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앙투앙 갈랑의 『천일야화』로 보는 이야기의 힘
[예술과 목회] 앙투앙 갈랑의 『천일야화』로 보는 이야기의 힘
  • 이영식 목사
  • 승인 2023.07.31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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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사(敍事)적 존재다. 서사, 즉 이야기는 우리 삶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다. 우리는 부모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가문과 가족 구성원으로 정체성을 형성하며 역사를 배우면서 하나의 민족으로 녹아든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충효라든가 사랑, 용기, 평화와 같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들을 정신적 자양분으로 흡수한다. 우리 모두는 매일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몸으로 써내려가는 작가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이라는 위대한 서사를 읽고 설교로 듣고, 공부하고, 노래하면서 신앙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예수 이야기 공동체다.

이야기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앙투앙 갈랑의 『천일야화』는 이를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알라딘의 램프’나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단편적인 이야기로 우리에게 친숙한 천일야화는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앙투앙 갈랑(1646~1715)이 모국어로 번역 편집한 작품이다. 그는 아랍 문화권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를 단순하게 모아서 소개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에 대한 심오한 관점으로 재구성하였다.

아라비안나이트는 페르시아부터 인도까지 지배하는 대왕 샤리아 왕과, 그의 동생 샤즈난이 아내들로부터 배반당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샤리아 왕은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 대해 불신하며 왕비를 맞아들여 하룻밤을 지낸 뒤 불륜을 저지를 기회를 주지 않고 사형에 처한다. 이러한 끔찍한 폭정을 막기 위해 나선 인물이 대재상의 첫째 딸인 셰에라자드다. 그녀는 무엇으로 왕의 마음을 변화시키려고 목숨을 걸었을까? 그녀가 믿은 것은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셰에라자드는 왕에게 청을 넣어서 동생 디나르자드와 함께 첫날밤을 보내게 해달라고 한다. 디나르자드는 왕이 기침을 하는 때에 맞춰서 일어나 ‘언니는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신데 죽기 전에 저에게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요청하는 역할을 맡았다. 왕이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할 것을 허락하고 이렇게 1천하고도 하루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왕은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처형해도 늦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앙투앙 갈랑은 독자들에게 당신의 서사가 끝나는 순간 죽는다는 사실을 은밀하게 알려준다. 셰에자드는 1001일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처녀와 왕까지도 구원할 수 있었다. 절망은 다름 아닌 내 삶의 이야기의 종말이다.

천 하루 동안의 이야기는 왕의 침실에서 은밀하게 전개된다. 침실은 사적인 공간으로 어떠한 방어기제도 작동시킬 필요가 없다. 셰에라자드는 공식적으로 동생 디나르자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옆에서 엿듣던 왕이 더욱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간접 소통의 서사 구조를 만든 셈이다. 만약 그녀가 왕에게 직접 이야기를 했다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불신하는 그의 강력한 반발심에 직면했을 것이다. 연극과 영화, 뮤지컬을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일 때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영혼에 스며드는 법이다.

천일야화의 이야기 구조는 자연 세계의 프렉탈 구조처럼 반복된다. 즉 눈송이 속의 눈송이, 그 속에 또 눈송이가 있는 것처럼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도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 속에 또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의 뭉치들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구조다. 거기다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기가 막힌 사연을 들려줌으로써 위기를 극복한다. 셰에라자드는 다름 아닌 자신과 온 나라의 처녀들이 처한 억울한 상황을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왕에게 들려주고 있는 셈이다.

천일야화의 결말 부분에 이르면 마침내 샤리아 왕은 왕비 셰에라자드를 인정하고 크게 칭찬한다. 왕비 역시 무섭기만 했던 왕의 장점을 발견하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같이 한 시대를 살던 처녀들과 가족들을 이야기로 구원해 낸 셈이다. ‘이야기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이 앙투앙 갈랑의 천일야화의 메시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거룩한 이야기를 남기셨을까!

이영식 목사<br>한국독서치료학회 영남지회 대표<br>비전교회 담임목사<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br>
이영식 목사
한국독서치료학회 영남지회 대표
비전교회 담임목사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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