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돼지의 왕〉 - 절망과 허무를 통해 비로소 세상의 현실에 눈 뜨다
[영화와 복음] 영화 〈돼지의 왕〉 - 절망과 허무를 통해 비로소 세상의 현실에 눈 뜨다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3.03.10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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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익숙한 감독 연상호는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통해, ‘학교-군대-사회’로 이어지는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영속된 먹이사슬 관계를 매우 사실적이며 무섭게 묘사한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회사 CEO 경민은 부도로 인한 분을 참지 못해 자신의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다. 이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괴물 같은 돼지로 변한 자신을 인식한다. 그 ‘돼지’는 경민을 잊고 싶은 과거 기억의 회상으로 이끈다.

15년 전,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경험하는 중학교 1학년 시절의 학급은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곳엔 두 개의 계급이 존재한다. 힘으로 모든 걸 지배하는 절대강자 강민을 중심으로, 힘의 세력에 빌붙어 약자를 괴롭히며 짓밟는 비굴한 지배계급이 있다. 절대자에 충성하며 사랑을 받는 애완견 계층이다. 지배자가 있으면 피지배자도 있기 마련이다. 힘을 가진 절대자와 그 하수인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살을 찌울 수밖에 없는 돼지 계층이 있다. 주인공 경민과 친구 종석이 속한 피지배계급이다. 이렇게 계급화된 이중구조의 틈바구니에 지배자에 저항하는 세력도 있다. 김철은 힘과 권력으로 짓밟고 누르는 지배계층에 반발하여 소기의 성과도 거두고, 피지배계층의 희망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상처만 남기고 사라진다.

영화는 이렇게 15년 전 과거의 기억과 아픔이 어떻게 현재 이들의 삶을 규정하며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선명하고 직설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주인공 경민과 종속에 감정이입 된 관객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괴로워한다. 자신의 아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회고발의 성격이 짙은 〈돼지의 왕〉은 몇 가지 무거운 주제를 우리 사회에 던진다.

먼저, 계급사회에 대한 인식과 비판이다.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진 계급이다. 기득권을 쥐고 권력의 보호를 받는 지배계층과 힘없고 약하여 무참하게 짓밟혀도 아무런 저항이나 반항도 할 수 없는 하층계급으로 나뉜다. 두 계급은 상호 소통과 교류를 허락하지 않는다. 같은 사회에 살지만 구분된다. 중학교 1학년 학급의 비참과 모멸의 하층계급의 모습은 15년이 지난 일반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그대로다. 최근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는 양극화이다. 가진 자와 상실한 자의 간격이 너무 크다. 사회적 완충 역할을 감당해야 할 중산층은 사라지고, 빈익빈 부익부를 통해 승자독식의 논리만 더욱 견고하게 구축된다. 국가 GDP가 올라감에도 청년실업이 늘고 개인이 체감하는 경제력은 바닥을 치는 건 양극화의 극단적 결과 때문이다.

둘째, 악(惡)을 악으로 갚는 보복법(lex talionis)이 승리의 방정식으로 채택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순간의 승리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김철은 체제에 저항한다.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경민이나 종석과는 달리, 김철은 강민으로 대표되는 지배 세력에 당당히 맞선다. 자신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실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김철이 그들에 대한 저항으로 택한 방식이다. 폭력을 일삼은 지배계층에게 김철은 또 다른 폭력으로 그들을 대한다. 자신들의 현 상태가 약하고 무기력하기에, 상대를 힘으로 이기기 위해선 좀 더 악해져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변한 건 없다는 사실이 더욱 큰 절망으로 다가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방식처럼 악을 악으로 갚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여전히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보복법’이나 ‘탈리오법칙’(talio: 同害報復)은 우리에게 문제 해결의 속시원함을 주지 못한다. 단지 순간적인 쾌락이 존재할 따름이다.

셋째, 우리 사회의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현대사회에서 계급을 나누는 힘의 상징적 도구는 돈(자본)이다. 영화에서도 성인이 된 경민이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스스로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지어야 했던 이유도 결국 사업이 부도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만을 탓할 수는 없다. 돈의 영향력이 최고임을 부인할 순 없지만, 그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도 여전히 세상에는 존재한다. 바로 그 점이 우리 사회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인간 존재’는 돈을 살 수 없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A.I가 모든 걸 통제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선한 의지는 작동한다. 사랑이나 우정, 정(情), 존경, 덕망, 희락, 화평, 양선, 온유... 이런 덕목들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다.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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