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조직사고와 도망자들
[논설위원 칼럼] 조직사고와 도망자들
  • 옥성삼 박사
  • 승인 2023.08.23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79년 봄, 미국 펜실베니아주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에서 세계 최초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다중의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고장과 직원 실수가 겹치면서 원자로는 멈추고 결국 수소폭발로 이어졌다. 냉각수필터가 막히는 것으로 시작된 사고는 공교롭게도 긴밀하게 연결된 다중의 방호체계를 한순간에 뚫었다. 이 과정에서 현장 기술자들의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실수도 이어졌다. 인근 주민 10만여 명이 급히 대피했지만, 1m 두께 격납 용기 덕분에 외부 피해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사건을 수습하면서 미국 연방정부는 원인 파악과 개선을 위한 통합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예일대 사회학과 찰스 페로 교수가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다학제적 연구를 통해 간결한 결론을 내놓았다. 현대문명의 대형 시스템은 그 긴밀하게 연결된 복잡성으로 인하여 완전한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찰스 페로는 TMI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1984년 ‘정상사고(Normal Accident) 이론’을 발표했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심리학과 제임스 리즌은 1990년에 현대문명이 가진 불완전성과 사고의 발생을 ‘스위스치즈 이론(Swiss Cheese Model of Accident Causation)’으로 설명했다.

긴밀하게 연결된 대형체계일수록 시스템의 불완전을 보호하기 위한 다중의 방호장치가 있는데, 각각의 방호장치 역시 구멍이 뚫려 있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연히 이러한 구멍들이 연속적으로 연결된 경우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체계적인 조직일수록 대형사고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조직사고(Organizational Accident)'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많은 전문가들이 ‘정상사고’와 ‘스위스치즈’ 이론 등으로 사고의 진단과 현대문명의 위험성을 제기했다.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이 삶의 편리를 더하고 자연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능력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원자력사고, 비행기 테러, 기후 위기 등의 사례와 같이 기술문명 자체가 오히려 더 큰 위험과 재난을 가져온다는 울리히 백의 ‘위험사회’와 같은 맥락이다.

파행과 혼란 속에 막을 내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는 행사전후 이어진 재난과 사건 속에서 사회적 관심이 희석됐다. 합리적 조사와 성찰이 있어야겠지만, 이걸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엄청난 인명피해와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정부는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대책을 약속했지만, 상처의 치유와 성찰보다는 사회적 갈등과 분노의 앙금을 쌓는 형국이다. 문제는 우리 모두 갈등사회를 가로지르며 뚫고나갈 힘(신뢰)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내 탓이요’ 대신 ‘네 탓이요’의 목소리만 끊임없이 오간다. 큰 피해에 원인도 범인도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근래 잦아지는 대형 재난과 사고에서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정상사고 이론’과 ‘스위스치즈 이론’과 닮았다. 사회체계의 불완정이 문제지 ‘내 탓이 아니다’고 한다. 총체적인 조사도 없지만, 책임자들이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 속으로 숨어버리면, 사회적 성찰보다는 체념하거나 갈등하고 분노를 삼킨다.

곧 한국교회 주요교단의 총회 시즌이다. 당회 노회(연회) 총회 등 한국교회 정치체제의 책임자 중에 과연 몇 분이나 직분과 소명을 맡은 자로서 ‘내 탓이요’의 목소리와 신행일치(信行一致)의 모습을 보여주실지?

옥성삼 교수연대연합신학대학원 책임교수크로스미디어랩 원장  가스펠투데이 기획편집위원
옥성삼 교수
연대연합신학대학원 책임교수
크로스미디어랩 원장
본보 논설위원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