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목회에 상상력이 필요할 때
[전문가 칼럼] 목회에 상상력이 필요할 때
  • 손원영 교수
  • 승인 2024.01.14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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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로 영화관을 찾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새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해에 무엇을 해야 할지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그 답답함에 작은 위로라도 할 겸 생일을 핑계로 그곳에 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많은 사람들도 그렇듯이, 나에게 있어 영화관은 나를 위로하고 무언가를 꿈꾸며 또 상상력을 자극하는 실험실과 같은 곳이다. 특히 그곳에 가게 되면, 대형 스크린 앞에 앉기 전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어떤 생각들이 거의 예외 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날도 그랬다. 올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할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혔던 실타래가 슬그머니 풀리듯 그렇게 하나씩 꼬인 생각들이 풀렸다. 신기한 일이다.

이쯤 해서 예술목회를 실천하는 목회자에게 하나 권하고 싶다. 목회에 상상력이 필요할 때, 영화관을 찾으라고 말이다. 물론 신년을 맞이하여 조용히 한적한 기도원을 찾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 않다면 영화관은 수도원 못지않은 좋은 기도처요 상상처이다. 당연히 각자의 관심에 따라 영화관만이 아니라 갤러리도 좋고, 음악당도 좋고, 예술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라면 다 좋다. 그곳에서 올해 예술목회를 어떻게 실천할지 꿈꾸면서, 영화를 통해 찾아오는 예상치 않은 낯선 아이디어를 기쁨으로 환대하면 어떨까 싶다.

필자가 본 영화는 올리버 허버너스 감독의 <리빙>(Living, 2022)이었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2년에 만든 <이키루>라는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이키루>는 1997년에 세계고전 10대 영화로 선정될 만큼 영화의 역사에서 나름 한자리를 차지하는 영화이다. 그것을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각색을 하였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언급하면 이렇다. 영화는 주인공 윌리암스의 장례식을 중심으로 하여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은 윌리엄스가 1950년대 런던시청 공무원으로서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25년 넘게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준다. 그는 공무원으로서 시계추에 따라 출퇴근을 반복하는 기계적인 공무원이었다. 영화 속 그는 근엄한 관료로서 ‘좀비’라는 별명이 암시하듯 심지어 복지부동의 대명사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자신이 말기 암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인생이 허무해지기 시작하였고, 무엇보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 부부도 오직 자신의 유산에만 관심 갖는 것에 크게 실망하였다. 그래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가운데 술집도 가고 옷도 사고 또 젊은 여직원과 데이트도 해 보지만,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는 없었다.

한편, 영화의 뒷부분은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윌리엄스가 어떤 계기로 그의 삶이 변화되었는지, 특히 지역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지만 공무원들의 무성의한 역할 떠넘기기 속에 방치됐던 놀이터 재생 사업이 어떻게 성공을 거두었는지 잘 그려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백미이다. 거기서 윌리엄스는 자신이 만든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서 평소 좋아하던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 죽음은 남들이 보기엔 매우 쓸쓸한 죽음처럼 보였지만, 영화는 그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조용히 역설하고 있다.

<리빙>은 새해가 되었지만 어디로 갈지 몰라 주저하는 나에게 홀연히 한 꿈을 심어주었다. 그것은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을 경계하듯이 목회자도 그것을 두려워하면서, 사회와 하나님 나라의 ‘공복’(公僕)으로서 사람들이 주 안에서 행복하게 놀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다. 자신의 마지막 죽음의 자리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 일이야말로 예술목회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손원영 교수
손원영 교수
서울기독대학교
(사)한국영성예술협회 대표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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