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에세이] 성경을 벤치마킹하라 (1) 홀로서기에 성공하자
[목회 에세이] 성경을 벤치마킹하라 (1) 홀로서기에 성공하자
  • 김상용 목사
  • 승인 2023.11.09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벤치마킹(bench marking)이란, 본래 토목공사(土木工事)에서 강물의 높이를 측정하기 위해 설치해 둔 기준점을 뜻한다. 하지만 근래에는 기업의 발전을 위해 타사(他社)의 장점을 보고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모방(imitation)이나 복제(replication)가 아니라 장점(merit)을 배워서 자기에게 적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1990년대 초 미국 브라운 대학(Brown University)에서 유학할 때 그곳에서 스타벅스(Starbucks)를 처음 접한 뒤 스타벅스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1999년 한국에 스타벅스 코리아를 들여왔다. 당시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은 여성들의 트렌드(trend)를 선도하던 곳인데 이곳에 스타벅스 1호점을 열었다.

그리고 주문과 결제와 픽업이 모두 이루어지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매장은 1992년 맥도날드의 부산 해운대점이 한국 최초인데 스타벅스 또한 2012년 9월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에 더해 2018년 6월 스타벅스는 리워드(Rewards) 회원이 사전 등록한 차량 정보를 통해 스타벅스 카드로 자동결제 되는 시스템인 'My DT Pass'를 선보였다. 차량이 코스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단축하여 고객 편의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큰 성공을 거두게 했다. 성공한 벤치마킹의 실례(actual case)이다.

하지만 잘못 오용(誤用)된 벤치마킹도 있다. 이단교회들이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이단들은 사실 기존의 교단 소속이었다가 분립해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기독교 이단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를 통일교 문선명이 도용해 『원리강론』을 만들었고, 통일교 신도였던 정명석은 이를 기초로 『30개론』을 만들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은 안식교에서, 신천지 이만희는 박태선의 전도관과 유재열의 장막성전에서 교리를 배우고 조합하여 새로운 교리를 확립했다. 이들은 '오답(wrong answer)'을 가져다가 더 오답을 만들어버린 기독교 이단들이다. 벤치마킹을 잘못한 예라 할 수 있다. 만약 건강한 교회들을 벤치마킹 했다면 그들은 이단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벤치마킹을 위해서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요즘 Open AI 가 만든 Chat GPT가 화제가 되고 있다. 논문이나 설교도 몇 분이면 뚝딱 만들어낸다. 인간이 몇 달을 걸려 논문 한 편 쓰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번갯불에 콩 볶는 수준이다. 하지만 챗 GPT의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챗 GPT는 수없이 많은 자료를 학습한 후 인간에게 대답하는 구조인데 검증되지 않았거나 틀린 자료를 학습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정답처럼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 등재되어 있는 지식들 가운데 사실과 다른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챗 GPT에게 질문하고 답을 받지만 챗 GPT를 다시 인간이 검증해야 하는 불완전한 구조인 것이다.

성경에 아담은 하나님께서 모태(母胎)를 통하지 않고 흙으로 지으신 첫 사람이었다. 또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다. 이들에게 육신의 부모가 없었다. 이것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는 의미이다. 요즘 말로 밥상머리 교육(Dining table education)을 받지 못했다. 이들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 한 분뿐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에덴동산(Paradise)을 만드셨고 온갖 좋은 것들로 채워주셨다.

