’임을 알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사설] ‘앎이 삶’임을 알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 편집부
  • 승인 2024.02.15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서운 시대이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디지털 시대를 이야기하며 너도나도 스마트 폰은 물론 온갖 통신장비로 정보를 주고받다 보니 진위를 알 수 없는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유롭게 지식을 나누는 시대에 공부는 왜 하냐고 하는 어른들도 있다고 하니 작은 문제는 아니다. 그만큼 더 풍부한 지식과 사리 판단을 위한 시대임을 깨달아야 한다. 편향된 사고방식과 생각으로 사회가 점점 더 혼란해지고, 정치적인 분열과 다툼이 계속되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소문에 근거한 독선과 자기 고집의 축척이 가져오게 될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도 문제지만 교회에서도 세상에서 쌓은 그릇된 지식과 경험을 내세우며 복음 전도는 물론 교회의 고유한 권한까지도 침해하는 일이 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가족들이 함께 즐거워해야 할 지난 설날이었지만 불신 가족들과의 가정적 불화도 많았던 명절이었다고 한다. 가령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은 온통 제사 이야기로 가득함에도 기독교인들은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는 식의 통설이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조상들은 존경의 대상이지만 숭배의 대상은 아니라고 가르친 선교사들과 선배들의 교훈에 대한 오해라고 하나 ‘제사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말과 제사의 대상이 다르다는 표현은 구별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참혹한 민족의 역사를 겪었던 우리는 삶과 앎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그 삶이 기준이 앎에 있기 때문이다. 도구의 편리함을 알았기에 연장을 사용하고, 에너지의 근거를 알았기에 불을 사용한 것처럼 ‘삶+앎=사람’임을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 가지의 사명이 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세상을 향한 섬김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랑’이라는 새 계명으로 말씀(마 22:37-40)하셨고,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 이웃을 향한 ‘신뢰’, 그리고 사회적인 ‘신용’으로 변화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개개인의 ‘신념’을 강조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을 ‘믿음’으로 설명하였다. 올바른 신앙은 바른 지식에 근거하여야 한다. 호세아 선지자는 패망해 가는 조국과 민족을 바라보며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것이라(호 4:6) 절규하면서 여호와를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호소한다(호 6:3). 소문과 자기 고집에 사로잡혀 좌우분별이 어려운 때에 성도들만이라도 하나님을 바로 알고 정신을 바로 차려 다시 일어서야 한다.

마르틴 루터(M. Luther)의 종교 개혁 이후 백 년이 지난 17세기의 독일교회는 엄청나게 지쳐 있었다. 30년 전쟁 이후 정치적인 무질서와 백성들의 빈부격차는 도저히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력과 부패의 수렁 속에서 다시 독일교회가 일어서게 된 것은 주일 오후에 몇 명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시작한 슈패너(Philip J. Spener)의 교리 문답 공부와 프랑케(August H. Francke)의 영적 각성을 위한 경건 운동, 진젠도르프(Nicolaus L. Zinzendorf)의 모라비안들과 함께 시작한 헤른후트(Herrnhut) 운동으로 말미암는다. 시작은 작은 일이었으나 결국은 교리논쟁과 부패로 경직되고 생명력을 잃고 있던 독일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사회봉사와 선교 운동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인 혼란과 팬데믹 이후 기울어져 가는 사회적 무질서를 극복하는 길은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달은 신앙인들을 통한 삶의 회복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금년도 총회 주제가 “고치고 싸매어 주시는” 여호와께(호 6:1) 돌아오는 ‘치유’라고 한다면 이제 진정한 회복과 부흥을 이야기하며 ‘영적 각성’에 대하여 논의한다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야말로 다시 일어서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말씀 운동으로부터, 작은 일부터 함께 참여하고 공감하므로 삶이 앎이요, 앎이 또한 삶이 되는 역사가 한국교회로부터 온 세계로 확산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