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믿음’의 풍성한 실천적 함의
[전문가 칼럼] ‘믿음’의 풍성한 실천적 함의
  • 이상목 교수
  • 승인 2023.08.21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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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연합공동학술대회가 ‘종교개혁과 오늘의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열렸다. 필자가 속한 학회도 참가하여 신약성서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의미를 토론하였다. 여러 참가자가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관해 의견을, 정확하게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곧, 한국교회는 믿음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개신교 전통을 강조한 나머지 행위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고 지적하면서 그러한 신학이 교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걱정하였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를 믿음의 대척점에 놓았고, 루터도 바울의 구원론을 재발견하여 “오직 믿음으로”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모두 행위를 배격하지도 가볍게 여기지도 않았음에 함께한 학회원들이 동의하였다. 바울과 루터는 크리스천의 신앙 윤리를 강조하여 신자의 삶에 반드시 윤리적인 모범이 드러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국교회의 대중적인 신학에서 율법의 행위는 행위 일반으로 확대되어 구원을 위한 공로를 얻으려는 행동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러한 신학은 한국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은혜와 율법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개신교 신학의 유산이 지닌 잠재적인 문제는 유대교를 율법주의 종교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로 구별하는 서구 개신교에서도 이미 그 모습을 선명히 드러내었다. 행위로 얻는 공로가 구원의 조건이라면,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것이 아닌 인간의 성취가 된다. 이러한 문제를 경계한 개신교 전통은 믿음을 강조하고 행위와 구원은 무관한 것으로 여겼다. 필자도 어린 시절 구원은 몇 문장으로 간략하게 표현된 교리를 ‘믿으면’ 또는 ‘믿고 고백하면’ 확정적으로 주어진다고 교회에서 배우며 자랐다.

위와 같은 구원론은 믿음에 대한 이해를 명확하게 가르친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이제 기독교에 입문하는 크리스천에게 간략하며 명징한 교리는 큰 매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은 동시에 ‘믿음’이 지닌 의미를 대폭 축소하여 신약성서가 전하는 믿음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만드는 문제가 있다. 신약성서에서 거의 일률적으로 ‘믿음’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는 피스티스(pistis)이다. 이 단어는 의미의 폭이 매우 넓은 말이다. 우리가 익숙한 ‘믿음’을 비롯해서, 신뢰, 신실함, 충실함, 충성, 위임, 위임된 일 등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피스티스는 상거래에서는 신용, 회계장부를 의미하기도 하고 법정의 증거, 담보 등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의 기저에는 상호 신뢰 또는 충실한 상호관계라는 뜻이 자리한다. 피스티스는 이러한 상호관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맥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신약성서의 피스티스는 행위를 배제한 믿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스티스는 오히려 행위를 요구한다. 애초에 행위 없는 충실한 상호관계는 어불성설이다. 하나님을 향한 예수의 피스티스는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그의 행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피스티스는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실천함으로써 드러난다. 예수의 제자 됨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증거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피스티스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분과의 충실한 상호관계를 맺고 유지함으로써 드러나고 증거된다. 그러한 관계 맺음과 유지는 내적인 사고의 전환과 결단은 물론이고 외적인 삶의 변화도 요구한다. 행위는 구원과 관계없다고, 믿음으로만 구원받았다는 고백이 지닌 신학적 빈곤은 믿음이 지닌 풍성한 실천을 간과하게 한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피스티스는 먼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신실하심 속에서 그분을 향한 우리의 신실한 삶이다. 사랑하고 위로하며 봉사하고 나누는 삶,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곧 피스티스이다.

이상목 교수<br>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br>신약학<br>
이상목 교수
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전문대원 연구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신약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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