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답’을 찾아서 (3)] 하면 할수록 어려운 설교...능력의 말씀을 전하려면?
[2024년, ‘답’을 찾아서 (3)] 하면 할수록 어려운 설교...능력의 말씀을 전하려면?
  • 최상현 기자
  • 승인 2024.02.01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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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김운용 총장(장로회신학대학교)
진행: 편집인 박진석 목사
정리: 최상현 기자
김운용 총장. 장신대 캠퍼스에서. 최상현 기자.
김운용 총장. 장신대 캠퍼스에서. 최상현 기자.

가스펠투데이는 특별기획 “2024년, ‘답’을 찾아서”시리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귀한 답은 ‘설교’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설교는 무엇인가?” 그 답을 찾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김운용 총장을 만나보았습니다._편집자 주


Q. 목회자로서 오늘까지 수많은 설교를 하셨고 후학들에게 설교를 가르치셨는데 ‘위기의 시대’라고 불리는 오늘날, ‘설교’란 무엇입니까?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수직적 차원, 오늘의 시대에서 수행된다는 점에서 문화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수평적 차원을 고려해야 하는 사역이지요. 수직적 차원을 생각하면 말씀하시는 분이 성 삼위 하나님이시기에 설교자는 그분의 현존, 임재, 역사 앞에 부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완성을 선언할 수 없는 사역입니다. 설교의 수평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오늘의 상황은 ‘설교 위기의 시대’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위기가 없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시대는 언제나 어둠이었습니다. 정진우 시인이 “별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한 것처럼 ‘생명의 빛’을 증거하는 설교 사역의 바탕도 어둠이 틀림없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기 위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교하셨고, 또 제자들에게 그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도 설교합니다. 어두운 날에도, 밝은 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설교가 무엇인지, 바른 신학적 이해는 어려움이 가득한 시대에도 설교 사역을 바로, 잘 감당하게 하는 동인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학적으로 설교에 대해 다양한 정의와 이해가 필요하겠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정의해 봅니다. 설교는 각 시대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는 ‘계속되는 하나님의 계시 사건’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계시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고, 마지막 날에는 아들로 말씀하셨습니다(히 1:1-2). 성자 예수님을 통해 완성된 구속역사와 복음의 증거라는 차원에서 보면 설교는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계속해서 펼치는 사역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습니다.

Q. 설교가 설교로 들리지 않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에게 설교는 생명과 같습니다. 생명이 풍성한 설교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 성도들은 ‘좋은 설교’가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설교자에게도 좋은 설교의 열망이 있습니다. 어떻게 ‘더 좋은 설교’(better preaching)를 준비할 것인가는 설교자의 평생 과제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규정할 수 있지만 계시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설교는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담아 전달하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는 내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설교는 본문이 말씀하시는 바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설교를 듣고 가는 성도들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율법도 있고, 교훈적인 내용과 윤리적 요소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좋은 설교는 복음이 춤추는 설교입니다. 소통의 차원에서 보면 좋은 설교는 청중이 이해하기 쉽게, 들려지는 설교여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과도 연결되는 내용인데, 설교는 두 가지 텍스트 사이에서 펼쳐집니다.

그 첫 번째가 성경본문이라면, 또 하나는 오늘의 삶의 자리입니다. ‘생명이 풍성한 설교’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성경 본문에 대한 깊은 연구, 성도들의 삶의 자리 연구와 생생한 연관성(relevance)을 바탕으로 합니다. 영국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그런 주장을 했었지요. 생명력 있는 설교는 “회중들이 성 삼위 하나님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자리를 뜨게 하는 것이다. 결국 말씀을 전하도록 세움 받은 설교자의 초점이 바로 거기에 맞춰지고, 그렇게 준비되고 선포된 설교가 생명력 있는 설교가 아닐까요?

Q.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와 말씀(성경)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설교를 준비함에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이 궁금합니다.

