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그림에서 장애인을 만나다
[예술과 목회] 그림에서 장애인을 만나다
  • 최대열 목사
  • 승인 2023.10.10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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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 『그림에서 장애인을 만나다』

생각해보면, 그림을 보는 렌즈도 프레임도 패러다임도 관심으로부터 생겨난다. 우리는 그림을 볼 때 아름다움을 향한 보편적인 관심 외에 또한 개인적인 관심에 따라 그림을 달리 감상하며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네덜란드의 화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 c. 1525~1569)을 좋아한다. 그의 섬세하고 소박한 화풍, 서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상, 무엇보다 그림 속에 들어있는 풍자와 해학이 아름다움과 재미를 넘어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그의 작품 중에 1559년 작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이 있다. 이 작품은 브뢰헬의 작품치곤 2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제법 큰 작품이다. 내용은 제목이 말해주듯 사육제 진영과 사순절 진영의 싸움을 표현하고 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세속문화와 기독교문화의 대립처럼 볼 수 있지만, 당시 플랑드르의 정치·종교적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 작품은 구교인 로마가톨릭 진영과 신교인 종교개혁 진영의 대립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은 절반을 갈라서 왼쪽에는 사육제를 즐기는 진영과 오른쪽에는 사순절을 지키는 진영을 대치시키고 있다. 사육제 진영의 풍경은 당시 중세에 널리 행해지던 사육제의 축제 문화를 반영하고 있고, 사순절 진영의 풍경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순절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브뢰헬이 어느 편에 섰는지는 학자마다 해석을 달리한다. 브뢰헬이 구교의 입장이라는 주장도 있고, 반대로 신교의 입장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그의 풍자적 작품 성향을 고려하여 양 진영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고 보기도 하는데, 필자도 같은 입장이다. 구교도 신교도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우리는 관심에 따라 그림을 본다. 오늘 이 작품을 대하는 저의 관심은 그림 속에 묘사된 장애인들에게 있다. 왼쪽 사육제 진영의 중앙 약간 상단을 보면 일군의 지체장애인들이 모여 있다. 사육제 진영은 먹고 마시고 축제를 즐기기에 바쁘다. 아무도 이 장애인들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인들도 나름 사육제의 주체가 되어 그들끼리 축제를 즐기는 것 같다. 아무도 그들에 주목하지 않지만, 그들은 이미 충분히 자유롭고 주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오른쪽 사순절 진영의 중앙 약간 하단에도 여러 명의 장애인들이 등장한다. 시각장애인도 있고, 하지가 절단된 지체장애인도 있다. 그런데 이 쪽의 장애인들은 동정을 자아내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사순절 진영은 금욕, 금식, 고행과 함께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있다. 이 진영에서 장애인은 사순절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 곧 자선의 대상이다.

그림 중앙에 두 사람이 한 광대의 인도를 따라가고 있다. 두 사람은 사육제와 사순절 곧 구교와 신교를 대표한다. 광대는 브뢰헬의 의도를 따라 양 진영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화가 자신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불 꺼진 등불을 들고 두 사람을 이끌어간다.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제대로 가기는 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양 진영의 부정적인 것을 부정하고, 보다 나은 세계로 나아가면 좋겠다. 장애에 초점을 맞추어 소망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상호 주체의 통합적 사회로 나아가면 좋을 것 같다.

장애인의 존재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에서 장애인이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육제 진영에서 장애인은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회의 주류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사순절 진영에서 장애인은 타인들과 관계하는 것 같지만, 주체가 아니라 자선의 대상이다. 만약 장애인이 함께 축제를 즐기는 공동의 주체이면 어떨까? 만약 장애인이 일방적인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긍휼을 베푸는 상호적 주체이면 어떨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고, 또 함께 희망을 나누는 존재이면 어떨까? 적어도 교회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최대열 목사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발달장애인선교연합회 회장명성교회 사랑부 담당 부목사
최대열 목사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발달장애인선교연합회 회장
명성교회 사랑부 담당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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