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아담과 하와의 변명
[예술과 목회] 아담과 하와의 변명
  • 임재훈 목사
  • 승인 2023.08.22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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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롤루스 대제(Carolus Magnus, 742~814)의 프랑크제국은 그의 사후 제국의 분열(843)과 노르만족, 마자르족의 침입으로 해체되었다. 하지만 고대 로마제국을 계승해 서유럽의 보편제국을 이룩하려 한 그의 이상은 동프랑크왕국의 오토대제(Otto I. der Große, 912~973)가 신성로마제국을 수립하고 서방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로 황제에 즉위함으로 계승된다. 이후 나폴레옹 시기까지 지속되었던 ‘독일민족의 신성로마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 962~1806)은 유럽교회가 지닌 국가교회(Staatskirchentum) 전통의 토대가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오토왕조(919~1024)는 카롤링거왕조 붕괴 후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서유럽의 문화를 주도하였는데 이 시기에 발생한 미술을 오토왕조의 미술(Ottonian Art)이라고 한다.

오토왕조의 미술은 고전미술의 부활에 주력한 카롤링거 르네상스(Carolingian renaissance) 미술과 달리 이에 더해 동시대의 비잔틴 미술을 수용함으로 새롭고 독창적인 양식을 형성하였다.

이 시기의 미술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형성되기 이전 로마네스크를 예비하였다는 의미에서 ‘전(前) 로마네스크 양식'(Pre-Romanesque/Vorromanik)으로 분류한다. 한편 본격적인 독일 로마네스크 양식은 잘리어왕조(1024~1125)와 호헨슈타우펜왕조(1138~1254) 시기에 전개된다.

 

2. 독일 힐데스하임의 베른바르트 주교(Bischof Bernward, 960~1022)는 신성로마제국의 이상과 이념, 교회의 신학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재위에 오른 오토 3세(오토대제의 손자)의 스승이자 재상으로서 성직자 관료국가인 오토왕조 내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가 행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제국의 이념을 표현하는 미술 행위는 고전 고대의 정신과 연결되는 것으로 서로마제국 멸망(476) 이후의 암흑기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 미카엘 수도원교회(St. Michaelis)와 대성당(Dom)의 청동문부조, 청동주물기념주 등의 작품은 신성로마제국의 이상과 신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사진1 성 미카엘 수도원교회(St. Michaelis), 1010~1022, 독일 힐데스하임
사진2 대성당(Dom), 852~872/960/1000, 독일 힐데스하임

 

3. 베른바르트 주교는 신자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성 미카엘 수도원교회에 청동문을 그리고 힐데스하임 대성당에 청동기둥을 설치한다. (원래 성 미카엘교회에 있던 청동문은 현재는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베른바르트의 문(Bernwards Tür, 1015)으로 불리는 청동문에는 좌우 양쪽에 각각 8개씩 모두 16개의 패널(Panel) 위에 좌측에는 창조와 타락, 낙원 추방, 가인과 아벨 등 구약 이야기 8개 그리고 우측에는 십자가와 부활, 예수의 생애 등 신약 이야기 8개 모두 열여섯 장면을 담은 부조가 신구약 성경의 유형론적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 원리에 근거해 새겨져 있다.

사진3 베른바르트의 문, 1015년, 청동, 높이 4,7m, 너비 각각 1,2m, 무게 1,8톤, 대성당
사진4 베른바르트의 문, 도상학적 해설(Iconograpy)

좌우 양쪽의 패널은 서로 대응하는데, 예를 들어 왼쪽 세 번째 패널의 ‘인간의 타락’은 오른쪽 열네 번째(아래로부터 번호 매김) 패널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에 대구를 이룸으로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속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좌우 대응만이 아니라 좌측 상단 첫 번째 패널의 ‘인간 창조’는 우측 아래 아홉 번째 패널의 ‘수태고지’ 장면으로 대각선 방향으로도 대응한다.

각각의 패널은 개별적으로 제작해 접합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문에 고부조를 새겨 넣는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두 쪽 여닫이로 된 청동문은 높이가 4,7m, 양쪽 문의 너비가 각각 1,2m이며 각각의 무게가 1,8톤인 대형 작품이다.

특별히 왼쪽 문 네 번째 패널(눈높이에 가장 부합되는 곳)에는 원죄를 지적하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책임을 회피하는 아담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하와 역시 뱀을 가리키며 변명하고 있다. 결국 그 아래 다섯 번째 패널에서 아담과 하와의 변명하는 손가락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는 그룹의 손가락으로 귀결된다. 추방될 때 뒤돌아보는 하와의 시선과 낙원의 닫힌 문을 붙잡는 아담의 손은 미련과 아쉬움, 회복에 대한 갈망을 의미한다.

