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성령과 상상력
[예술과 목회] 성령과 상상력
  • 이민재 목사
  • 승인 2023.03.10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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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가 물었다. “하삐, 10 더하기 1이 뭔지 알아?” “그야 11이지.” “아니, 2야.”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손녀의 셈법은 이랬다. “10은 1과 0인데 0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1이 남고, 1과 1을 더하면 2잖아.” 수리의 개념에 길들지 않은 손녀의 상상이 재미있었다. 물론 답이 틀렸다고 고쳐주지는 않았다.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터였다.

아는 수학 선생님에게 손녀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며 말했다. “손녀가 0의 의미를 아네요.” 그러면서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일을 얘기해주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전화해서 심각하게 말하더란다. “아이가 셈을 못해요. 1-1이 1이라고 우기네요.” 전화를 끊고 나서 아이에게 물었다. “1-1이 왜 1이지?” 아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어, 빼는 건 없애는 거잖아. 1을 없애려고 손으로 가렸더니 1이 남았어.”

이런 것이 아이들의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개념을 학습하고 정답을 암기하기 전에 발달하는 자유로운 정신활동이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아인슈타인) 상상력은 모든 창조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음악・미술・문학의 걸작들은 상상력의 산물 아닌가. 요즘 누구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도 상상력이 IT기술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예술적 상상력이 보태져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 자체가 인지 혁명을 통한 상상의 산물이다.(유발 하라리)

상상력이 시들면 감수성도 무뎌진다. 감수성이 무뎌지면 자연의 아름다움도 음미하지 못하고, 삶은 신비하지도 경이롭지도 않다. 타인의 고통에도 무감각해진다. 상상력이 시들면 위기상황을 창의적으로 돌파하는 순발력도 둔해진다. 보라는 것만 보고, 하라는 것만 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도 상상력의 빈곤과 무관하지 않다. 상상력이 메마를 때 인간은 생존의 굴레에 갇힌 동물에 불과하다.

기억이 과거를 더듬는다면 상상은 과거・현재・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렇기에 상상의 세계는 기억의 세계보다 훨씬 크다. 상상력은 경험하지 않은 것이나 현재에 없는 대상까지 직관하고 심상화 한다. 상상력은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전부를 환상이 상연하고 있다.”(자크 라캉) 인간은 상상력이 창조한 환상을 어떻게든 현실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려고 이성과 의지를 동원한다. 인간은 자기가 상상한 것(즉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짜내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상력은 위험하기도 하다. 인간은 선한 것만 상상하지 않고 악한 것도 상상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각종 흉악범죄, 변태적이며 도착적(倒錯的)인 포르노그래피의 세계, 사람을 괴롭히는 다양한 고문 방법, 아동이나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 등이 그렇다. 어떤 작가는 “상상력의 빈혈에 걸린 인류”, “상상력의 기능 쇠약”, “상상력의 퇴화와 창조적 이미지의 화석화”를 걱정하지만, 더 큰 문제는 타락한 상상력 또는 범죄의 도구가 된 상상력이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상상하며 살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인간조건이 바뀌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 2:7)고 한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흙”과 “생기”의 혼합체다. 흙이 육과 욕망의 차원을 상징한다면, 생기는 영과 신성의 차원을 상징한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육과 영, 욕망과 신성의 스펙트럼을 끊임없이 오가는 존재다. 그에 따라 상상력도 달라진다. 이것은 나무와 토양의 관계와 같다. 상상력은 욕망의 토양이나 신성의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다. 욕망이라는 토양에서는 불순하고 불쾌하고 불의한 상상이 무성하게 잎을 내고, 신성이라는 토양에서는 순수하고 아름답고 성스러운 상상이 활짝 꽃을 피운다. 따라서 상상력이 변형되려면 상상력의 토양 즉 인간조건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상상력의 토양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번뜩이는 이성과 불굴의 의지로도 바뀌지 않는다. 상상력의 토양이 바뀌려면 욕망이라는 토양에 깊이 박힌 상상력의 뿌리를 뽑아 신성이라는 토양에 이식할 수 있을 정도로 근원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성령이다! 성령이 임할 때 삶의 토양은 육에서 영으로, 욕망에서 신성으로 바뀐다. 이때 상상력도 정화되고 변형된다. 예언자 요엘이 노래했듯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상이 싹튼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욜 2:28) 그래서 나는 일상의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고 환상하며 새로운 성령의 시대를 기다린다.

이민재 목사
은명교회 담임
감신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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