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오스] 새 출발의 계절
[엘레오스] 새 출발의 계절
  • 황보람 사회복지사
  • 승인 2024.01.15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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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는 겨울의 언저리, 복지관의 공기가 달라진다. 달력 한 장 넘겼을 뿐인데, 아니 새 달력을 바꿔 달았을 뿐인데 모든 것이 새롭다. 일의 특성상 해마다 되풀이된다지만 장애인·어르신일자리사업 참여자들의 면접과 배치 등을 지켜보며 응원과 함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아쉬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이때 한 해를 여는 공동체 곳곳을 눈에 담으며 우리의 새 출발의 의미를 부여한다.

여럿이 함께 키우는 행복으로 시작한 공동 양육 사업은 복지관에서의 첫 겨울을 보낸다. 겨울방학을 맞이해 ’터전(프로그램실을 터전이라 지칭)‘에서 보내는 시간이 온종일로 길어진다. 말모이 노트(기분이나 감정을 글·그림으로 기록하고, 감정 사전을 참고함)를 기록한다. 교육방송 채널을 보고 난 뒤 자유 놀이를 한다. 아이들이 가장 행복할 때는 점심 식사 후 잠깐 주어지는 핸드폰 만지는 시간. 뭐 그리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지 눈이 반짝반짝하다. 복지관 내 공익요원도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데, 그중 한 명은 수준급 드럼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방학 특강 교실을 열었다. 드럼 스틱을 이용한 손목 연습 1,000번 하기 같은 연습량에 누가 버틸까 싶건만 저학년 중 몇 명은 곧잘 과제도 해내고 리듬 장단을 쳐서 작은 발표회도 계획 중이다.

방학 동안 복지관 안에서 친구와 어른들을 대하는 말과 행동을 조금 더 상냥하고, 따뜻하게 하자고 다짐한다. 어른인 우리부터 하루에 한 번 이상 입으로 말하는 시간을 약속하고 실천한다. “너희들이 있어서 터전의 하루가 완벽해!” 김종원 작가의 책 『부모의 언어』에서 권유하는 예쁜 말 중 하나이다. 아이들에게 소리 내 말해주면 쑥스러워하면서도 좋아한다. 일상의 위력이 관계를 끈끈하게, 새해를 빛나게 한다.

세대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공동체인지라 은퇴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신 어른들의 모습도 보인다. 올해 들어 지자체 일자리가 늘어난 여파로 공동 양육 터전은 어르신 일자리 참여자가 4명, 장애인 일자리 사업은 1명, 도합 총 5명이 함께 한다. “우리가 여기서 무슨 할 일이 있을까?”라고 주저하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자체로 얼마나 큰 배움인지를 피력한다. 터전에 들어선 일자리 어른들에게도 나름의 출근 루틴이 생긴다. 빨리 친해져야겠다며 손자뻘 되는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함께할 만한 활동을 책장에서 찾고 수업 교안도 작성한다. 점심시간에도 아이들 챙기느라 바쁜데 말을 다 잘 듣는 것도 아니다. 밥을 먹다가도 휙 떠나버리고, 다시 돌아가겠다고 고집부리며 급식소 가는 길목에 서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그래도 “나날이 동심으로 돌아가서 영해진 느낌입니다”, “아이들이 모두 귀엽고 야무지고 예뻐서 담당 선생님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노력할게요!”라고 하시니 적응하시느라 얼마나 애쓰실까, 어른들의 새로운 시작을 따뜻하게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의 새해를 돌아보니 복지관 1층으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묵은 짐들을 정리하느라 몸살이 났다. 사진을 찍어 기록하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데 짐을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 사업평가를 하고 계획서를 쓰면서는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미국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의 강남순 교수는 비슷한 감정을 저서 『배움에 관하여』에서 “실존적 독감”이라고 명명했는데 지난 1년간의 사회복지실천 성과나 수치를 보다 ‘돌연히 깊은 불안·무의미·좌절감’ 속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땐 마을, 주민과 함께한 기억과 그분들의 말씀을 떠올리는 것이 새 출발에 적합한 처방전이다.

해마다 우리 팀에게 연하장을 보내주시는 주민이 계시는데 올해는 “무엇에든 정성과 진심을 다하는 것이 멋지고,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인다”고 격려해 주셨다. 손수 제작한 연하장 편지지에는 다음의 글귀도 새겨져 있다. <올 한해가 괜찮았나요? 나는 당신 덕분에 괜찮은 한 해였답니다.> 생각해 보니 보낸 1년은 모두가 있어서 괜찮은 한해였고, 시작한 한해는 옮긴 1층 공간에서 주민들과 가까이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서 괜찮을 것 같다. 각자의 출발선에 선 우리 모두에게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넘치는 응원과 격려로 이 계절을 기뻐하고 즐겨보자.

황보람 사회복지사<br>부안장애인종합복지관·종합사회복지관 지역공생팀 팀장<br>​​​​​​​전북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황보람 사회복지사
부안장애인종합복지관·종합사회복지관 지역공생팀 팀장
전북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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