사진5 베른바르트의 문, 세부, 아담과 하와의 변명, 1015년, 대성당, 힐데스하임
사진6 베른바르트의 문, 세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1015년, 대성당, 힐데스하임

두 번째 패널 ‘아담과 하와의 만남’에서의 생동감 있는 몸짓, 표정과 달리 네 번째 패널 ‘아담과 하와의 변명’에서는 오그라들듯 몸을 움츠리고 있다. 화면에 등장하는 식물도 인물의 감정과 분위기를 반영해 둘째 패널과 넷째 패널의 식물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세 번째 패널 ‘타락’에서 식물에 달린 일곱 개의 열매는 교만에서 비롯된 일곱 가지 죄를 의미한다. 인간의 죄에 대한 주제가 분명히 표현되고 있어서 인물과 식물의 모습이 자연적으로 묘사되지 않았음에도 기독교 교리와 교훈적인 내용의 분명한 전달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종일관 변명으로 일관함으로 결국 낙원에서 추방되는 인간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독일 로마네스크 조각 특유의 표현주의적 경향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진7 베른바르트의 문, 세부, 하와의 아담과 하와의 만남 / 원죄, 1015, 대성당, 힐데스하임

이는 ‘그림은 (글을 모르는) 평신도의 문자이다(pictura est laicorum literatura)’는 그레고리 대교황(Gregor der Große, c.540~604)의 가르침을 조각 분야에서 완벽하게 구현한 예이다.

베른바르트의 문에 새겨진 청동 부조상은 오토왕조 미술의 진수로 등장인물의 묘사가 미적으로 부족하다 할지라도 인간 내면의 죄와 책임을 회피하는 죄인의 모습을 묘사한 불후의 명작이다. 이 작품은 고전미술이 취한 사실적 묘사와 비례감 대신에 메시지 전달력을 중시한 중세미술의 목적을 잘 드러낸다.

베른바르트 주교는 교회의 문을 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부조로 장식함으로써 이 문이 단순히 내외 공간을 연결하는 물리적인 문이 아니라 신자들이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죄와 불신앙, 이기심과 책임회피를 회개하게 하는 구원의 문, 좁은 문, 천국의 문이 되게 하였다.

 

4. 대성당에 세워진 ‘베른바르트의 기념주’(Bernwards Säule)는 고대 로마제국의 트라야누스황제의 전승기념주(Trajanssäule)를 본떠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기둥이다. 이교적인 로마제국에서의 황제의 공적을 칭송하는 대신 신성로마제국에서는 만왕의 왕 그리스도의 구원의 서사가 찬양되고 있다.

사진8 대성당(Dom), 내부, 852~872/960/1000년, 독일 힐데스하임
사진9 베른바르트의 기념주(Bernwards Säule), c.1020, 대성당, 힐데스하임
사진10 베른바르트의 기념주, 세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그리스도, 1020년 경
사진11 트라야누스황제 전승 기념주(Trajanssäule, 110~113), 로마

 

5. 한편 대성당 부근에 세워진 성 미카엘 수도원교회(St. Michaelis, 1110~1133)는 성과 속의 통합을 지향한 신성로마제국의 이상을 동서 양단에 내진이 있는 독일 특유의 이중내진(Doppelchor) 평면으로 구현한 건축물이다. 이러한 이중내진은 베른바르트 주교의 신학적 구상에 의한 것이다.

동쪽 내진에는 주 제단이 위치하고 서쪽 내진에는 반지하에 납골당을 두었다. 그럼으로써 동서 양쪽의 내진(choir)은 각각 동쪽은 영적인 세계와 교회의 권위를, 서쪽은 세속의 세계와 국가의 권위를 상징함으로 두 권력의 통합을 추구한 신성로마제국의 이상을 나타내었다. 서임권 논쟁(Investiturstreit) 이후 이중내진은 교황권과 황제권, 교회권과 세속권의 긴장 관계를 반영하였다.

이후 독일 로마네스크 양식의 완성인 슈파이어 대성당(Speyer I, 1030~61/Speyer II, 1090~1106)이 교황권 집중을 건축언어로 표현한 브루고뉴의 클뤼니수도원(Cluny II, 948~980/Cluny III, 1088~1131)과는 상이한 반(反) 클뤼니의 입장을 대변하였듯이 신성로마제국의 제국교회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사진12 성 미카엘 수도원교회(St. Michaelis), 내부, 1010~1022, 독일 힐데스하임
사진13 성 미카엘 수도원교회(St. Michaelis), 평면도, 1010~1022, 독일 힐데스하임
사진14 슈퍼이어 대성당(Speyerer Dom), 1030~61/1090~1106), 독일 슈파이어
임재훈 목사<br>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br>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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