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다음 소희〉 - ‘사랑합니다. 고객님’에 담긴 불편한 진실
[영화와 복음] 영화 〈다음 소희〉 - ‘사랑합니다. 고객님’에 담긴 불편한 진실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4.02.01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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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소희(김시은)를 비롯한 팀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끌던 팀장 이준호(심희섭)의 의문의 자살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콜센터 직원들은 충격과 비애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도 잠시, 회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건을 은폐/조작하여 수습하고, 후속 팀장을 바로 임명하여 콜센터에 내려보낸다. 새롭게 부임한 팀장은 직원들을 독려하며 말한다. “여러분, 간밤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어요. 팀장님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셨는데... 다들 너무 놀랐죠? 일단은 마음을 좀 추스르고 일을 합시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죠. 다른 센터들이 과부하가 걸려서 난리예요. 얼른 자리로 돌아가요. 콜 받아야죠.” 이제 하나둘 자리로 돌아간 직원들은 헤드셋을 쓰고 예전처럼 응답한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상담원 아무개입니다.” 메아리치듯 곳곳에서 들려오는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이 이상한 소음들은 소희에겐 마치 지옥의 울림으로 느껴온다. 팀장이 죽어도 아무 일 없는 듯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해야 한다.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모티프로 제작한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는 실지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지만 감추거나 드러나지 않은 어두운 면을 애써 들춰낸다. 특히 피상적이고 두루뭉술하게만 알았던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감정노동자들이나 현장실습생들의 노동력 착취와 비열한 인격 학대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자신을 소개했거나 바라보는 주변 지인들에 대한 과중한 부담감 때문이다. ‘너 하나만 참으면 동료나 후배들이 살길이 열린다’는 협박 아닌 협박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다. 결국,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 앓다가 병 들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끊는다. 결국, 소희도 자살한다. 이들에게도 각자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다. 영화에서 소희는 춤을 추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 수미쌍관으로 연출된 소희의 댄스동아리 연습실 장면은 진혼곡이자 한 줄기 위로의 빛이다.

영화가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한 장치는 ‘숫자로 도배된 현황판’이다. 조직 생활을 하는 곳 어디에나 - 학교, 직장, 시도 교육청, 그리고 일터의 한쪽 벽면에 크고 거대하게 부착된 현황판은 당신과 우리 조직의 현 위치가 어디이며, 목표가 무엇인지를 암묵적이면서도 무겁게 제시한다. 이렇게 숫자로 표시된 실적 현황판은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교묘하게 악용된다. 숫자는 ‘승진과 더 나은 급여를 위해’, ‘조직의 생존을 위해’, ‘모두의 안위를 위해’, 그리고 ‘동료와 후배의 입사를 위해서’라는 미명으로 합리화된다. 여기서 조직의 구성원인 인간은 그 실적향상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제시된 실적은 때로 팀원들에게 동기부여의 이유가 되지만, 대부분 닦달과 강요의 합리적 근거로 사용된다. 최고의 실적은 그것을 달성한 사람에겐 일시적 칭찬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평가 기준의 새로운 잣대로 작용한다. 이는 팀원들에게 선의의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상호 불만과 불신의 잠재적 원인이 된다. 특히 연대와 단결로 자신들의 권리를 방어하고 주장해야 하는 직원들을 뭉치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동된다.

그렇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이는 단지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소희의 자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조사하던 형사 오유나(배두나)는 콜센터를 시작으로, 회사, 학교, 시도 교육청으로 그 책임의 소재를 넓혀간다. 그런데 그들의 답변은 한결같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결국, 어느 한 곳도 책임지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전가한다. 절망의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높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장벽과 모순은 해결의 조그마한 가능성마저 봉쇄해 버린다. 어쩌면 소희의 자살은 그 누구에게도 따져 물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긁어 부스럼이 생긴 듯 마음이 편치 못하다.

교회는 여기에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그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천국을 생각하며 현실을 견디라’고 말할 것인가? 저세상의,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의 개념에만 익숙하다면 그게 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했던 주님의 기도(마6:9~10)를 기억한다면, 오늘 이곳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며, 그 구체적 실천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이 행하신 지상 사역과 십자가는 바로 그 과정이며 해결책의 모델이다. 최소한 ‘다음(next) 소희’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자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문화사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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