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순례] 삶의 끝까지 읽고 쓰는 걸 멈추지 않았던 사람
[독서 순례] 삶의 끝까지 읽고 쓰는 걸 멈추지 않았던 사람
  • 황재혁 기자
  • 승인 2023.04.03 0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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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눈물 한 방울』

지난 2023년 2월 26일은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세상을 떠난 지 1주년 되는 날이었다. 이 전 장관이 세상을 떠났지만, 지난 1년 동안 그와 관련된 책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동시다발 출간되었다. 그중 백미는 21세기북스에서 출판한 『이어령 전집』이었다. 『이어령 전집』은 전체 24권으로 구성되어 온라인 서점에서 무려 99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전집의 양과 질을 고려할 때 과연 앞으로도 이를 뛰어넘는 전집이 한국문학계에 출판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굳이 『이어령 전집』을 읽지 않더라도 이 전 장관의 마지막 사유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 하나 있다. 그 책은 바로 김영사에서 출판된 『눈물 한 방울』이다. 『눈물 한 방울』은 이 전 장관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남긴 마지막 노트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출판을 목적으로 이 전 장관이 쓴 노트는 아니었기에 내용은 일목요연하지 않고 글씨는 정갈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 어느 책보다 이 전 장관의 진정성이 묻어난다. 저자가 눈물 흘리며 쓴 글을 독자도 눈물 흘리며 읽는다.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다. 딱 하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바로 눈물, 즉 박애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해갈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6쪽)

이 전 장관은 인간애의 상실을 경험하는 시대 속에서 피와 땀이 아닌 따뜻한 눈물 한 방울이 개인과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눈물 한 방울이 없어서 우리의 마음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이토록 메마르고, 건조하지 않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이 전 장관이 2021년 8월 1일에 남긴 글이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죽음을 약 반년 정도 앞두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한 발짝이라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자. 한 호흡이라도 쉴 수 있을 때까지 숨 쉬자. 한 마디 말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 말하자. 한 획이라도 글씨를 쓸 수 있을 때까지 글을 쓰자. 마지막까지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하자. 돌멩이, 참새, 구름, 흙, 어렸을 때 내가 가지고 놀던 것, 쫓아다니던 것, 물끄러미 바라본 것, 그것들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었음을 알 때까지 사랑하자.”

이 전 장관은 삶의 끝까지 걷고, 숨 쉬고, 말하고, 글을 쓰고,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걷기, 숨쉬기, 말하기, 글쓰기, 사랑하기에는 그리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이를 원한다면 누구나 마음껏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의지만 있다면 그처럼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사랑하며 누군가를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전 장관의 배우자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이어령의 정신이 주저앉지 말고 도전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사순절의 끝자락을 맞아 이어령의 정신이 우리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다시금 부활하는 기적이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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