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수원 목사(태봉교회, 전 서울동남노회장)
[총회 회의자료집에 실린 헌법위원회의 청원사항]
<현행 법규>
제28조 [목사의 청빙과 연임청원]
6. 위임목사 또는 담임목사 청빙에 있어, 아래 각 호에 해당하는 이는 위임목사 또는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 단 자립대상교회에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① 해당 교회에서 사임(사직)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 -이하 생략-
<헌의되는 수정 법규>
제28조 [목사의 청빙과 연임청원]
6.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담임목사로 청빙할 때는 재적 당회원(미조직교회는 재적 제직회원) 3분의2 이상의 찬성과 공동의회 출석회원 4분의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단, 청빙 결의는 반드시 투표로 결정하되 찬반토론 없이 무기명 비밀투표로 결정해야 하며, 판결에 의하여 청빙결의가 무효인 것으로 확인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일인에 대한 청빙투표는 1회에 한하여 실시할 수 있다. ① 해당 교회에서 사임, 사직, 은퇴한 담임목사 또는 사임, 사직, 은퇴 예정인 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 ② -생략-
<헌법시행규정 제16조의1 제5항>
헌법 정치 제28조 제6항의 청빙 투표를 실시할 때는 반드시 투표 예정일 10일 전에 공동의회 회원 명부를 작성, 교회 게시판과 교회 홈페이지 등에 공고한 후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날짜를 7일 이상 주어야 하며, 투표예정일 전일까지 이의 제기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항존직이라 할지라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제108회 총회에 보고할 헌법개정 관련 총회 정치부(부장 김성철 목사) 연구안이 확정되어 관련 부서로 이첩됐다. 그 중 첨예한 논쟁이 예상되는 헌법 정치 제28조 제6항(이하, 세습금지규정)의 개정안에 대해 반대의견과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세습금지규정 개정의 문제는 교단 내 여러 현안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이 건은 교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반향이 예상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정치부는 요건을 충족하면 세습을 허용하는 등의 전면 개정을 제안하고 있다. 정치부는 세습허용의 개정 명분으로 ‘교회의 자유 원리’를 든다(헌법 정치 제2조). 교회의 자유는 교단의 정치원리이기에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면서도 교회 세습의 부정적 측면을 고려하여 『재적 당회원(미조직교회는 재적 제직회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공동의회 출석회원 4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단, 청빙 결의는 반드시 투표로 결정하되 찬반 토론 없이 무기명 비밀투표로 결정해야 하며, 판결에 의하여 청빙 결의가 무효로 확인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1회에 한하여 실시한다.』라는 세습 청빙 시 의결정족수와 표결방식의 강화안을 추가했다. 하지만 정치부는 이 두 요건을 제시하면서도 교회 자유론의 왜곡 현상과 결의요건의 치명적 결함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는 ‘교회의 자유’ 원리의 왜곡 현상이다.
본래 교회의 자유 원리는 정교분리 원칙의 근간이자 세속․종교(황제․교황)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 교인의 입회규칙이나 직원의 자격, 교회의 정치 조직 등을 설정할 자유권이 있다. 하지만 ‘교회의 자유’는 뭐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예수 복음의 영성을 지켜내고 누릴 자유다. 교회의 자유를 구실삼아 자신의 탐욕을 꾀하려는 사람은 교회의 자유 목적을 파괴하는 자이다(참조, 헌법 제1편 교리-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0장 제3조). 우리 교단은 교회와 지교회를 구분한다(정치 제7조, 제9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거룩한 공교회(公敎會)를 말하고, 지교회(支敎會)는 정치 구조상 교단에 소속된 산하 교회를 말한다. 지교회는 공교회의 일원으로서 노회와 총회의 치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치리(治理)는 교회의 자유권을 남용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의(義)와 거룩성을 보전하기 위한 방책이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자유는 예수 복음 안에서만 가능한 자유다. 교회가 원한다고 다 허락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허락 여부는 그 원하는 것이 일반의 법보다 상위법인 복음에 합당한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 시대 교회 세습의 허용 여부도 예수 복음의 정신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복음의 정신은 하나님의 영광과 공교회의 화평, 그리고 십자가의 영성으로 요약된다(눅 2:14, 마 16:24 등).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기 몫의 십자가를 내어버리거나 하나님의 영광과 공교회의 화평을 저해하는 행위를 자유로 치부하지 않는다. 교회 세습이 사회적 비난거리가 된 지 오래고, 교단의 첨예한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허락 여부를 저울질하는 작금의 행태가 참담하다.
둘째는 세습허용 의결정족수 및 표결방식이 가진 내재적 위험성이다.
정치부는 개정안에서 ‘재적 당회원(미조직교회는 재적 제직회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공동의회에서 출석회원 4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하되, 청빙 결의는 1회에 한해 무기명 비밀투표로 한다’는 강화된 세습 허용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재적 회원의 과반 출석으로 개회하는 일반의 회의와는 달리 공동의회는 ‘출석회원’만으로도 개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정치 제90조 4항). 이런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교회 세습의 허용요건은 상당한 문제점을 노출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건강한 일반 교회는 관련 금지 규정이 없어도 그 폐단을 알기에 교회 세습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교회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목회자가 절대 권한을 가진 교회에서는 체계상 당회(또는 제직회)의 인적 구성이 어떤 목적을 위한 사전 포석용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데다, 공동의회마저 ‘동원된 출석회원’일 경우는 의결정족수나 표결방식을 떠나 맹목적으로 목회자의 뜻을 따를 소지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분란은 불 보듯 뻔하다. 강화된 수치만으로는 별반 의미가 없다. 복음의 본질을 외면한 채로 의결정족수나 표결방식을 강화한들 그 정당성이 확보되겠는가? 자칫하면 ‘이상한 교회’에만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겨날 수 있다. 교회법은 복음 안에서 혼란을 예방하고, 교회의 거룩성과 건강성을 지향하도록 제(개)정되어야 한다. 설령 당회원(제직회원)이나 공동의회 회원 100%가 찬성결의를 한다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복음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스스로 접거나 법으로 금해야 마땅한 일 아닌가.
끝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교회 세습의 가장 큰 문제는 가족관계를 통한 은퇴한 전임자의 권한 연장과 후임자 선정 및 사역에의 영향력 행사에 있다. 이러한 간섭을 막기 위해서는 모세와 세례요한의 영성이 절실하다(신 31:1~8, 눅 3:16). 후임자를 위해서라도 전임자나 은퇴를 앞둔 현 당회장의 세습 관련 행보를 멈추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의 정치부 개정안을 보면 관련 당사자들의 간섭 배제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게 하는 법안이다. 따라서 현행제도 안에서 세습금지 규정을 보완한다면, 전임자가 설교 등 교회 내 사역에 일절 간여하지 않는 ‘완전 은퇴’ 한 날을 기산일(起算日)로 10년을 초과하거나, 또는 전임자의 ‘사후(死後)’ 3년을 초과했을 때는 청빙에 일체의 제한을 두지 않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요건이라면 징검다리 세습 등의 꼼수를 예방하고, 전임자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나겠기에 훗날 전임자의 자녀·손을 포함해서 누구를 선택하든 그 진정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교권주의자들의 자리 마련을 위한 수단으로 또다시 법 개정을 시도한다면, 교회 혼란은 여전할 터이고 결국 총회가 이를 방조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총회가 진전된 논의의 과정을 통해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