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순례] 제78주년 광복절을 기념하며 읽는 소설
[독서 순례] 제78주년 광복절을 기념하며 읽는 소설
  • 황재혁 기자
  • 승인 2023.08.22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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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하얼빈』

대다수 사람은 유튜브에서 최신 영상을 즐겨본다. 자신이 관심 있는 채널이라면 구독과 알람을 설정해 최신 영상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데 유튜브의 장점은 그저 최신 영상을 보는 데 있지 않다. 그 어디서 찾아볼 수 없는 과거 영상을 다시 시청하는 데 유튜브의 장점이 있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광복50주년 축전음악회 영상을 시청했다. 이 축전음악회는 1995년에 광복50주년을 맞아 88올림픽 주경기장에 특설무대를 설치해 국내 최고의 음악가를 초청해 진행한 국가행사였다. 정명훈 지휘자가 KBS교향악단의 지휘를 맡고, 조수미, 사라 장, 정경화, 강동석 등의 음악가들이 돌아가면서 공연했다. 모든 출연진이 무대에 서서 애국가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다시 볼 수 없는 희대의 명장면이었다. 이 축전음악회로부터 약 3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이번 광복절은 그때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생기 없고 무기력한가? 청춘의 패기가 넘쳤던 대한민국이 2000년대를 지나며 급격하게 늙은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난 2022년 8월에 소설가 김훈이 『하얼빈』이라는 제목의 역사소설을 출간했다. 출간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이 책은 여전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얼빈』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소설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내용을 주로 다룬다. 그런데 김훈은 이 소설에서 안중근 의사의 생애만 조명하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와 동시대에 살았던 이토 히로부미의 생애를 조명하며 이 두 사람이 동시대에 얼마나 다른 가치관으로 살았는지를 대조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제국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조선을 포함한 주변국을 철저히 짓밟았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라는 속담처럼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짓밟힌 조선인의 마지막 긍지를 가지고 그를 저격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이 다 끝나고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제목의 작가의 말이 상당히 강렬하게 느껴졌다.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주었다. 이 세 단어는 생명의 육질로 살아있었고, 세상의 그 어떤 위력에도 기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청춘의 언어였다. 이 청년들의 청춘은 그다음 단계에서의 완성을 도모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폭발했다.” (303쪽)

독립운동에 헌신한 안중근 의사를 요즘 기준으로 보면 ‘청년 백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는 안정된 직장에 소속되지도 않았고, 매일 성실하게 노동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훈이 말한 것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기에 그 청년의 빈곤함이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더 잃을 게 없으니 굳이 몸을 사릴 이유가 없었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이 활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딱히 지킬 게 없는데 그걸 지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은 우리에게 안중근 의사는 말한다. 지금은 손으로 움켜쥘 때가 아니라 몸을 던질 때라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전진할 때라고 말이다.

황재혁 목사<br>예수마을교회 청년부 담당<br>​​​​​​​본보 객원기자<br>
황재혁 목사
예수마을교회 청년부 담당
본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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