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르트의 종교사회주의
칼바르트의 종교사회주의
  • 노영상 박사
  • 승인 2023.06.02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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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_노영상 박사(전 총회한국교회연구원장)
칼바르트
칼바르트

*본 강의안은 지난 5월 25일, (재)한국기독교학술원이 ‘기독교와 Ideology’를 주제로 개최한 공개 세미나에서 발제된 내용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이다. 지면 한계로 각주는 삭제했다.


『로마서 주해』제1, 2판 시대: 하나님의 혁명

바르트는 청년기 종교사회주의의 영향 하에서 당시의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펜빌에서의 목회의 실패와 사회주의운동에서 그가 목격한 커다란 세 가지의 실망 때문에 1920년 초에 와서 정치적 실천을 당분간 유보한다.

즉 1차 대전의 대량 학살극에 유럽 사회주의가 참 여한 것과, 독일의 프리드리히 나우만(Friedrich Nauman)의 기독교 사회주의와 파산, 그리고 소비에트혁명 후 레닌의 전체주의에 대한 실망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그는 굳건한 신학적 기반이 없는 신학자의 사회주의는 본질이 결핍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으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성서의 급진적 내용 앞에 자신을 세움으로써 이 문제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바르트는 인간이 하는 혁명의 한계를 느끼면서, 이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변혁되는 것이 아니 며, 오직 하나님의 힘에 의한 하나님의 혁명을 통해서만, 변혁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로마서 주해』는 이러한 그의 입장을 반영한 책으로, 그는 이 책에서 인간 혁명의 한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혁명 안에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였다.

하나님의 혁명으로서의 인간의 혁명에 대한 부정은, 어떤 혁명도 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혁명의 철저하지 못함을 비판하면서, 하나님 앞에서의 보다 철저한 혁명을 수행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진정한 혁명은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에게서 오지 않는다.

그 사회의 일원 역시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사람에 의해서는 이 세상이 진정하게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사회밖에 있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로부터 혁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참된 혁명은 사회 안에서 오는 혁명이 아니며, 온통의 세상을 바꾸는 사회 밖에서 오는 혁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교의학’ 시대: 화해(die Versöhnung)와 해방(die Befreiung)

‘하나님의 혁명’의 바르트 신학이 나오자 여러 가지 비판이 일었었다. 슈라이(F. F. Schrey)는 “변증법적 신학은 신앙만으로의 의인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행위에 대한 비관적 판단과 윤리적 정숙주의(quietism)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을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실제로 아무 것도 선한 것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혁명 앞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포기하는 것이 최선책이라면 모든 것을 되어 가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라가츠도 바르트를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현실로부터 그의 말씀을 예리하게 분리하는 것은 ‘현실로부터의 이탈’이라고 하였다.

라가츠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은 일치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바르트의 하나님의 혁명의 개념을 철저한 사회참여를 함의하는 것으로 설명한 바 있다. 아무튼 하나님의 혁명의 주장에 따른, 바르트에게 남겨진 주제는 인간의 자유와 능동적 사회참여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에 그는 이 주제들을 그의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 1932-1967)에서 다루고 있다.

로마서 주해 시대의 하나님의 혁명이라는 신중심적 사고와 다르게,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시기에서는 기독론 중심의 신학을 추구하였다. 단네만은 이 같은 입장에서 교회교의학 제 4권 ‘화해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교회교의학 제4권에서 바르트는 자유로운 주체들로서의 하나님과 인간이 사회의 현실을 공동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말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자아로 규정되는 하나님의 상대자로서, 하나님에 의해서 구성되는 사회변혁에 능동적으로 관여한다. 동시에 화해론의 그리스도론적 정초는 ‘하나님의 혁명’의 보다 더 명확한 파악에 이른다.

곧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의 정황을 변혁시켜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의 화해과정으로 이끌어 들인다. 그럼으로써 실로 인간적 실천 자체가 변혁의 실천으로서 규정된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로서의 수직적인 측면과 인간의 해방으로서의 수평적인 측면을 결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해방을 위한 능동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 화해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위치 교환이라는 변증법으로 표현하였다. 십자가와 부활에서 성취되고 계시된 이러한 교체, 즉 하나님과 인간의 교체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혁명은 모든 인간들의 정황의 변혁을 목표로 한다.

