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순례] 의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독서 순례] 의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 황재혁 기자
  • 승인 2024.01.02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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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바다와 독약』

내가 한때 교회에서 가르친 제자가 지난 11월에 수능시험을 응시했다. 어느 날 그 제자가 교회에 출석했길래 지나가는 말로 혹시 대학에 입학한다면 어느 전공을 공부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제자가 의대 입학을 지망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현재 우리나라가 ‘의대 입시 광풍’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제자는 스스로 의대에 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의대에 가라고 시켜서 장차 의대에 가고 싶다고 말한 걸까? 언제부터 대한민국은 수험생이 입시에서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나라가 된 걸까?

그 제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며칠 후에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가 집필한 『바다와 독약』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의사가 된다는 게 이토록 무섭고 잔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바다와 독약』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의 대학병원 의사들이 미군 포로 생체해부 실험에 참여한 사건을 바탕으로 집필된 소설이다. 생체해부 실험은 건강한 미군 포로를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의사들이 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 실험에 참여한 의사들은 이게 의학과 과학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이 짓거리는 전쟁 중인 미군을 향한 분풀이에 가까웠다. 과연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인가?

“‘앞으로 어떻게 하지?’하고 때때로 생각하곤 했다. ‘이것이 의사라는 것일까? 이것이 의학이라는 것일까?’ 하지만 생각하기도 귀찮고 생각한들 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단기 현역 입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모든 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텅 빈 공허감이 때로는 갑자기 어두운 분노로 바뀌기도 했는데, 스구로가 아주머니를 때린 것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74쪽)

『바다와 독약』에서 생체해부 실험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지독한 악인이라기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에 가깝다.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미래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일반인 말이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처럼 끔찍한 악은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충성심과 헌신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생각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우리가 무사유를 선택할 때 우리는 선택한 적 없는 거대한 악의 일부로 전락한다.

엔도 슈사쿠는 한국교회에서 『침묵』이라는 소설의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한국교회에서 『바다와 독약』을 읽은 사람보다는 『침묵』을 읽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침묵』이라는 소설도 훌륭한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바다와 독약』이 『침묵』보다 한국교회에 더 많은 생각거리를 선사하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여전히 누가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의사가 어떤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차 의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제자가 의대에 입학하기 전에 『바다와 독약』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의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그 길을 걸어간다면 의사로서 생체해부 실험과 같은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황재혁 목사<br>예수마을교회 청년부 담당<br>​​​​​​​본보 객원기자<br>
황재혁 목사
예수마을교회 청년부 담당
본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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