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 새로운 세상을 향한 통과의례로의 깨어짐
[영화와 복음]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 새로운 세상을 향한 통과의례로의 깨어짐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3.11.09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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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헌학을 강의하며 혼자가 익숙한 삶을 살던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폭우가 내리치는 어느 날, 투신하려던 한 여인을 운명적으로 구한다. 그리고 그녀가 떨어뜨린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과 함께 리스본행 열차의 티켓을 발견한다. 출발시간이 가까운 기차역으로 향하고, 이제 막 떠나려는 기차 옆에서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탑승한다. 그리고 책을 펼친다. ‘아마데우 드 알메이다 프라두.’ 깔끔하고 우수에 찼으며 확신하듯 무언가 응시하는 저자의 사진을 한참 동안 쳐다본다. 한 장 한 장 책을 읽으며 그레고리우스는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전율과 흥분을 경험하며, 그를 만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리고 도착한 리스본에서 그는 저자인 프라두(잭 휴스턴)를 찾아 무작정 길을 나선다.

생각에 잠기며 리스본의 낯선 거리를 헤매던 그레고리우스는 길을 걷다가 자전거와 충돌하여 안경을 떨어뜨린다. 깨진 안경을 수리하러 인근 안경원을 찾고, 거기서 자상한 여주인 마리아나(마르티나 게덱)와 대화하며 새롭게 안경을 맞춘다. 지금까지 익숙하게 보던 것과는 다르게, 그러나 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이는 시각을 확인한다. 익숙함은 흐릿함을 사실인 양 착각하게 여기며 살게 했음을 깨닫는다. 마침 안경원 주인이 그가 찾는 인물의 지인과 연관되었음을 알고 이를 계기로 책의 저자이자 언급된 인물들을 하나둘 찾아간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레고리우스는 직접 이들을 만나고 사연을 들으며, 얽히고설켰던 그들의 관계를 연결하고 풀어주며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간다.

책의 배경이 되는 해는 1973년으로,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1974년 4월 25일에 발생한 포르투갈의 무혈 쿠데타)이 일어나기 1년 전이다. 40년 가까이 지속된 독재자 안토니오 살라자르의 살벌하고 암담한 체제하에서 프라두와 그의 절친 조지(오거스트 디엘), 주앙(마르코 달메이다) 그리고 운명적 여인 스테파니아(멜라니 로랑)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답답한 현실에서 치열하게 삶을 고민하던 이들은 혁명을 위해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사랑과 우정의 줄다리기도 병행된다. 그레고리우스는 바로 책에 기록된 이들의 1년간의 삶을 추적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 그들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선택하게 된다.

영화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몇 가지 인상 깊은 장면들에 초점을 맞춘다. 먼저, 프라두가 발리시오 학교를 졸업하며 행했던 대표 연설 장면이다. “군대에 맞설 성당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이 필요하며, 표현의 억압과 독재자의 쓸모없는 구호에 맞서기 위한 성서의 강력한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는 거기서 권력에 빌붙거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죽은 기독교(성당)를 비판하고,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기독교를 주창한다. 오늘 한국기독교의 모습을 비춰본다. 독재 권력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아부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과연 예수님이 원하셨던 모습인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책을 읽으며 발견한 문장이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그레고리우스의 삶이 변하고, 극중 프라두의 삶이 변하게 된 것은 우연한 사건 때문이다. 그레고리우스에게는 우연히 마주친 한 여인을 구한 사건이고, 프라두에게는 당시 리스본의 도살자로 불린 비밀경찰 멘데즈를 의사의 윤리로 살린 것이 계기가 된다. 지나고 보니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당시 그들에겐 일상의 편린에 불과한 작은 사건이 인생 전체를 바꿀 사건으로 변한 셈이다.

이제, 스스로 질문해 본다.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 ‘내 인생은 어디에 있을까?’를 질문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의 인생이 주체적인지 혹은 시류에 맡겨 흘러가듯 사는 삶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와 개인의 삶은 불가분이다. 그 역사 속의 주체적인 삶은 작은 사건과 마주했을 때의 선택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건 익숙한 현실의 깨어짐을 각오하고 새롭게 안경을 맞추는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안경(시각)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다르게 다가온다. 그것은 시대의 부름이든, 신앙의 부름이든 마찬가지다. 우연처럼 다가온 하나의 사건, 그것에 용기 있고 비겁하지 않은 선택을 했을 때, 나의 정체성과 존재는 운명처럼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다.

임명진 목사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문화사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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