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정상이라는 환상’
[전문가 칼럼] ‘정상이라는 환상’
  • 최지영 교수
  • 승인 2023.07.18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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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라는 환상’, 이 제목은, 박보나 작가가 쓴 에세이집, 『예술이 내 것이 되는 순간』(2023, 에트르)의 한 대목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조약돌처럼 모아서 주머니 속에 잘 넣어두고 연신 만지작거리며, 그 돌들을 작품으로 꺼내놓은 순간을 잠잠히 기다린다.”라고 쓰고 있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을 하는 것은 일상과는 떨어진 특별한 작업이자, 상황일까?

예술이란 고착된 명사,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값진 명품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발견하고 만나는 그 순간, 살아 숨쉬기 시작하는 역동하는 생명체와 같다. 예술이 생명력을 갖는 것은, 주변의 일상이 새롭게 다가오거나, 맘먹고 체험하는 예술 행위에서 느끼는 영감의 순간, 혹은 우연히, 아니면 지속해 끄적거리는 창작의 발현이 구체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내 것이 되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예술 체험은 여러 사람과 함께 있다고 할지라도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더라도 다양한 개인들이 각자의 감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술의 현장이지 않은가!

일상은 예술과 가까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일상이 없는 예술이란 있을 수 없다. 작가, 창작자, 참여자, 예술가, 우리가 어떻게 부르던 그들의 예술세계는 그들의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여기서 ‘정상적’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정상적’이라는 용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것”(네이버 국어사전)이라 설명하고 있다. 변동이 없는 그것이 제대로 된 것, 정상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탈이 없어야 하므로, 그 어떤 문제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경계하며, 미리 방지하고자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총체적으로 짚어보면, 오히려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의 변동과 무수히 일어나는 탈들을 수용하고 대처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예술이 일어나는 출발은, 미세한 균열과 변화로부터 시작한다. 늘 바라보던 것이,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거기서부터 어떠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기도 하고, 그 아이디어로 인해서 어떠한 행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정상적인 상태와 예술이 일어나는 순간은 삶의 양 극점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경계 지점을 넘나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상’이라는 상태는, 고착된 대의명분이 아니며, 또한 어떠한 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경학교와 설교 말씀 중에, ’바리새인’을 엄격한 율법주의의 기준으로 전하며 경계하는 예를 종종 접하곤 했다. (유대 독립 시기를 거치면서 경건주의 운동 진영인 하시딤이 후에 바리새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치열한 역사의 맥락은 물론 다른 관점을 줄 수 있으나,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곧, ‘정상적’인 상태를 새롭게,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에서부터 예술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예술을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를 뒤엎거나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태를 주의 깊게 고찰하면서, 늘 너무도 당연시되었던 그 상태의 본질에 대해 탐색하는 것이다.

“미적 체험(aesthetic experience)은 진지하고 심오한 감동을 주는 어떤 대상에 대해 특별한 방식으로 주목함으로써 감응하는 동시에, 이것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게 되는 상태이다.” (2011, 서울문화재단)

정상적인 상태와 예술의 출발이 경계 지점을 넘나들고 있다는 자각을 가질 때, ‘미적 체험’에 대한 정의 개념은 우리에게 적절한 영감을 준다. 나의 일상이 진지하고 심오한 감동을 주는 어떤 대상으로 변화하는 경험을 하고, 그러한 경험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답하고 정리하여 세상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미적 체험이란 단순히 감각적이고 감흥 적인 체험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에 대한 탐구이자 세상과의 관계 형성이다.

얼마 전, 장애인의 권리와 이동권을 위한 예산 공약을 요구하며 장애인들이 벌인 지하철 탑승 시위를 기억한다. 그 시위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이 불특정한 다수의 일반 시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장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비판한 사례들이 많았다. 또한 이태원 참사의 여진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참사 당시, 할로윈이라는 서양귀신 놀이에 그 피해자들이 심판받은 것이라는 입에 담지 못할 언사를 뱉어내는 모습을 보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이 사건들에서 기준은 정상과 정상이 아닌 계층을 나누고, 더 나아가 정상이 아닌 것은 적절치 않아서 배제되어도 된다는 논리 아닌가!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하나님을 사랑한 것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우리는 선교 현장인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러기 위해선, ‘예술이 내 것이 되는 순간’과 같이 일상을 매 순간 새롭게 바라보고, 내 주변에 존재하는 이웃에 대한 세심한 주목과 관찰,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주의 깊은 통찰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며, 하루하루의 창조과정에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은 창조의 과정에서 반복해서 언급된다. 창조의 하루하루를 매번 새롭게 바라보고 주목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예술의 시작과 출발을 찾을 수 있다. 필자는 예술을 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기독교만이 정상이라는 환상에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는 섬세하고도 치열한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 스스로 되새겨 본다.

최지영 교수<br>Drama specialist<br>한국교육연극학회 회장
최지영 교수
Drama specialist
한국교육연극학회 회장
예술목회원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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