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천박한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카타리나 블룸의 생애를 조명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은 일간지 ‘차이퉁’의 희생양으로 묘사된다. 카타리나 블룸은 그저 한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밤을 보냈을 뿐인데, ‘차이퉁’의 왜곡된 보도로 인해, 어느새 ‘살인범의 정부’, ‘테러리스트의 동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다. 이러한 왜곡 보도에 분노한 카타리나 블룸은 어느 일요일 저녁 ‘차이퉁’ 기자를 찾아가 총으로 그를 살해하고 경찰에 자수한다. 소설에서 카타리나 블룸의 기자 살해 사건은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되돌리고자 하는 일종의 명예살인으로 그려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처음 출판된 이 소설은 지금 읽더라도 낡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카타리나 블룸의 비극적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미디어의 발전으로 초래될 디스토피아를 잘 묘사한 예언자적 소설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카타리나 블룸을 향한 양가감정이 생겼다. 그녀가 ‘차이퉁’의 가짜 뉴스로 평범한 일상이 난도질당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살해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미디어 리터러시 결핍이 기자 살해라는 파국적 결말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그녀는 여러 신문 중에서 유독 ‘차이퉁’이라는 신문의 기사에 과몰입한다. 이러한 과몰입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나는 만약에 카타리나 블룸이 평소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충분히 받고, ‘차이퉁’의 기사를 분별력 있게 판단했다면 살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짜 뉴스 공장인 ‘차이퉁’은 폐간되어 마땅한 언론사이다. 사실이 아니라 상상에 기반한 ‘차이퉁’의 보도 방식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그러나 ‘차이퉁’의 기자를 살해하는 것으로, 천박한 황색 언론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우리가 가짜 뉴스로 인해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삶의 날개가 된다.
최근에 미국의 메타에서 만든 텍스트 기반의 스레드(Threads)라는 소셜 미디어가 여기저기서 주목받고 있다. 과연 스레드가 소셜 미디어계의 절대 강자인 트위터를 넘어설 수 있을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스레드와 같은 소셜 미디어에 과몰입하게 되면 삶의 실타래(thread)가 엉켜버릴 수 있다. 인간이 소셜 미디어를 통제해야지, 소셜 미디어가 인간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벨트이다. 이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안전벨트를 선물하고, 등 뒤에 날개를 달아주자. 카타리나 블룸의 비극적 결말이 현실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에겐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삶의 무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