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7일에 개장을 한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 공원 3만여 평의 바이블 엑스포 현장! 성경 내용을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약관, 신약관, 체험관과 노아의 방주를 비롯하여 바벨탑 등등 성경의 볼거리들을 조형물로 꾸며 놓아 교회의 기대를 모았다. 개장 후 7일 만에 ‘곤파스’라는 태풍에 모든 조형물이 망가지고 날아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10월 28일 재개장을 하였는데 골고다 언덕 세 개의 십자가 가운데, 중앙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다. 태풍 피해로 중앙의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가 넘어졌는데 너무 급한 나머지 십자가를 다시 세우지 않고 개장한 것이다. 예산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십자가가 사라진 우리 자신과 한국 교회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행위,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 마하트마 간디가 56세 때인 1925년 『청년 인도』라는 신문에 ‘사회를 병들게 하는 7가지 사회악’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던 글인데 지금은 뉴델리의 간디 추모공원 묘역(墓域) 입구의 돌비석에 이를 새겨놓은 기념비가 서 있다. 이 가운데 마지막 "희생 없는 신앙"의 대목에서 희생은 사라지고 내 이익만 챙기려는 교회가 되었다. 우리 입으로만 십자가를 기도하고 찬송하고 설교만 하였다. 손해 보는 십자가의 삶은 사라졌다.
오늘 한국 교회 예배당의 십자가 간판은 더 선명해졌지만, 십자가의 삶은 실종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사라진 십자가 자리에 성장과 성공이 포진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움켜쥐려고만 하고, 내려오지 않고 올라가려고만 하고, 작아지지 않고 커지려고만 하고, 죽지 않고 살려고만 한다. 십자가는 양보하는 것이요, 손해 보는 것이며, 죽는 것인데 말이다. 십자가는 계산하지 않는 것이며, 바보같이 사는 것이며,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이며 궁극적으로 주님의 이름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리고 수모와 창피는 우리가 달게 받는 것이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도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고 염원해도, 선행되어야 할 십자가가 사라졌기 때문에 부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으면 부활의 기적은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경』의 무일(無逸)편에 주나라 무왕의 동생인 주공이 조카 성왕에게 통치의 지혜를 전수한 내용 중에 주공의 대표적인 무일사상(無逸思想)이 나온다. “군주는 무일(불편함)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해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 ‘무사 안일하지 말고 직접 생산 노동에 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 사상은 현재까지도 중국문화를 대변하고 있는데 1957년도 이후 1980년대 문화대혁명기에 대대적으로 실시한 하방운동(下放運動)의 사상적 근거가 바로 무일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하방운동은 당 간부와 정부 관료들을 농촌이나 공장에 내려보내 노동하게 하고, 군 간부들을 병사와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현장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지도층의 주관주의와 관료주의를 배격하는 하방운동에 문화혁명 기간 동안 1000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중국 공산 사회의 사례라 낯설 수 있지만, 중국에서 실행에 옮긴 하방운동은 다른 말로 아래로 내려가는 운동이다. 교회든 사회든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우리 주님은 이번 사순절에 한국 교회를 십자가 아래로 부르신다. 십자가를 지려는 이들에게만 부활의 은총을 주신다. 십자가 다음이 부활로 이어지는 코스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직분자의 자리는 말석이요,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지위이니 주어진 권한과 기회를 나누면서 주님만을 높이자. 교인과 지역주민을 시중드는 섬김의 자리가 우리에게 배정된 자리로서 우리를 곤란하고 어색하게 하더라도 불편한 십자가의 초심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