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대전환이 필요하다 (2)
교육 대전환이 필요하다 (2)
  • 김누리 교수
  • 승인 2023.11.13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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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교육의 현실”

노동의 존엄 (Dignity of Work)

노동의 존엄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능력주의가 파괴한 중요한 가치가 바로 노동의 존엄입니다.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노동, 예를 들면 누군가를 돌봐준다거나, 물건을 나르거나, 건물을 짓거나,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등의 의미 있는 기능이 존중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를 하나요?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죠. “능력이 없으니까 저 일을 하지, 능력 있는 사람이 누가 저 일을 하겠어?” 이런 식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능력주의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능력주의에서 말하는 소위 능력이 무엇일가요? 과연 존재하는 건가요? 이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건가요? 결국 미국 사회에서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하버드냐 프린스턴이냐 하는 것으로 능력을 따지는데, 과연 그러한 대학을 나온 자들, 미국 사회 엘리트라고 하는 자들이 정말로 능력이 있는 것인지 이 책(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저)은 질문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이비리그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상위 1%에 속하는 집안의 자식과 하위 50%에 속하는 집안의 자식 중 누가 많이 들어올까요? 1%가 훨씬 많이 들어옵니다. 상위 1%에 속하는 집안의 자식과 하위 20%에 속하는 집안의 자식이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올 확률은 몇 배나 차이가 날까요? 77배 차이가 난답니다.

지금 미국 사회라고 하는 데서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아버지 돈 지갑의 능력’이라는 사실이 사회학적인 분석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난 것이죠.

그래서 샌델 교수는 오늘날의 미국 사회를 ‘학력 계급 사회’라고 부릅니다. 학력을 통해서 계급이 유지되고, 계급이 정당화되고, 계급이 세습되는 사회로 타락했다는 거죠. “오늘날 미국 사회는 ‘현대판 세습 귀족정’이다.” 능력주의 사회가 과거의 신분제를 넘어섰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착각이라는 거죠. 자본 계급이라고 하는 새로운 신분이 사실상 능력주의를 매개로 권력 질서를 정당화, 세습,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거죠.

한국 사회도 과거에 고등교육기관, ‘대학’을 통해 약자들이 사회적 상승을 할 수 있는 사다리로 기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죠. 고등 교육이 사회적 기회와 평등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기능을 미국이나 한국에서 하고 있다는 거죠. 결국은 기존의 계급 질서, 지배 질서를 유지시켜주고 정당화시키며 세습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겁니다.

혹시 조금 더 관심이 있으면 마코비츠의 책도 권합니다. ‘메리토크라시 트랩(Meritocracy`s Trap)’, ‘능력주의의 덫’이라는 뜻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엘리트 세습’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됐습니다. 마코비츠 교수는 지금 예일대학교 법학과 교수인데요. 모든 어조가 샌델 교수보다 강합니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지만 마코비츠 교수는 매니퓰레이션(Manipulation)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조작’이라는 거죠. “이 사회의 승자들이 이미 다 이기도록 디자인돼 있는 거야.”

샌델 교수는 미국 사회가 이런 야만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소수 엘리트들의 지배, 소위 능력주의를 통한 지배를 무너뜨려야 한다, 입학시험을 없애고 대학 서열 체제를 없애야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저는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학적 상상력이 너무나 폭이 좁기 때문에 조금 도발적인 주장을 해서 상상력의 폭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며, 이것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주장한 세 번째, “대학 등록금을 없애라”는 부분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 지금 미국에서 대학 등록금, 대학 무상교육이 바이든 예산에 들어간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마 대부분이 모르실겁니다. 지금은 커뮤니티 칼리지부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단계적인 대학 무상화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러한 주장은 꿈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학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교육 상품이라고 보는 미국에서조차 더이상 이런 교육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입시 폐지, 대학 서열 폐지, 등록금 폐지’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기계가 채점하는 나라

저는 우리나라가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정부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야 한다고 해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이런 칼럼을 썼습니다. “문제는 킬러 문항이 아니라 킬러 교육이다.” 지금 우리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받아서는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제 주장의 핵심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근대 서양 교육은 에듀케이션(Education) 개념이 응축돼 있습니다. ‘에’는 ‘밖으로’, ‘듀스’는 ‘끈다’라는 어원에서 온 말입니다. 즉 ‘끌어낸다’는 뜻이죠.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재능과 성향, 취향, 천재성을 잘 끄집어내서 그걸 발현시키는 것, 이것이 교육인데 한국 교육은 완전한 ‘반 교육’이죠.

아이들 안에 들어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냥 죽은 지식을 머릿속에 때려 넣는 것을 교육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다 그런 교육을 받았죠. 아무런 비판 의식도 없이 달달 암기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사라졌는지 몰라요. 내 안에 있었던 고유한 잠재력이 한국 교실에서 끊임없이 도태되어 간 것입니다.

우리나라 수능 채점은 누가 합니까? 기계가 합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대학 입학시험을 기계가 채점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치명적입니다. 이런 시험을 치르고,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창의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기계가 채점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답이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정해져 있는 걸 왜 알아야 되죠? 인터넷에 검색하면 10분 안에 모두 다알아낼 수 있는 ‘정해진 답들’ 아닌가요? 왜 그것을 많이 알고 있는 아이들이 똑똑하다는 것입니까? 사실 가장 멍청한 아이들이 아닐까요? 이미 답이 정해졌고 알려져 있는 것을 왜 달달 암기합니까?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선진국 중에 학문 분야 노벨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정해진 답을 두고 인간과 컴퓨터가 시험을 치른다면 누가 더 잘 보겠습니까? 컴퓨터가 만점을 받겠죠? 그러면 한국 교육의 목적은 후진 컴퓨터를 양성하는 것입니까?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독일 아이들은 ‘이것이 무엇이냐?’는 시험 문제를 받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너의 생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지식이 아니라 ‘생각’을 묻는 것이죠. 지난번에 나온 시험 문제는 “다음은 1933년 요셉 괴벨스가 독일 언론협회에서 한 연설문이다. 비판적으로 분석하라”였는데 시간을 5시간이나 줍니다.

우리 아이들은 3분 정도 답을 써내려갈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답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자기의 관점’, 이 대상 또는 현상을 읽어내는 자기의 관점이 없으면 답할 수가 없겠지요. 그 다음이 ‘엄청난 독서량’입니다. 스스로 읽어가며 사유한 축적물이 없으면 이런 문제를 풀 수가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자기 생각을 단 한 줄도 쓰지 않고 대학에 가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창의력이 없고, 성실한 아이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 아이들 속에는 지적 능력보다 ‘울분’이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김누리 교수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
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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