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 시대의 영적-도덕적인 전환을 위한 신학교육 : 그 새로운 상상력을 위하여
대전환 시대의 영적-도덕적인 전환을 위한 신학교육 : 그 새로운 상상력을 위하여
  • 이학준 교수
  • 승인 2023.11.23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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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성향이 신자유주의의 성과와 경쟁의 압력과 맞물려, 현대인들은 불안정과 파편화, 단절을 느끼고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신자유주의의 성과와 경쟁의 압력과 맞물려, 현대인들은 불안정과 파편화, 단절을 느끼고 있다.

*본 글은 2023년 한국기독교학회 52차 정기학술대회에서 이학준 박사가 발표한 내용 중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지면의 한계로 각주는 삭제했다._편집자 주


대전환 시대의 원인과 영향: 공룡새?

인간이 만들어 낸 지구 온난화의 위기는 창조 이후 처음 벌어지는 일입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전, 세계화는 자연세계를 무자비하게 착취,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만드는 지구적 참극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소비를 미덕이라고 자극하는 자본주의와 지구 온난화와의 상관관계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자연재해의 가능성 앞에 몸을 움츠리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1970년대 말 영-미로부터 시작되어 세계의 경제 이데올로기가 된 ‘신자유주의’, 1980년 말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가속화된 ‘세계화’,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한 ‘디지털화’, 근대 이성주의와 거대 담론을 비판하고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주창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물론 세계화, 디지털화, 포스트모더니즘, 이 세 가지의 구조적-이데올로기적 세력 활동 중심에는 신자유주의라는 권세 (hegemon)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마치 공룡새와 같습니다. 이 공룡새의 오른쪽 날개는 디지털화이고, 왼쪽날개는 세계화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발톱이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이 공룡새가 모든 것을 액체화 (melting down) 시키고 있습니다. 디지털화, 세계화, 그리고 자제된 형태의 (soft form)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신자유주의라는 권세에 의해 이것들이 계속 조종, 왜곡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이 공룡새의 지배하에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전쟁, 정치 쿠데타, 제국의 성쇠, 산업혁명과 같이, 정치, 군사, 경제, 또는 사회 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공동체, 개인주체, 민주주의/정의, 그리고 국가통치에 이르는 사회의 전 차원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첫째, 공동체(Community)

우리는 공동체들이 여지없이 붕괴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의 2차, 3차 산업 아웃소싱, 신자유주의의 침탈로 인한 지역경제와 고용 안정성의 붕괴, 디지털을 통한 시공간의 해체, 그리고 수명연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있고, 이로써 주요 1차 집단들이 공동화(空洞化; ‘shelled.’)되고 있습니다. 즉, 개인/국가/기업은 강해지는 반면, 1차 집단은 상대적으로 약해집니다. 공룡새의 압력 하에서 오늘의 인간관계는 자기중심적 계약 관계가 되고 도덕적인 가치들은 상대화되며,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은 손해로 여겨지는 문화가 형성됩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차 집단들은 그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고 액체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급속해지는 인구 감소, 결혼 및 출산 거부로 인한 가정의 해체와 비혼자 및 1인 가족의 급격한 증가가 가장 단적인 예일 것입니다.

둘째, 개인 주체(Agency)

공동체의 파괴는 사회적인 동물인 개인들의 붕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디지털화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정당화되는 개인주의 성향이 신자유주의의 성과와 경쟁의 압력과 맞물려, 인간관계에서 신뢰와 사랑, 돌봄의 공동체보다는 불안정과 파편화, 단절(uprootedness)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구는 하나로 연결되었지만, 개인은 모래 알갱이처럼 고립되었습니다. 24시간 인터넷 접속으로 디지털의 시공간으로 무한히 이동하는 자유는 있으나, 최소한의 고정성은 사라져 버려, 수많은 개인들은 부평초(new nomads)가 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자유는 있으나, 안정은 없습니다. 만남은 있으나 우정은 없습니다. 선택은 있으나, 이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개인의 책임과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숨 막히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모든 실패는 개인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룰 속에서 불안과 압박을 느끼고 있습니다. 즉 신자유주의 성과와 경쟁의 압력 안에서 개인들은 계속 경쟁력을 쌓아가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아갑니다. 따라서 연합과 협력은 사치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흉포한 경쟁이 공동체를 급속하게 몰락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자살, 묻지마 살인, 우울, 중독, 외로움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질병이 되었습니다. 1인 가족의 증가, 인구감소, 고독사, 이혼 증가 등은 공동체의 해체를 의미한다면, 묻지마 살인, 우울증, 자해, 자살 등이 개인주체의 위기를 말해 줍니다.

셋째, 민주주의·정의

액체화로 인한 불안정성과 공동체의 붕괴, 전통 종교의 변두리화 또는 상대화에 대한 반발은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의 근본주의화, 정치화, 극우화를 가져왔습니다. 종교의 이러한 변화는 미국과 한국은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 각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통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내는 자동화, 인공지능, 로보트화는 일자리 상실과 빈부의 격차를 가져왔고 이는 민주주의의 기반인 중산층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수저론’이 말해주듯, 가난이 대물림 되고 아무리 일해도 경제적 상층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좌절 속에서, 사회갈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성장하지만, 중소기업은 위기로 내몰립니다. 일부 엘리트들을 위한 일자리 말고는, 좋은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일용직과 비정규직은 이제 일상화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대학 진학률은 2022년 기준 73%로, 젊은이들의 상대적 빈곤감과 좌절감은 더 커져갑니다. 공동체 및 개인주체의 파편화와 더불어 가짜뉴스의 양산은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사회적 신뢰 수준을 떨어뜨리며, 시민사회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가짜 뉴스는 극우화 맞물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적 권위주의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아성으로 여겨졌던 서구사회에서도 비민주주의, 포퓰리즘(populism), 권위주의 정권이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이것이 트럼피즘(Trumpism)으로 나타났습니다.

넷째, 국가 통치(Governance)

위의 세 가지 위기는 국가의 기본적인 통치와 사회 통합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파괴, 극대화되는 개인주의, 그리고 가짜뉴스의 양산은 민주주의 사회의 합리적인 대중 여론 형성을 어렵게 합니다. 게다가 대기업과 타협하고 당파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난무하고, 경제적인 기본권과 일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점차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동시에, 정치인들에 대해 정당한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또한 알고리듬(algorithm)으로 생산되는 가짜 뉴스, 거짓 정보들은 정치의 양극화, 즉 어느 정당이 정권을 쥐더라도 통치와 통합이 어려운 양극화 상황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또는 펜데믹(pandemic)과 같은 전 세계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많아지지만 시간은 없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사실확인과 국민 컨센서스 형성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버마스(Habermas)가 말한 집단적 의지 형성(collective will formation) 근대주의자의 노스텔지어처럼 들리는 시대입니다. 강대국들은 협력 대신 국가 간의 자원확보와 패권 경쟁을 하며 무력 갈등의 위험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위의 네 가지를 요약하면, 우리 시대의 위기는 고정성을 잃고 파편화되어 가는 공동체와 개인, 무너지는 민주주의, 국민통합과 통치력을 잃어가는 국가정치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겪고 있는 이런 위기는 모두 안토니 기든스(Anthony Giddens) 의 말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가공의 위기들입니다. 즉 인간이 자초했지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위기이며,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소수의 수퍼 리치들만이 살아남는, 말 그대로 적자생존 현실입니다.

그럼 이런 시대에서 구조적인 변화는 신학교 및 신학교육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다음 호에 계속)

이학준 교수
Fuller Theological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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