바르트는 그의 입장이 일종의 정숙주의라는 비판에 대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혁명에 참여하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위치교환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혁명에 참 여케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위치교환은 인간과 사회의 전면적 변혁을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죽고,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삶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일 곧 하나님의 혁명에 참여케 된다는 것이다. 인간 자체 안에는 사회를 변혁할 가능성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는 것이 바르트의 마지막 시기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트는 사회변혁의 결정적 주체는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이에 인간은 하나님의 상대자로서 항상 응답하는 존재임을 다시 강조하였다. 또한 인간의 윤리적 결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인식하고 긍정하는 신앙의 결단이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원결단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결단이다. 화해의 은총을 통한 하나님의 혁명에의 인간의 참여를 통하여, 인간은 어떠한 좌절 속에서도 사회개혁의 희망을 견지하게 된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이 어떠한 승리의 수단도 갖지 않을 때 승리하신다. 그것은 인간이 그 스스로 안에서 어두움에 놓여 있을 때의 빛이여, 죽음의 그림자로 거닐 때의 생명이다.

이러한 희망 안에서 신자는 용기를 가지고 사회변혁에 노력할 수 있게 된다.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의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과 인간 및 세계 사이의 교환을 의미한다.

그 하나님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분으로서 세계와 인간이 그 하나님과 위치 교환을 하였다는 것은 혁명적이요, 급진적이고, 전체적이며, 우주적인 변경을 뜻한다. 그러함에 화해로서의 위치 교환을 말하는 교회교의학은 하나님의 전적 혁명을 말하는 로마서 주해들과 연속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칼 바르트는 그의 생애 가운데서 사회주의를 긍정하며 또 한 편으로는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신학적 작업을 하였다. 바르트의 그런 입장은 정치의 신학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에 있어 바르트는 1946년 전쟁 직후 출간된 기독교 공동체와 시민 공동체 및 그의 교회교의학 제4권 제4부 ‘기독교인의 삶의 기초’, 곧 세례론에서 정치적 예배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바 있다.

먼저의 책에서 바르트는 ‘기독교 공동체의 존재는 정치적’ 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복음은 애초부터 정치적인 것이며, 그것에의 설교도 예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는 정치적 차원의 말과 행동들을 근원적인 차원으로부터 파악하여 그것을 일종의 예배로 이해하였다.

그는 세례론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에 응답하는 인간의 진실하고 순전한 행동의 성격으로서의 세례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바르트는 20세기의 어떤 신학자보다 기도에 대한 글을 많이 쓴 신학자였다. 그는 기도를 바로 행동이라 하였다. 그는 그렇게 관상과 헌신을 연결시키고 있다.

기도는 기독교인의 삶의 심장이다. 윤리란 하나님의 뜻에 인간의 뜻을 일치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관계되어 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책임에 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연결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이웃을 위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기도는 우리의 삶 자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바르트에게 있어서는 설교, 세례, 기도 등 우리의 모든 예배가 하나의 사회 속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교회의 사회참여

바르트는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기독교 종말론을 사회참여를 위해 자원화했다. 또한 하나님의 혁명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사회변혁의 동인으로서의 한계에 대해 말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화해라는 교리로 그 하나님의 혁명에의 인간의 능동적 참여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렇게 성서의 교리가 사회참여의 힘이 됨을 바르트는 강조하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영성적 훈육의 방편들로서의 성례, 기도, 예배 속에서 행동의 결단의 의미를 부각했다.

그는 사회개혁에 있어 성서의 교리 그 자체, 교회의 예배 그 자체, 기독교 영성 그 자체의 위력을 우리 앞에서 강조했다. 앞으로 남은 과제가 있다면 기독교의 영성 그 자체가 사회개혁에 미치는 영향을 사회학적·심리학적 도구를 활용하여 밝히는 것이며, 영성훈련의 자료들의 의미를 재점검하는 일이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구체적으로 교회가 사회에 참여해야하는가? 바르트는 교회가 직접 어떤 정당이나 이념에 뛰어드는 것을 반대하였다. 하나님의 혁명 앞에서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향을 정하는 것이지 정치적 원리나 제도로서의 그 내용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그 방향이라는 말은 중간 공리, 중간 보편성, 중간 목표라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의 중간이기도하며,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의 변증적 합이기도 하다.

총회한국교회연구원 노영상 원장. 가스펠투데이 DB.
노영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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