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글래디에이터〉 - 천박한 야망(野望)과 유능한 무심(無心) 사이에서
[영화와 복음] 영화 〈글래디에이터〉 - 천박한 야망(野望)과 유능한 무심(無心) 사이에서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3.04.19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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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은 거장이며 명장이다. 그를 세상에 각인시킨 〈에이리언〉부터 SF의 신기원을 이룩한 〈블레이드 러너〉를 거쳐 〈델마와 루이스〉, 〈블랙호크다운〉, 〈킹덤 오브 헤븐〉, 〈아메리칸 갱스터〉에 이어 〈글래디에이터〉와 〈마션〉에 이르기까지,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명작을 만들어내는 황금손의 감독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시대적 배경은 기원후 180년이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리처드 해리스)의 게르마니아 정복이 마무리되는 전투가 벌어진다. 막시무스 장군(러셀 크로우)은 탁월한 지휘와 전투 감각으로 전쟁의 승리를 가져온다. 그는 동료와 부하들은 물론 황제에까지 인정받는 최고의 군인이자 덕망 높은 지휘관이다. 군대는 그를 통해 사기가 높아지고 전투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러자 철인(哲人)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 대신 막시무스를 선택한다. 하지만 막시무스는 정치나 권력엔 관심이 없다. 단지 아름다운 밀밭 근처에 마련된 집으로 속히 돌아가 가족과 오붓하게 사는 게 소망일 뿐이다.

이와 대조되는 인물이 코모두스이다. 황제의 아들로 자연스럽게 왕이 될 걸 기대했지만,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왕의 선언에 분노하고, 급기야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역사적 인물로서 코모두스는 그렇게 망나니 같지는 않았다고 보고되지만, 영화에서는 야망과 욕망에 사로잡혀있지만 그걸 감당할 인격과 능력은 갖추지 못한 천박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비극과 갈등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한편은 가능성과 능력, 인품에서 왕이 될 자질이 충분하지만 무심(無心)하고, 다른 한편은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저질에 비열하지만 천박한 야망(野望)이 들끓는다. 누가 왕이 되어야 할까?

‘자기 그릇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원래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거기 있어야 모두가 평안한 법이다. 만약 막시무스가 공화정을 세우고자 하는 아우렐리우스의 요청대로 왕권을 수락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평생 피를 묻히며 정복 전쟁에 나섰던 아우렐리우스는 독재와 폭력이 아닌 민주주의를 통한 민의의 기관으로 원로원을 신뢰했고 꿈꿨다. 만약 그의 소망대로 이뤄졌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때때로, 권력과 정치, 야망에 대한 지나친 무심(無心)은 오히려 역사의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적합한 인물이 있음에도 그 자리를 거부하자 되어선 안 될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비극이 생겨난다. 과연 막시무스는 이 지점에서 역사적 책임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과연 어디까지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영역이고, 어디부터가 역사의 부름에 순응하는 것일까? 여기에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침투할 수 있을까?

로마 시대 검투사들이 결투를 벌였던 웅장한 건물이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다. 그곳은 인간의 욕망을 분출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열한 야망으로 왕이 된 코모두스는 원형경기장을 세우고, 그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판을 공식적으로 마련했다. 자신에게 날아올 비난 화살의 방향을 틀어 원초적 싸움터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린 것이다. 결국 정치에 불만이 있던 백성들은 소리치고 고함치며 그곳을 통해 스트레스를 발산했고, 왜곡되고 무능한 지도자에게 향할 칼날을 경기장의 검투사들에게 보냈다. 물론 영화는 극적 반전을 통해, 욕망의 분출구인 검투장에서 막시무스와 코모두스가 만나게 설정하여 관객에게 권선징악의 행복한 결말을 선사한다.

인격이 탁월하고 능력이 출중하면 지도자가 되는 게 옳다. 문제는 그런 지도자를 알아보는 눈과 판단력을 백성들이 가졌느냐에 달려있다. 역사적 선택으로의 부름이 있다면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응답해야 한다. 자격이 있음에도 거부하면 예기치 못한 더 큰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겸양과 겸손이 미덕이지만, 때로는 나설 수 있는 용기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도 한다. 오늘 우리 시대도 그렇지 않을까? 누가 막시무스이고 누가 코모두스인가? 참다운 리더는 누구인가? 이 시대 진정한 리더의 자질과 역사적 부름으로의 소명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문화사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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