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세속 이데올로기의 신봉자인가, 복음 선포자인가?
[논설위원 칼럼] 세속 이데올로기의 신봉자인가, 복음 선포자인가?
  • 박충구 교수
  • 승인 2023.10.2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종교와 정치는 참으로 오래된 주제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고전적인 이해와 현대적인 이해로 갈린다. 루터 전통에서는 종교와 정치는 상호 보완적으로 영역을 나누어 영적인 지배와 세속적인 지배로 보려했지만 신자의 삶의 영역에는 그저 교회와 군주라는 두 지배 체제하에 놓이는 것이었다. 루터의 두 영역론은 하나님의 지배를 교회에서만 실천하고 세속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을 감추고 있었다. 칼뱅의 경우에는 신성 시민도시 이념이 앞서서 정치에게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복종의 의무를 강요하여 영적 승리주의의 색체가 강했다. 영적 승리주의는 심지어 사람의 존엄성과 권리까지 몰수하는 종교적 포악을 불러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의 포악한 지배적 역량은 점차 약화하고 정치는 세속적 자율성의 영역이 되어 세속화된 세계 속에서 보다 강력한 민주적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과거의 왕권, 귀족의 특권, 봉건 영주가 누리던 특권은 여지없이 부정되었고, 민주주의 체제가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 사회에서는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맞물려 교회도 민주화 되었다. 신자들의 자기 이해도 복종의 의무를 가진 신민이 아닌 주권자로서 민주시민으로 바뀌었다. 반면, 이런 흐름에 불만하면서 소수의 복고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인물들이 시대착오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오류로 이끌기도 하였다.

구교에 반기를 들고 개혁을 요구했던 개신교는 끝없이 갈라져 신학적인 교회의 일치가 거의 불가능하리만큼 수백 개의 교파로 난립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이하게도 이렇게 난립한 교파에 속하면서도 교권의 지배를 받지 않는 대형 교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전 세계에서 상위 대형교회 10개 중 다섯 개가 한국에 생겨났다. 이렇듯 신자가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초대형 교회가 형성되는 것은 한국의 신자들이 주체적인 신앙생활을 하기보다 카리스마적인 영적 지도자 1인 지배 체제에 의한 지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향은 다분히 전근대적인 종교적 권위주의에 복종하는 반민주적인 의식에서 잘 드러난다.

에른스트 트뢸취는 이런 부류의 교회에서는 교회의 사회비판적인 예언적 기능이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결과 대형 교회의 신자는 신앙생활에서 영적이며 윤리적 감수성이 약해지고, 사죄의 은총을 파는 교회의 기능에 쉽게 부응하게 된다. 신자들은 자신의 불안한 양심을 잠재우기 위하여 수 천, 수 만 명이 모이는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얻으며, 부유한 교회의 경영자가 기획하는 고급지고 화려한 종교 퍼포먼스에서 대리 만족을 얻는다. 이들은 목사의 권위에 질문하지 않으며, 자신이 바친 헌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신자들의 복종적 성향에 비하여 대형 교회 목사는 막강한 권위와 권력을 교회 안에서 행사한다. 신자들 중에는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어 목사의 권위와 권력을 강화하기도 한다. 여기서 목사와 권력 지배층과의 은밀한 교감과 연대가 형성되고, 상부상조하며 서로의 부정에 눈을 감게 된다. 결국 대형 교회 목사의 부정과 전횡에 대한 통제적 기능은 교회 내외에서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목사가 퇴직하며 신도들이 바친 헌금 수백억 원을 착복해 가져가도, 목사직을 세습해도, 목사가 비자금을 수백억 원이나 감추어 놓아도 아무도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 신자도, 사법기관도, 교단의 권위도, 심지어 검경도 대형 교회 목사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교회 안에서 거의 절대 권력을 가진 목사는 군왕 못지않은 특권을 누린다. 그는 신자의 감시와 감독을 받지 않으며, 어느 누구로부터 도전을 받지 않는다. 만일 도전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일순간에 악마화 된다. 목사의 비위와 비리 행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도 신자인 검사, 판사, 대법관이 충성스럽게 막아준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이명박 정권 직후부터 미국에서 발생한 “뉴 라이트“라는 신종 극우 세력에게 심각하게 오염 되었다. 뉴 라이트에 감염되면 종교와 정치가 극우 이념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되어 포악을 저지른다. 뉴 라이트 집단의 일원이 된 목사는 걸핏하면 이 땅에서 민주, 평화, 인권을 위하여 일하는 이들을 친북, 좌파, 용공, 빨갱이 세력이라고 공개 매도하며 신자들에게 혐오와 증오를 가르친다.

뉴 라이트 본색은 본디 1960년대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전통적인 보수주의의 실패를 덮기 위하여 만든 극우 정치 이념으로 미국 국가주의를 옹호하고, 인종차별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조장하며, 노동과 복지 영역에서 인권과 자유의 확산을 거부하는 신보수주의 성향을 지닌 것으로 보편적 인류애를 가르쳐온 기독교 복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지성적 비판 능력이 모자라는 목사들이 뉴 라이트에 감염되면 그의 의식과 행태는 친미주의자의 것이 되고, 인권과 복지를 위한 사회정책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국적 불명의 설교자가 된다.

목사들은 교회와 사회의 민주화를 거부하고, 독선적 권위주의나 독재자를 옹호하며, 인권과 평화운동, 노동운동을 적대시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공산주의라는 철지난 허깨비가 마치 우리 사회의 전복을 기하고 있다는 허황된 주장에 빠진다. 개인이 구시대적 행태에 빠질 사상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본색이 기독교 복음을 선포하는 영적 권위를 가진 목사가 주장과 행태를 벌이고 있다면 그는 복음의 정신을 조잡한 이념으로 세탁하고,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의 사회적 구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신종 이단자라고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복음 선포자가 뉴 라이트에 감염되어 선과 악, 불의와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면 그는 세속 이데올로기 신봉자일수는 있어도 더 이상 복음 선포자가 아닌 것이다.

박충구 교수
​​​박충구 박사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 윤리학 교수
현 생명과 평화 연구소 소장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