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지구촌 선거의 해’ 막이 올랐다. 올 한 해 동안 83개 선거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40억 명이 참여 할 예정이다. 1월 9일 자 뉴욕타임즈(NYT) 보도에 따르면 향후 24년 사이에 가장 큰 규모인 올해 선거는 동시에 향후 수십 년간 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치러지는 글로벌 환경은 전쟁, 난민, 기후위기, 경제 양극화, 미·중 패권갈등, 극단주의 확산, AI 고도화 등으로 평온하지 못하다. 지난해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밀레이 후보가 당선 된 사례와 같이 현실 불만을 이용한 극단적 포퓰리즘(populism)이 확산될 우려도 크다. 미국 싱크탱크 부루킹스연구소 대럴 M 웨스트 선임연구원은 이 같은 격변기 환경과 정보통신기술고도화 등이 맞물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무차별 확산되는 “허위정보의 퍼펙트 스톰”이 올 것이라 경고했다.

외신이 전한 사례로, 메타는 지난해 국제 뉴스 기관을 사칭해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 각국의 정권 교체를 계획했다거나 우크라이나에서 비밀리에 생화학 무기공장을 운영한다는 등의 음모론을 퍼다 나른 러시아 소셜미디어 계정 ‘도플갱어’를 발견했다. 또한 지난번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집권당 후보로 나선 좌파 성향 마사 경제장관이 코카인을 흡입하는 듯한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졌는데, 이는 AI를 이용한 딥페이크로 드러났다. 더불어 AI가 사용자들의 특성을 학습해 편향된 콘텐츠만 노출시킴으로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3달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의 이합집산과 거대 양당의 구호식 정치 행보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밖으로는 패권 대립이 고조된 동북아정세, 안으로는 정치 갈등 속에 표류하는 시대 이슈들 – 초저출산초고령화사회, OECD 상위권의 빈곤율·자살율·노동시간 그리고 하위권의 UN 행복지수- 등이 우리의 상황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했던 광화문과 용산의 편향적 거리 집회는 일상화됐고, 집값 폭등과 전세 사기, 양극화와 공동체성 상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가 가져온 공권력 불신의 확산 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불편한 과제이다. 사회복지 예산 100조 원 시대. 정부와 지자체별 수많은 정책과 슬로건이 쏟아지지만, 지난해 대한민국은 우울증 치료 환자 10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거리에는 벌써 ‘확 바꾸겠습니다’라는 사이다 슬로건이 대중의 마음을 흐리고 있다. 얼마 전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는 우리 사회의 혼탁한 정치환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야는 물론 누가 나선다 해도 현시대 과제를 한순간에 해결할 수는 없다. 세계화 시대 국내 문제는 세계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사이다 발언이 한순간 시원한 기분을 줄 수는 있지만, 결코 일상을 바꿀 수 없고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좀 불편하고 느리겠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실마리다. 멋진 정책과 아젠다 제시가 아니라 그저 보리차 한잔을 나누며 현장의 작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대한민국을 세우는 정치의 시작이다.

옥성삼 박사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