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프리츠 폰 우데의 〈힘든 여정〉과 〈겨울풍경〉을 통해 본 그리스도교 도상의 일상화
[예술과 목회] 프리츠 폰 우데의 〈힘든 여정〉과 〈겨울풍경〉을 통해 본 그리스도교 도상의 일상화
  • 신사빈 박사
  • 승인 2023.06.13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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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폰 우데 〈힘든 여정〉 1890년. 뮌헨 노이에피나코텍 소장
프리츠 폰 우데 〈힘든 여정〉 1890년. 뮌헨 노이에피나코텍 소장

프리츠 폰 우데(Fritz von Uhde, 1863-1928)는 뮌헨 출신의 화가이며 미술사적으로는 분리파(세세션, Secession)에 속한다. ‘세세션’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진보적 화가들에 의해 일어난 미술 운동으로 ‘분리하다’의 뜻을 지닌 라틴어 ‘secede’를 어원으로 한다. 즉 기존의 관학적이고 보수적인 아카데미즘 미술로부터의 ‘분리’와 인상주의, 사실주의, 상징주의 등의 새로운 미술을 ‘수용’하자는 취지로 뮌헨, 비엔나, 베를린 등의 독어권 지역에서 일어난 현대 미술 운동이다. 프리츠 폰 우데는 최초의 분리파인 ‘뮌헨 분리파’를 주도했던 화가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성화를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으로 종교화의 영역에서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 화가이다. <힘든 여정>도 그 문맥에서 이해되는 작품이다.

버드나무가 우거진 시냇가를 따라 난 시골의 거친 진흙 길을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먼 길을 떠나온 듯 여장(旅裝)을 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다. 차림새로 보아서는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사는 서민들로 보인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는 아내는 무거운 몸을 미루어 임산부임이 틀림없다.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으로 그녀의 출산이 머지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와 사실주의를 혼합한 양식으로 그린 준(準) 종교화로 부제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이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성 가족의 호구조사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던 이스라엘에 황제의 명으로 호구조사가 행해지고 모든 백성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고향에서 호적을 등록해야 했다. 이에 요셉도 아내 마리아와 함께 나자렛을 떠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먼 길을 떠났고, 이때 마리아는 해산을 앞둔 만삭의 몸이었다. <힘든 여정>은 성서의 그 이야기를 전통적인 성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 당시 독일 일상의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다. 우데의 다음 작품 <겨울 풍경>(1890)은 그 후속작이다.

프리츠 폰 우데 〈겨울풍경〉 1890년
프리츠 폰 우데 〈겨울풍경〉 1890년

눈이 수북이 쌓인 길 위에 한 여성이 울타리에 기대어 어딘가를 바라보고 서 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한 남자가 눈길을 헤치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그림은 힘든 여정 끝에 베들레헴에 도착한 요셉과 마리아가 숙소를 구하지 못해 추위 속에 내몰린 모습을 화가가 상상해 그리고 있는데 역시 전통적인 성 가족의 모습이 아닌 일상 서민의 모습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만삭인 마리아를 길에서 잠시 쉬게 하고 혼자 숙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요셉의 모습이 화면의 왼쪽 위에 어렴풋이 보인다. 이 작품도 ‘성야(聖夜)’라는 부제를 통해 준 종교화임을 암시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장면은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출산하고 목동과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우데의 <힘든 여정>과 <겨울 풍경>은 전통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던 소재를 선택해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를 일상의 현실 세계와 연결시키고 있다. 우데가 두 작품을 제작한 1890년은 독일 뮌헨 지역에 목수 직업을 가진 사람의 삼분의 일이 실직할 만큼 경제적 한파가 몰아친 시기였다. 화가는 그 혹독한 독일의 사회 현실과 당시 로마의 압정 속에서 호구조사를 통해 세금을 착취당하던 이스라엘의 사회 현실을 연결시켜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19세기 말의 미술계는 전통과 현대, 과거와 다가올 미래가 충돌하며 다양한 과도기적 현상이 나타나던 시기였고 ‘분리파’ 화가들은 그 시기에 전통과 단절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견인차 역할을 한 자들이었다. 프리츠 폰 우데는 그 역할을 종교화의 영역에서 하였다. 위의 두 작품을 통해 우리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성화가 현대로 어떻게 스며들어 일상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더 이상 교회나 귀족들에 의해 주문된 성화의 답습이 아니라 화가 개인이 경험한 현실을 토대로 성서 이야기를 재해석하여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일상적’ 성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의 삶과 관계없는 객관적인 크리스마스 도상이 아니라 나와 너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친근한 성야 도상, 낮은 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Immanu-el) 하나님을 더욱 ‘사실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도상으로 우리 앞에 현상한다.

신사빈 박사
신사빈 박사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의 신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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