개혁교회 신앙전통은 설교 사역에서 성령님의 조명(illumination)을 중요하게 여기지요. “그분을 구하십시오. 그분 없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분 없이는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 설교자의 조언처럼 설교사역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준비한 설교가 주님의 손에 온전히 들려지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 강화(講話, discourse)일 뿐이지요.

기도는 설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계시 사건’이라는 신학적 고백을 가진 사람이라면 설교사역에서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설교 준비 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강단에 올라가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합니다. ‘성령님, 기름 부어주옵소서. 부족한 종이 준비한 설교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강단에 올라가면서, 아니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면서도 기도로 물을 줄 때 설교는 온전한 사역이 될 수 있습니다.

설교 사역은 언제나 기도를 통해 계속 살아있고, 능력 있는 사역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부분이 약해서 늘 노력하는 바여서 늘 자신에게 외칩니다. ‘기도의 생명력이 멈추면 영적 사역은 쇠퇴하게 된다. 설교자의 능력은 땅에서 나오지 않고 하늘에서 온다.’ 그런 점에서 설교자는 기도가 없는 설교는 ‘죽이는 설교’라고 규정한 E. M. 바운즈의 충고를 흘려듣지 않아야 합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가스펠투데이 DB
장로회신학대학교. 가스펠투데이 DB

Q. 설교는 ‘지금, 여기’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합니다. 어떻게 ‘지금, 여기’ 사람들에게 ‘들리는 설교’를 할 수 있을까요?

1970년대 이후, 북미 설교학 진영이 깊이 추구하였던 것은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어떻게 오늘의 청중들에게 ‘들리는 설교,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설교’가 되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래서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설교에 있어 이야기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고, 귀납적 구조, 움직임과 전개가 있는 설교, 청중의 의식 속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고려한 설교의 구성, 이미지와 상상력의 활용, 청중이 어떻게 듣는가를 고려한 청중 중심의 설교 등의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었습니다.

벌써 40여 년 전에 당시의 문화 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함께 어떻게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줄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이죠. 3년여 담임목회를 하던 중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그곳에서 만난 전문가들을 통해 첫 2년 동안 새로운 설교학의 세계를 보게 하는 희열이 있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 통찰력은 더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오늘의 설교자들에게도 동일한 설교학적 도전을 제시합니다. 설교는 오늘,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현장성과 현재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어떻게 보다 ‘효과적’(effective)이고, 능력 있게(powerful) 말씀이 전달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교자에게 제일 위험한 것은 자기만족과 나르시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완성을 선언할 수 없는 사역입니다. 평생 목회하시고 은퇴를 앞둔 설교자에게 흔히 듣는 이야기,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설교’라는 말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Q. 한국교회 강단의 설교를 볼 때, 그 흐름과 문제점, 보완할 점은 무엇입니까?

한국교회는 어느 지역 교회보다 목회 사역에서 설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횟수도 많고, 기대치도 큽니다. 출석할 교회를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교회 성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담임목사의 설교입니다. 현대 문화의 특성이 오락성(entertainment) 추구의 경향이 강해지다 보니 설교도 그런 경향을 따라가는 것은 문제로 대두됩니다.

