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오스] 어른들께 배우는 삶의 모습
[엘레오스] 어른들께 배우는 삶의 모습
  • 황보람 사회복지사
  • 승인 2023.11.21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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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날씨 속에 속상하고 울적했다. 복지관 내 당구동아리 총무님과 가을 나들이나 하반기 행사와 같은 사사로운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알게 된 소식 때문이었다. 본인의 근황을 들려주시는데 일주일 뒤에 대학병원에 가신단다. 건강검진을 하던 중 종양이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받으신다고 했다. 8년 동안 동아리 임원을 했는데 이제는 건강을 챙겨야 하는지라 내년엔 직(職)을 내려놓겠다고 하셨다. 건강 적신호 소식에 분위기가 어두워지니 되레 더 웃어 주신다. 나들이 당일 아침에는 동료들과 귤 두 박스를 들고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가 배웅을 했다. 인사드리고 돌아서려는데 과일박스에 큼직한 바나나 한 다발과 맞추신 떡을 손에 들려주신다. 들고 간 것보다 무겁게 받고 돌아와 사무실 층별로 다른 직원들과 나눠 먹었다. 오후가 되니 사진과 영상이 왔다. 총무님이 사진동아리 활동도 하고 디지털배움터 과정도 수강하셔서 그런지 능숙한 솜씨로 ‘순천만’의 풍경을 잘 담으셨다. 흥겨운 가무 현장도 있고, 동아리 회장님과 살갑게 어깨동무를 한 사진도 있다. 임원으로도 협력하지만 형님·아우 하시는 두 분의 우정이 돋보인다. 설렘 가득한 표정에 서는 까까머리 장난기 가득한 남학생이 겹쳐져 괜히 또 울컥해진다.

울적한 기분과 날씨 탓인지, 몇 년 전 복지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쓰러지셨던 또 다른 어르신 기억이 난다. 유독 추웠던 그 해 겨울, 눈길에 쓰러지신 아버님을 눕히느라 급히 공수해 온 옷가지에 종이 박스를 풀어다 놓고 응급처치를 했다. 뇌출혈이었고 이후에 복지관에도 돌아오셨지만 회복이 쉽지 않았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새신자로도 오셨는데 환대하는 일 외에 구체적인 도움을 드릴 수 없었던 것을 떠 올리면 후회가 몰려온다. 동아리나 운영위원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아버님은 뒷받침되지 않는 몸과 환경 속에서 지내시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함께 계시는 모습만으로도 힘이 되고 사랑만 가득 주셨던 어른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별과 헤어짐이 잦아지면 무뎌 질만 하건만 매 순간 그렇지 않다. 감사한 일은 어른들이 삶으로 보여주신 것들만큼은 하나하나 지워지지 않고 떠오른다는 것이다.

“우리 복지관이 최고야, 고맙지! 우리 직원들 힘들게 하면 안돼!” 따뜻한 말 한마디는 인생 후배인 우리가 일할 소명의 원동력이 된다. 사소한 싸움과 토닥거림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운동 동아리실에서 큰소리가 종종 오갈 때면 중재하길 도맡아 하신다. 남들이 모두가 껄끄러워 하는 이에게도 먼저 다가가 “커피는 드셨냐?”고 안부를 묻는 배려를 보이신다. 최근에는 가을운동회를 치르고 나서 어르신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시는 어머님이 살뜰하게 남긴 글에 큰 감동을 받았다. <사랑과 행복은 나누는 것. 파란 인조잔디에서 즐거움을 나누니 배가 되었다. ... 코로나로 힘들었던 3년의 시간이 이번 운동회로 싹 달아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년에도 오늘처럼 건강하게 살아야지. - 부안복지관 실버바리스타 최**님의 글 중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생에 감사하고 순간을 기록하는 멋을 익혔다. 운동회는 당일에 500명이 몰리는 대규모 행사인지라 식사 시간도 양보해야 하는데 “외부 손님들이 왔으니 우리가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지!” 하시며 기다려 주시는 어른다움을 배웠다. 그 사이에도 운동을 하시는 하시는 근성과 부지런함도 덤으로 얻었다.

마을 안에 어른의 역할이 사라진다고 한다. 공동체 안에서 부대끼며 어른다움을 보고 배우는 것이 일상적이었는데 그런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 사람다움을 살려내는 사회복지의 소명이기에 공동체 안에서 어울려 사는 것의 회복이 절실하다. 함께하는 것의 의미는 경시되고 개인의 감정과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더 중요한 요즘 아이들의 일정을 보면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말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실천하며 사는 것에서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배우는데 우리 시대는 무엇을 전달하며 살고 있을까? 학습 스케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들이 전해야 할 삶 기술의 전부일까?

시대와 마을의 어른들이 그러하셨듯 말이 아닌 행동하며 전달하는 소명을 잃지 않아야겠다. 무릎으로 기도하거나 성경을 쓰고 때마다 물질을 드리고 이웃과 공동체를 돌보셨던 마음가짐을 본받는 것이 절실한 시기이다. ‘서로 사랑하고 행복은 나눠야 하는 가치’임을 남겨준 모든 어른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보낸다.

황보람 사회복지사<br>부안장애인종합복지관·종합사회복지관 지역공생팀 팀장<br>​​​​​​​전북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황보람 사회복지사
부안장애인종합복지관·종합사회복지관 지역공생팀 팀장
전북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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