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한국와인과 농업, 인구소멸
[예술과 목회] 한국와인과 농업, 인구소멸
  • 최정욱 소믈리에
  • 승인 2023.12.13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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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의 와이너리(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을 와이너리 winery라고 합니다)를 컨설팅하는 일을 하고 있어 출장을 자주 다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와인을 만드는 분들은 대부분 농민으로, 평소에 와인을 즐겨 마시던 분들이 아니어서, 도심지 소비자들의 기호를 알려드려 좀 더 소비자가 원하는 와인을 만들 수 있도록 조언해 드리고 컨설팅하는 것이 판매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일주일에 보통 3일에서 4일 정도 출장을 가는데, 가는 곳은 충북 영동, 충주, 경북 영천, 상주, 문경, 경남 거창, 전북 부안, 순창, 강원 홍천, 삼척 그리고 제주도까지 다양한 곳을 다닙니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과실로 (꼭 포도만이 아니라)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전국 어디에나 과일을 재배할 수 있는 곳이면 곳곳에 와이너리가 산재해 있습니다. 알고 계시는 우리나라의 좋은 과일 산지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좋은 와인이 생산됩니다.

포도가 유명한 곳은 충북 영동과 경북 영천인데, 클러스터 사업단이 있을 정도로 가장 많은 양이 생산되는 곳입니다. 충남 천안 입장의 거봉 포도 단지도 유명한 곳입니다. 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근래에 샤인머스캣(Shine Muscat)이라는 포도 재배량이 급격히 늘어 기존에 재배하던 거봉이나 캠벨 포도 수확량이 많이 줄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캠벨 얼리 (Campbell Early)로 와인을 만들어 오던 곳들이 포도를 구할 수 없어 점차 다른 포도, 샤인 머스캣을 사용하여 와인을 만드는 곳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재료 수급이 가장 중요한 생산 요건이라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과 산지로 유명한 곳은 충북 충주, 충남 예산, 경북 의성, 경남 거창 등 여러 곳이 있습니다. 이곳들은 모두 좋은 사과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과는 품질이 매우 좋아 생과로도 많이 소비가 되지만, 시장에 출시되지 못한 못난이 사과(모양이 조금 찌그러지거나 다른 과일보다 조금 작거나, 색이 조금 진하지 않은 과실들)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런 사과(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과실들)는 대부분 폐기되거나 가공용으로 쓰이는데, 많은 양이 사과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버려지는 사과(와인을 만드는 품질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를 농가의 소득으로 만드는데 지역의 와이너리가 큰 기여를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사과 산지가 자꾸 북상하고 있습니다. 충주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와인을 만드는 분이 더 이상 충주에서 좋은 사과 재배가 어렵다고, 강원도 쪽으로 옮겨가야 되나 심각히 고민하시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번 대통령 취임식 만찬주로 강원 홍천의 사과 와인이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와인의 존재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8년 전, 광명동굴에서 한국와인을 소개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거의 모든 농가 와이너리에 생산자 한 분만 상주하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와인이 알려지고 인정받으면서, 와이너리의 반 정도에는 아들이나 딸, 사위나 며느리가 가업을 이으려고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애쓰시는 와인 제조가 가치 있는 일이라 인정받아서도 그렇고, 중요하게는 돈이 되고 생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반은 아직 많이 영세하여 자녀가 이 일로는 생계를 할 수 없어 물려받아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현재 좋은 와인을 만들고 있지만, 이어서 일을 할 사람이 없어 5년이나 10년 이내에 사라질 곳 입니다. 저에게 와이너리를 물려받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나라 농촌은 이게 많은 지역이 소멸예정지역으로 간주됩니다. 인구가 점점 줄어 군, 면 단위의 행정구역이 무색해 질 정도로 인구 감소가 두드러집니다.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고, 60대가 그 지역에서 청년이나 막내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 학교는 폐교되거나 통폐합되고 있고, 1년에 단 한 명의 신생아도 태어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도시로, 서울로 떠나고, 정치권에서는 메가시티 운운하고 있는데, 농촌은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농촌이 소멸되면 필연적으로 농업의 소멸이 따라오게 됩니다.

농산물 없으면 수입해서 사 먹으면 되지, 쉽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요한 밀 생산국이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며 전 세계 밀값이 폭등하여 식량 위기가 초래된 것을 보듯이 한 나라의 식량안보라는 차원에서도 농업이 어느 정도 규모와 구조를 통한 산업화를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정도의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떠나간 농촌에서 농업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 외국인들입니다. 베트남, 필리핀, 몽골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힘든 일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농촌은 고령화되어 젊은 사람들이 없고, 파종기나 수확기 등 단기에 집중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데, 2년간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가 모두 자국으로 돌아가 일을 할 사람들이 없어 대단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여러 곳을 다니지만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을 저에게 소개해 준 와이너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어쩌면 한국은 단일 민족 지향이 강해 다문화사회 인식이 낮은 편이라, 이미 정착해 사는 사람들에게도 참 많이 무심하고 냉정해서 그런 듯합니다. 이들을 곧 떠날 사람들로 취급했던 우리들도 언젠가 이 땅에서 곧 떠나게 될 이방인이 될 지도 모릅니다. 이 이국인들, 이방인들이 없으면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은 아마도 한순간에 주저앉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부터 이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설 생각을 왜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하며 이름을 물어보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너희가 고아와 이방인을 압제하지 아니하면..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예레미야 7:6~7)'

최정욱 소믈리에<br>예술목회연구원<br>최정욱와인연구소장<br>제이엠컨설팅 대표
최정욱 소믈리에
예술목회연구원
최정욱와인연구소장
제이엠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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