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오펜하이머〉 - 핵분열과 핵융합, 선택의 순간에 선 인간
[영화와 복음] 영화 〈오펜하이머〉 - 핵분열과 핵융합, 선택의 순간에 선 인간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3.08.22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트리니티 핵실험 버튼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에 잠긴다. “그 버튼을 누르면 세상이 파멸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자폭탄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종식할 가장 확실한 무기임에 틀림이 없기도 하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붉은색 버튼이 눌리고, 로스앨러모스에서 진행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은 이렇게 당대 최고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절정에 달한다. 핵분열의 장관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아름답게 화면 가득 펼쳐지고, 버섯구름으로 치솟은 핵폭발 장면이 멀리서 보인다. 그 와중에 실험의 성공 여부에 노심초사하며 은폐한 상태로 지켜본 관계자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등장하고, 다소간의 시간이 흐른 뒤 거대한 폭발음이 천지를 진동한다. 그렇게 맨해튼 프로젝트는 성공한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보이(우라늄 폭탄)와 팻맨(플루토늄 폭탄)이 투하되고, 마침내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제2차 세계대전은 끝을 맺는다.

영화는 크게 3가지 시간대로 구성된다. 오펜하이머의 케임브리지와 괴팅겐 대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부터 나치보다 먼저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까지가 1부라면, 1954년 수소폭탄 제조에 반대한 오펜하이머에 대한 청문회 장면이 2부이다. 여기에선 매카시즘에 근거한 오펜하이머의 사상검증이 주를 이룬다. 3부는 오펜하이머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던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상무부장관 인사청문회(1959년) 장면이 흑백으로 묘사된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스트로스 제독의 기억과 그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들이 묘사된다.

영화는 이렇듯 컬러와 흑백의 대비로 이뤄져 있다. 컬러화면의 ‘핵분열(fission)’과 흑백화면의 ‘핵융합(fusion)’이 부제로 사용되었다. ‘핵분열’은 오펜하이머의 관점으로,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과정을 담고 있다. 반면, 핵융합은 루이스 스트로스의 관점으로, 원자폭탄의 위력을 실감하고 향후 위험성을 직감한 오펜하이머가 핵융합을 이용한 수소폭탄에 반대하자, 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과 소외를 그리고 있다.

핵분열과 핵융합의 대조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에 대한 상징 그 이상의 의미를 함유한다. 둘 다 폭탄을 제조하는 방식이며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갖는 건 같지만, 과정과 위력에 있어 차이가 난다. 핵분열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같이 무거운 원자핵에 중성자가 부딪혀 나눠질 때 발생하는 에너지로 폭발을 얻는 것이라면, 핵융합은 수소와 같이 가벼운 원자핵이 결합하면서 발생한 에너지로 폭발을 발생시키는 원리이다. 전자가 나눔을 통한 잉여 에너지의 산출이라면, 후자는 결합을 통한 잉여 에너지의 산출이다. 그런데 그 결과물은 후자가 훨씬 고효율이고 파괴적이다. 태양이 존재하는 방식이 바로 핵융합이니, 수소폭탄은 작은 태양을 지구로 가져오는 것과 같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천재 과학자 ‘오펜하이머’라는 한 개인의 삶에 이 핵분열과 핵융합을 덧입혀 모순되고도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전형을 투영한다. 최고의 과학자들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닐스 보어, 에드워드 켈러 등과 교제하며 양자역학을 익혔고, 이를 활용하여 당시 이론물리학의 불모지였던 미국에서 획기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 결국 그로브스 장군(맷 데이먼)에 픽업되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상황에서, 나치의 과학자들보다 먼저 핵무기를 만들어야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절박함과 그럼에도 그 핵무기가 전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위험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트리니티 계획이 성공하고 일본에 원폭이 투하된 후에, 그는 양가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핵분열과 핵융합은 이런 그의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분열과 융합은 인간의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뭔가 중대한 사안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그 책임감과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류를 살리기 위한 원자폭탄이 인류를 파멸할 무기도 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어떤 선택도 양심과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면, 최선은 무엇이며 그 선택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그건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고 아담과 하와가 겪었던 선택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 영화는 과학자들을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당시 최선의 선택을 했음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모순으로 가득 찬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야말로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문화사역 전문기자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