(창세기 2:7, 22)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에덴동산에서 이들은 어떤 것에도 제한받지 않았다. 아담 부부에게 에덴동산은 오픈 마켓이었고, 오픈 하우스였다. 그러나 단 하나,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훼손하는 것은 금지하셨다. 아담 부부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선악과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뱀이 등장한다. 이 뱀을 사탄이 이용한다. 사탄은 먼저 귀가 얇은(gullible) 하와를 공략한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지하신 것은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까 봐 염려하셨기 때문이라고 해석을 갖다 붙인다. 하와는 처음엔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듯했지만 이내 사탄의 논리에 무너지고 만다. 하와는 '하나님은 욕심쟁이(?)'라며 속으로 되뇌인 뒤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그리고 왠지 찜찜했던지 남편에게도 먹인다. 남편 아담은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덥석 받아 먹고 만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것으로 게임 오버(game over)다. 사탄은 하나님께 첫 사람들, 첫 가정의 실패를 증명해 보인 것이다. 사탄은 본래 이런 존재이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애정과 노력이 헛되다는 것을 사탄은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을 버려두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멸망의 자식이 되게 하려고 한다.

사탄의 주장처럼 아담 부부의 실패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신다. 그리고 땅을 갈게 하신다. 노동과 수고로움 없이는 삶을 지탱할 수 없는 형벌을 내리신다. 그리고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더하신다. 에덴동산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로 살았다면 이제 고생없이는 얻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게 하셨다.

(창세기 3:16~17)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쯤되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에덴의 은혜를 간구했어야 옳았다고 본다. 하지만 눈 씻고 봐도 이들 부부는 하나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찾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들의 진심은 그들만 알고 있다. 에덴에 돌아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에게 신앙교육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 본다. 만약 밥상머리 신앙교육이 있었다면 조금은 하나님께 더 매달리지 않았을까 싶다.

아담과 하와는 본래 에덴동산 관리인이었지만 이제는 땅을 갈아엎어야 살 수 있는 농부가 되었다. 어쩌면 이들은 신앙적으로 어찌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을 수도 있다. 롤모델(role model)이 될 만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서이다. 그들의 앞서 삶을 경험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에겐 성경이 있고, 가까이에 신앙의 모범이 많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쫓겨나 살아가던 아담 부부에게 아들들이 태어난다. 아들들의 이름은 가인(Cain)과 아벨(Abel)이다. 잠시 행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만다. 표면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물이 한번 거절되었다고 살인을 저지른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창세기 4:3~5)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세기 4:7~8)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아담과 하와 부부의 행복한 일상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고의로 행복한 삶을 누락시킨 것 같지도 않다. 아마도 맑은 날 보다는 궂은 날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고된 삶을 살았고 거기에 아들들 가운데 형이 동생을 살해하는 일을 겪으면서 웃음이 사라졌으리라.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은 아담이 정착한 땅에서 쫓겨난다.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것이다. 가인은 에덴 동쪽 놋 땅으로 이동해 정착한다. 이 또한 아담 부부를 힘들게 했으리라. 이제 다 떠나고 아담 부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창세기 4:11~12)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담 부부를 회복시키고자 하신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시 아들을 주신다. 셋(Seth)이다. 이때 아담의 나이 백 삼십 세였다. 셋의 이름의 뜻은 '고정된 자' '기초' '택함을 받은 자'이다. 결국 셋(Seth)을 통해 아담의 계보가 이어져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된다.

(창세기 4: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세기 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담은 많이 서투른(unskilled)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벤치마킹할 것은 장점이 아닌 단점일 것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았고, 유혹에 쉽게 무너졌고,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태도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신앙도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고난은 하나님께로의 부르심인데 말이다. 결과적으로 아담에게서는 신앙인의 향기가 덜 난다고 하면 오해일까?

아담은 930년을 살았다. 950년을 살았던 노아와 비슷한 세월을 살았지만 아담에게서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다. 에덴동산에서의 불순종과 아들간 형제살인 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도 첫 사람이라는 명예 외에는 하나님 안에서 그의 삶의 궤적(trails)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오늘 우리는 아담과는 다른 행보(step)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하나님 안에서 신앙적으로 홀로서기를 잘하는 것이다. 아담은 홀로서기를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곧, 하나님이 풀무불에서 구원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신앙이었으면 좋겠다.

(다니엘 3:16~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김상용 목사<br>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br>하늘소망교회 담임목사<br>예수터치 대표<br>
김상용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소망교회 담임목사
예수터치 대표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