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리딩누크] 청소년 소설은 무익하다고 느끼는 설교자에게
[설교자의 리딩누크] 청소년 소설은 무익하다고 느끼는 설교자에게
  • 황재혁 기자
  • 승인 2023.04.03 0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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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의 『순례 주택』

아무래도 한국 교회에서 소설을 즐겨 읽는 설교자는 드문 편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일단 소설이 대체로 분량이 길어서 끝까지 읽기가 힘듭니다. 끝까지 다 읽더라도 소설의 내용을 온전히 다 이해했는지 헷갈립니다. 아무리 좋은 소설이더라도 실제 설교에서 그 소설을 인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설교자의 대다수는 소설 읽기보다는 신학책 읽기나 실용서 읽기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 일반 소설을 넘어서 청소년 소설에 관심을 가지는 설교자는 ‘블랙 스완’처럼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난 코로나 시기에 전국 서점가에서 시나브로 인기를 끌더니 어느덧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른 청소년 소설이 있습니다. 그 책은 바로 유은실 작가의 『순례 주택』이라는 청소년 소설입니다. 이 책은 지난 2021년 3월에 처음 출간되어 만 2년 만에 10만 부 넘게 판매되었습니다. 지난 2023년 2월에는 10만 부 돌파 기념 스페셜 에디션을 새롭게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기에 이 책은 왜 그토록 큰 인기를 얻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요? 이 책이 여태껏 10만 부 이상 팔렸다는 건요. 이 책을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도 많이 읽었다는 의미일 텐데요. 무슨 이유로 청소년 소설에 청소년이 아닌 어른이 열광했을까요?

순례 주택이라는 현실적인 가상공간

순례 주택 주소는 ‘거북로 12길 19(거북동)’입니다. 아마도 이 주소는 작가가 임의로 만든 주소일 겁니다. 순례 주택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공간입니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순례 주택이 가상공간이 아니라 마치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순례 주택은 이 주택의 건물주인 김순례 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김순례 할머니는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순하고 예의바르다’는 뜻의 순례(順禮)가 원래 이름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로 살고 싶다고 해서 이름을 순례(巡禮)라고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합니다. 건물주와 세입자,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부자와 빈자, 부모와 자녀 등 다양한 인물이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는 때때로 과장되지만, 실제 현실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무능한 인물로 그려지는 인물은 여중생 수림의 아버지입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시간강사를 하며 장차 전임교수가 되길 갈망하는 수림의 아버지는 그동안의 공부가 무색하게 현실감각도 없고 생존능력도 없습니다. 그에 반해 세신사로 일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 건물주의 자리까지 오른 김순례 할머니는 수림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단단한 내면을 소유했습니다.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김순례 할머니는 진정한 배움이 학위가 아니라 영혼의 성장에 달려 있음을 독자에게 알려줍니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김순례 할머니는 일상에서 감사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삽니다. 고학력자인 수림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는 감사라는 단어를 거의 들을 수 없지만 말입니다. 평소에 김순례 할머니는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순례자로서 김순례 할머니는 삶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합니다. 만약에 한국 교회에도 김순례 할머니처럼 순례자가 많다면 교회의 여러 어려움에도 감사의 고백이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서 주로 듣는 소리는 감사의 고백보다는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불만의 소리입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 설교는 너무 길어.” “우리 교회 화장실은 너무 오래되어서 냄새나.” “선생님의 열정과 헌신이 부족해서 교육부서가 계속 침체상태야.” 이러한 요구사항과 불만은 때때로 교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너무나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순례자의 자세가 아니라 관광객의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로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순례의 여정에 불편함이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순례자는 불변의 영생을 누리기 위해 불편한 순간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에서 ‘작가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자신의 할머니 이름을 언급합니다. 작가의 할머니 이름은 선군인데, 이는 신선 선(仙)과 임금 군(君)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작가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할머니를 포함한 모든 가족은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할머니의 이름이 교회에서 배운 ‘순례자’의 이름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할머니의 일상은 우악스럽고 창피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촌스러운 할머니를 부끄럽게만 여기던 작가는 할머니가 정말 신선처럼 변하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할머니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찬송가를 부를 때였습니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작가는 할머니가 이 찬송을 부를 때만큼은 우악스럽지도 않고 촌스럽지도 않음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작가의 이런 실제 경험과 현실에 기반한 상상력이 결합 되어 『순례 주택』이라는 청소년 소설이 만들어졌습니다. 누구라도 『순례 주택』을 한 번이라도 읽는다면 청소년 소설은 설교자에게 무익하다는 편견은 조금씩 사라지고요. 청소년 소설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순례 주택』을 읽으며 한국 교회에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가 늘어난다면 언젠가 『순례 주택』의 후속작으로 『순례 교회』도 출판될 수 있지 않을까요?

황재혁 목사<br>예수마을교회 청년부 담당<br>본보 객원기자
황재혁 목사
예수마을교회 청년부 담당
본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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