여기에는 여러 기독교 복음 방송에서 선교의 목적으로 설교 실황을 앞 다투어 방영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 면이 크지만, 설교학적 측면에서는 많은 부정적 요인이 양산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미디어 매체의 발달과 함께 ‘설교 쇼핑 시대’를 열었고, 리모컨과 컴퓨터 버튼을 계속 눌러대는 ‘디지털 노마드 현상’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단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기독교 설교는 비교하여 쇼핑하는 상품이 되었고,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의 자세가 아니라 ‘나의 만족과 취향에 따라 듣겠습니다’ 같은 신앙 양태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교회를 병들게 하고, 예배와 설교의 신학적 본질을 훼손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한 가지를 더 언급하면, 계몽주의 영향으로 태동된 모더니즘 시대, 합리성과 논리적 명확성이 중요한 요인이 작용하면서 기독교 설교는 논리적, 논증적 특성이 강한 주제설교가 지배적인 형태였습니다.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전수 받은 그런 설교 형태는 100여년 훨씬 지난 오늘도 한국교회에 중심 흐름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설교에 있어 성경 본문 중심성이 아주 약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구조가 아니라 설교자가 자기 생각(주장)을 말하고, 성경말씀은 주로 그 주장을 논증해 주는 보조도구(proof-text)로 전락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중세교회의 타락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안다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그 앞에 부복하고 겸손하게 그 말씀을 듣고, 설교에 담아내며, 그 말씀 따라 사는 훈련,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삶의 훈련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Q.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에게 많은 방해, 걸림돌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를 걷어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합니까?

제가 현재 현장 목회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설교와 관련하여 갖는 생각으로는 목회 현장이 너무 바쁘고, 설교 횟수가 너무 많아 말씀을 깊이 연구할 시간과 설교 준비할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큰 걸림돌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의 설교집을 복사하는 차원 정도가 아니라 요즘에는 챗GPT에게 설교 작성을 의뢰하고 싶은 유혹 앞에도 서게 됩니다. 설교는 성경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 삼위 하나님을 만난 설교자가 거기에서 전하라고 주신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구상 시인이 노년에 쓴 시, “기도”에서 설교자의 염원을 배우게 됩니다. “땅이 꺼지는 이 요란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이 예리하고,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말씀의 능력이 나의 설교에서도 설득력 있게 나타날 수 있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Q. 한국 교회와 나라, 학교를 위한 기도 제목이 있다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교회 예배가 회복되고, 강단마다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선포되어 전환기적 위기 상황에서 주님의 더 든든히 세워져 가길 기도합니다. 70여 년의 긴 시간동안 분단국가로 살아가는 이 민족에게 통일의 복을 허락해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간절합니다. 강대국의 이데올로기를 따라 우리는 분단의 세월을 살고 있고 동족상잔의 전쟁도 치렀으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갈등 속에서 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 70여 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 작용하였지만 이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분위기입니다. 우리 시대에 통일의 복을 허락하옵소서. 분단 논리를 넘어 평화 통일의 복을 누릴 수 있는 한국교회와 이 민족이 되게 하소서... 그런 기도가 늘 간절합니다. 오늘 학령인구 감소와 한국교회 신뢰도 추락, 탈종교화 등의 현상으로 인해 신학교가 어렵기에, 장로회신학대학교가 ‘다시 복음으로’ 일어나 생명사역과 민족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캠퍼스에 영적 부흥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것이 학교를 위한 기도제목입니다.

Q. 끝으로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신년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예배회복, 교회 회복, 사역 회복을 위해 애쓰는 사역자들과 성도님들에게 새힘 주셔서 달려도, 걸어도 피곤치 않을 기운찬 영혼의 소유자들로 우뚝 서 가시길 빕니다. 교회마다, 사역의 자리마다 부활의 아침에 제자들에게 강복하셨듯이 하늘 평강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서슴없이 맞는 새해/ 나의 생애, 최고의 성실로서/ 꽃피울 새해여!”라고 노래한 시인처럼 무엇을 하든 최고의 성실로 꽃피워가는 은혜가 있길 빕니다. 새로운 항해로 우릴 초대하시며 주께서 주신 말씀이 가슴에 맴돕니다.

“나에게 오너라. 나와 함께 길을 나서면 너희 삶은 회복될 것이다... 나와 함께 걷고, 나와 함께 일하여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아라. 자연스런 은혜의 리듬을 배워라... 나와 함께 있으면 자유롭고 가볍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마 11:28-30, The Message). 올 한해가 주님과 함께 걷고, 주님과 함께 일하고, 은혜의 리듬을 따라 춤추면서 걸어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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