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가수 중에 음반을 발매할 뿐 아니라, 종종 책을 출판하는 가수가 있다. 양희은의 『그러라 그래』와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모두 가수가 집필해서 유명해진 책이다. 가수가 직접 쓴 책을 읽어보면 아무런 노래를 듣지 않더라도 그 가수의 노래가 자동으로 머리에서 재생되곤 한다. 그저 눈으로 책만 읽었을 뿐인데 귀로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신비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그들의 노래와 글이 전달되는 매체만 다를 뿐, 모두 가수의 마음에서부터 만들어졌기에 일어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지난 2023년 5월에 『이적의 단어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김영사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집필한 책으로, 그가 고른 101개의 낱말이 실려 있다. 그 낱말 중에는 이적이 그 낱말로 무슨 말을 할지 예상 가능한 때도 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전혀 예상 불가능한 때도 있다. 그렇기에 독자는 이적이 과연 무슨 말을 하는지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 모든 감각세포를 다 동원해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적의 단어들』을 읽기 전에, 『그러라 그래』와 『상관없는 거 아닌가』처럼 『이적의 단어들』에 가수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적의 단어들』에는 가수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적의 단어들』을 다 읽어도 가수 이적이 어떤 사람인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그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어떤 마인드로 창작에 임하는지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
“창작. 내가 먹은 음식 중에서 어떤 것들이 무슨 조화로 내 손톱이 되고 머리카락이 되고 피와 살과 뼈가 되는 잘 모르듯, 내가 경험한 삶 속에서 어떤 것들이 무슨 조화로 이 곡이 되고, 저 노랫말이 되고, 그 이야기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창작의 영감에 관해 물어오면 난감하다. 그저 매일 골고루 먹고 마시고 좋아하는 것들을 좀 더 탐닉하듯, 이것저것 듣고 보고 읽고 겪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작품의 세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지. 결국 내 몸의 주인이지만 인체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듯, 내 작품의 주인이지만 창작시스템에 대해 잘 모른단 말씀.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밖에.” (147쪽)
이적은 말한다. 창작의 영감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그저 매일 이것저것 듣고, 보고, 읽고, 겪은 그 모든 게 창작의 세포가 되었다고 말이다. 몇 년 전에 정세랑 소설가가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TV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당시 정 소설가는 창작자로서 일상을 살며 매일 하나씩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새로운 걸 시도한다고 말했다.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거나, 이전에 먹지 않았던 과자를 사 먹거나, 이전에 만나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일상의 지평을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창작의 원천이자 재료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이 창작의 걸림돌이 아니라 창작의 디딤돌이 된다는 걸 기억하며 우리도 이적의 노래처럼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보자.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